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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전등 불빛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거미줄  끄트머리에서 여름밤
     바람은 찰라를 머물다 지난다. 그 머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속삭
     이는 풍경을. 거미줄 한가운데 어린아이 손톱 크기만한 거미가 앉아있
     었다. 그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끊어질 듯한 세계지만, 그 세계 속으
     로 무수한 것들이 스치고 지나감으로.
       
        불면증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 날 억지로 잠을  청하다 종종
     가위에 눌려 새벽에 놀라 깨기도 한다. 이런 날 자장가를 불러줄 여인
     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난 그 여인 대신 턴테이블이
     나 시디 데크에 음반을 올려놓고  잠을 청한다. 그러나, 음반이  끝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꼭 다시 일어나 한 번 더 바늘을 올려놓든
     지, 플레이버튼을 누르지만.
       
        TELDEC에서 "바흐전집"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때까
     지 녹음된 모든 바흐의 음악을 전집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족히 몇 백
     장은 나올 이 전집은 벌써부터  바흐 매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요즘은 Lisa Ekdahl이라는  71년에 태어난 여자의 재즈  보컬을
     듣고 있다. 그냥 편안한 목소리다. 가냘프고 여린, 꼭 풀잎에 맺힌 이
     슬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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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전기톱 학살 The Chainsaw Massacre』을 통해 본 97년의 한국




‘Asia plunging financial markets send shocks around the world’
이번 주 타임은 아시아의 주가 하락으로 시작된 세계적인 주가 폭락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WTO체제 아래의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세계 경제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한국의 주가폭락과 환율 급등은 세계 경제의 변화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제 불안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정부의 무능한 경제정책 때문인가, 아니면 기업들의 과도한 설비 투자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의 낙후된 경제 구조 때문인가. 그리고, 이런 경제 상태와 무관하게 난장판을 보이는 정치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 것인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무런 해답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런 우리의 상태를 영화로 옮긴다면, 혹시 토비 후퍼의 『텍스트 전기톱 학살』 비슷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토비 후퍼의 『텍스트 전기톱 학살』이라는 영화는 1974년도에 제작된 그의 데뷔작인 동시에, 1970년대의 미국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인 텍스트로 이해된다. 그것은 단돈 35만불의, 16미리 저예산 영화라는 것과 스플레터 무비Splatter Movie의 고전이라는 이 영화의 특성과 함께 매우 중요한 점일 것이다.

이 영화가 나온 것은 마샬 버먼이 ‘모든 것을 다시 가정으로’라고 지칭한 1970년대, 몇 명의 젊은이가 캠핑을 간다. 영화는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묘지가 파헤쳐진 장소를 지나쳐가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하다가, 여행을 하고 있는 다섯 명의 젊은이가 타고 가는 차에 낯선 이방인이 타고 지나감으로서 영화는 돌변한다. 그는 자신의 손을 칼로 그어 피를 내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도리어 휠체어에 앉은 프랭크린의 팔목을 칼로 긋고는 차에서 쫓겨난다. 그러면서 감독은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들을 사용을 한다. 별점을 본다거나, 차에 묻어있는 피 자국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프랭크린의 대사 같은 것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종교적인 상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한 명씩 한 명씩 살해당하는 것도 어떤 신비한 힘이나,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전기톱이나 망치, 칼 같은 것들이며 지극히 사실적이다. 그러나, 이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스플레터 무비’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것일 것이다. 언제나 죽음에의 공포는 기묘하고 어둡고 무서운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 그리는 죽음은 밝은 낮이나 혹은 밝은 전등 밑에서 이루어지며, 또한 전기톱이라는 기계문명의 산물로 죽음에의 공포가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관객은 두려워하기보다는 잔인하기 때문에 낯설어 하며, 공포스러워하기 보다는 역겨워 하며, 그러다가 웃기도 하는 묘한 감정의 엇갈림을 경험한다. 여기에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이 묘한 감정의 엇갈림은 베트남전쟁을 패하고, 냉전이 천천히 사라져가며, 반전운동과 좌파 운동의 물결이 천천히 시들어 가는, 그래서 버먼의 말처럼 다시 가정으로 향하게 되는 미국 젊은이의 상태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영화에서의 살인마로 등장하는 인물은 한 명이 아니라, 하나의 가족이며 가정이고, 또한 도살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먹는다는 차이점을 제외한다면, 다른 가족과 다를 것이 없다. 즉, 여기에서 우리는 ‘가정’이라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최근 페미니즘 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정의 해체’라는 공식과 맞물려 읽히며, 1990년대 헐리웃 영화들의 대표적인 이슈인 ‘가정의 재건’이라는 것과도 연관되어 읽힌다. 또한 이 영화는 시종일관 로우 앵글의 롱쇼트와 돌발적인 크로즈업으로 이루어지면서, 어딘가 덜 다듬어진 듯한 화면으로 관객의 옆을 파고들면서, 관객을 살인마로 만들었다가, 다시 희생자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관객의 위치를 흔들고 있다.

