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의 <가슴 붉은 딱새>(문학동네, 1996년 초판)을 꺼내 읽는다. 그리고 늘 생각나는 시 한 편을 옮긴다. 우리에게는 단종으로 알려진, 노산군이 17세 지은 시(詩)다.
원통한 새가 되어서 제궁을 나오니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밤마다 잠들려 해도 잠 못 이루어
어느 때 되어야 이 한 다 할꼬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
하늘도 저 애끓는 소리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시름에 찬 내 귀에는 잘도 들리는고
- 노산군(魯山君), <자규시(子規詩)>, 1457년.
17세의 사내가 지은 시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1996년 이 시를 읽고 한참 울었다. 문득 이 시를 읽으며, 그 때의 상념에 젖는다. 이 시를 짝사랑하던 여대생에게 보내주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무모한 짓이었구나. 시인 오규원 선생님이 작고한 지도 이제 꽤 되었구나....
17세는, 서툰, 그러나 피가 붉고 가슴이 뜨거운 시인의 나이이다. 더욱 16세기의 17세는 지금과 달라서 자식이 하나쯤 있을 수 있는 나이이며, 과거에 급제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더구나 노산군은 한 나라의 왕이었다가 강봉되어 귀양온 사내다. (... ...) 아,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血流春谷落花紅)"니! 정말 그가 시인이었을까, 아니면 비극이 그의 얼굴을 빌려서 참담하게 아름다운 한 시구를 역사 속에 편입시킨 것일까?
- 오규원, <가슴 붉은 딱새>, 4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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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규시 원문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聾尙未聞哀訴
何乃愁人耳獨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