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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이제 2주만 있으면 아트페어 오픈이다. 작년보다 더 잘하려고 했는데, 후원 부분에서는 다소 모자란다. 실은 내가 좀더 많은 시간을 내어 움직였다면 좀 나았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만,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는 구조였다.

어젠 회의를 끝내고 집에 오니, 새벽 4시였다. 심하게 허기를 느꼈지만, 참았다.

일요일 아침, 몽롱한 상태에서 쳇 베이커의 보컬을 듣고 있다. 오랜만이다.

익숙하고 정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맥주 생각이 나는 무슨 까닭일까. 누구의 말대로, 까페를 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 일일까. 스폰서 알아 보고 까페 할까. 하긴 갤러리 까페하면서 내 요리에 와인 팔고 좋은 음악 틀면... 이런 철부지 같은 공상은 종종 지친 몸과 마음에 잠깐의 도피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전시장 부스 구성이 나왔다. 이젠 어떻게 부스를 배정하는가 이다. 결국 이번엔 작가들이 스스로 알아서 보지 않은 상태에서 골라가는 방식(랜덤 선정)을 택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쁜 부스는 없다. 전시장 디자인이 제법 잘 나왔다.



스텝 증을 만들어야 한다. 작년에는 Art Fair 코디를 운영했는데, 올해는 그 규모를 최소로 줄일 예정이다. 기대했던 성과를 작년에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의 운영이 필요하다.



쳇 베이커의 'I Fall in Love too Easily"
... 과연 나도 그럴까.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거나, 두려움이 너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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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한 통을 보내고 난 뒤, 어지러운 방안을 쳐다보았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어디에서부터 해야할 지 난감하다. 몇 주째 몸상태가 좋지 않아, 집에 들어와선 잠만 잔 탓이다.

오전에 세차게 퍼붓던 비는 잠시 멈추고 바람만 요동치듯 집 안을 휙 스치고 지나간다. 그런데 살아간다는 게 뭘까. 하루종일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에도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틈만 나면 책 읽고 글 쓰고 음악은 집중해서 듣고 ... ...
참 재미없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을 읽고 나면,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는 것에 경악하고 만다. 그 앞에선 보여주어야 할 것만 있는 듯 싶다. 아마 리 호이나키도 보여주기 위해서 산 것은 아닐까.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 10점
리 호이나키 지음, 김종철 옮김/녹색평론사

이 책, 무조건 읽으라고 말하고 싶으나, 그 권유로 인해 이 책을 읽고, 다 읽고 난 뒤의 난처한 기분에 대해 나는 그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다. 

실은 몇 주 전에 다 읽고 간단하게 서평을 올리려고 했으나,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좀 난감한 책이었다. 한 젊은이가 자신이 생각했던 바, 바람직한 삶을 찾아가기 위한 거친 여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거침은 충분히 이론적이며 설득력이 있었으며, 가치 있는 여정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말이 앞설 뿐, 실천은 저 멀리 있다. 해석은 번듯하게 하지만, 막상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 앞에선 뒷걸음질 칠 뿐이다. 그것은 젊은 리 호이나키가 마주한 지식인 사회였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정공법으로 대처한다. 그것에 대해 몸을 부딪히며 경험하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행동을 담담하게 적는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책에선 읽기 힘든 실천적 교훈이며, 바람직한 세상을 향한 의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창조적인 영감으로 가득찬 이 책에 대해선 종종 이야기할 듯 싶다.

(이 책 안에 리 호이나키가 시골 마을로 가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문득 한국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모두 감명받아 모두 시골로 간다면, 아마, 한국은 온통 작은 도시들로 이루어진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작은 땅에 인구가 많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휘자 이스트반 케르테즈는 교통사고로 사십대 중반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브람스에 대한 탁월한 해석자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의 여러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이스트반 케르테즈를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1960년대 중반 런던필과 함께 녹음한 모차르트의 '레퀴엠' 때문이다. 힘 있고 집중도가 높으며 선명한 연주와 합창으로 유명한 이 연주는 칼 뵘의 느리고 흐느적거리는 듯한 음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칼 뵘의 레퀴엠이 최고라는 평판을 나로선 도통 이해하기 어렵지만. 차라리 아르농쿠르나 필립 헤레베레가 훨씬 낫다.)

이 음반은 부드럽고 감미롭다. 오늘 같은 날씨엔 딱 어울리진 않지만.

그런데 답 문자가 오질 않는다. 이럴 때 제법 난처해지는데 말이다. 저녁에 비가 적게 오길. 이제 아트페어 준비 회의에 가야 한다. 휴~. 8월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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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안경을 끼고 있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 눈이 나빠졌다는 듯이, 그들 대부분은 반장이거나 부반장이었다. 안경과 은밀한 비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뭔가 있어보인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억지로 눈을 나쁘게 만들기로 했다. 내 최초의, 자기 파괴적인 경향의 나쁜 마음이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하지만 그 시도는 (다행스럽게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사오년이 지난 후, 나는 결국 안경을 쓰게 되었다. 깨알 같은 글자의 소설책들(세로쓰기로 된 책들까지)과 음란한 영상을 보여주는 심야의 유선 방송 탓이였다.


안경, 내 몸의 연장

늘 몸에 붙어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익숙해져버린 낯선 물체. 내 두 눈이 외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동안엔 언제나 눈 앞에 앉아 외부 세계를 확실하게 보여주게 해주는 존재. 옷은 벗은 상태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안경을 벗은 상태에선 글을 쓸 순 있으나, 책은 겨우겨우 읽을 수 밖에 없는. 꽤나 곤란한 내 일상의 파트너.

내구성이 약한, 마치 감정의 연약함처럼.

따지고 보면, 안경을 집어 던진 적이 있었던가.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슬픔의 아침 샤워 때, 욕실 타일 바닥 위로 사뿐히 떨어진 안경이 깨진 경우는 여러 번.

나는 욕을 했다. 떨어져 깨진 안경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욕실을 걸어나와, 집 곳곳에 물기를 흩뿌리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깨진 안경알 조각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내 마음도 함께 버리며, 욕실 바닥과 함께 다시 샤워를 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슬픔이 지나갔다.

소설가의 안경.

몇 년 전 쓰다만 소설을 다시 꺼내보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다. 늘 어떤 이야기, 어떤 인물, 어떤 상처 앞에선 무섭고 두렵다. 문장이 어렵고 단어가 힘들다. 근사한 안경 이미지를 찾다가 발견한 헤르만 헤세의 안경. 나도 저런 동그란 안경을 쓰고 싶은데, 동그란 안경테를 파는 안경점이 의외로 없다는 것.

어둡고 깊은 복도를 가진 도서관에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던 18살의 봄이 기억난다. 쓸쓸하던 사춘기 끝자락의 봄에, 나는 헤르만 헤세를 읽었다.

- 헤르만 헤세의 안경 -
출처: www.zocalopublicsqua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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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온다. 점심 식사를 하고 비를 맞으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안경에 빗방울들이 묻었다. 옷이 젖었다. 외장 하드디스크에서 몇 장의 사진을 보았다. 적당히 쓸쓸한 여름이다.

남부 독일의 어느 마을 옆

남부 독일의 어느 호텔 창. 밤새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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