이제 스플레터 무비는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나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같은 영화로 익숙해져 있지만, 토비 후퍼의 『텍스트 전기톱 학살』은 앞의 영화들과 달리 1970년대라는 미묘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정치적 메타포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아직까지 토비 후퍼의 이 영화를 보고 해석해내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9시 뉴스를 보자. 그러면, 반은 대선에 관한 이야기이며, 반은 경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명퇴를 당한 아버지와 자퇴를 한 특수목적고 아들과 함께 티브이 브라운관을 통해서 전국방방곡곡으로 메아리친다. 텍사스에서 건너온 전기톱을 가진 살인마는 여기에 서서 전기톱의 시동을 건다. 혼란스러운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를 거친 미국 사회를 향해 전기톱을 돌렸듯이, 혼란스러운 80년대를 거치고도 아직도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를 향해 텍사스에서 온 살인마는 전기톱에 시동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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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에 쓴 '현대사회와 영화'라는 강의 때 제출했던 리포트다. 새삼스럽다. 이 땐 이런 식으로 글을 썼다.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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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오후와 저녁 사이에 난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과
     아침 사이 난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난 달렸
     다. 그러나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물결처럼 흐른
     다. 하지만 난 달렸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된 순간, 그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리
     고, 이때까지 그 유일한 일을 난 희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림자일 뿐이다. 희망의 그림자. 난, 아니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절망'이다. 그  절망을 만든 것은 우리들  옆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단
     지 희망의 그림자만    존재할 뿐. 절망 속에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글도 사랑도 꿈도 아닌 울음 뿐이다. 울 수밖에  없다. 고개를 숙
     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 수 밖에 없다.
        어제 술에 취해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달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치원까지 내려갔다가 술에 취해 중부고속도로 위를 질주
     했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뿐이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절망이며,
     그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울음 뿐이다.

        02.
        '울음'으로서의 저항? 그럴 지도 모른다. 운다는 것에 소극적인 의
     미의 저항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저항? 그렇다면, 과연  그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역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명명할 것
     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
     은 부르조아지들이 가난하지만 순결한  젊은 영혼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말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함부로 '고생'하면 큰 일  난다. 장애
     자가 될 수도 있고, 순결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자칫하면  죽을 수
     도 있다. 그러니,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그리
     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고생을 해야만  한다. '세상
     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지랄같은 소리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순
     결한 젊은 영혼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어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이 없으
     면, 돈을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한다. 돈을 빌리려면,  변변찮은
     담보물이라도 하나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죽음을 각오해야지. 그러다 죽어도  책임지지 못해.
     고작 죽는 것뿐인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03.
        IMF라고 난리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
     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돈이 많다. 하지만, 돈이 없었던 사람은
     아예 폭싹 내려앉아버렸다. 몇 해전 운동권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난
     그때 이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게  하려면 아예 뒤집어 엎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집회 때면,
     쇠파이프와 짱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한다). 그렇다. 뒤집어  엎지 못한
     다. 왜냐면, 인간이 뒤집어 엎을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맨날  '투쟁! 투쟁!'을 외친다. 난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역겹다.
        'YS체포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YS를 체포하면 어떻게  할까? YS를
     어느 대학 학생회실에 감금할까? 아니면, 검찰에 고발할  것인가? 즉,
     'YS체포대'는 정말로 체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하
     나의 순진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들은 맨날 '정권타도'을  외치는데,
     만약 그들의 소원대로 '정권'이 물러난다면, 어떻게 할까?  새로 내각
     을 만들고 헌법도 새로 고칠까? 즉,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점이다.
        내가 운동권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의  팔할은
     순진한 신입생들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한 풍경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
     이는 운동권 바보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정
     작 중요한 것은 그 풍경 속에 감추어진 이 세상의 본질일 것이다.

        04.
        비가 내렸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한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했다. 즉, 프랑스  혁명도 그
     런 것이라는 점이고, 4.19가 일어난 것도 그런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
     리 무수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데모를 하더라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정작 이 세상이 변하려는 기미가 보였을 땐, 누군가가
     온몸에 기름을 붓고 자살을 하거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뿐
     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혁명적  낭만주의는
     이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이라는 것이며, 광기의 산물이다.  광기는 필
     연적으로 피를 부르게 마련이다. 피를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성적
     인 작업은 계속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나누어
     진다. 모던을 믿는 이들은 계속 이성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
     람들이며, 포스트모던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이성적인 작업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알았으니, 이성을 버리고 광기를 수용하거나, 그
     러지 못할 바엔 아예 자살하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이다.

        05.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비가 내리고, 창 밖으
     로 새소리가 들린다는 것뿐이다. 순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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