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욘 포세(지음), 손화수(옮김), 문학동네
어느새 눈이 앞 차창을 온통 덮어버렸다, 나는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이제 보니 눈은 그쳤고 앞에 보이는 땅은 하얀 눈으로 덮였다, 숲 속 나무가지에는 하얀 눈이 쌓였다. 아름다웠다. 하얀 나무, 하얀 땅. 이제 차 안이 기분 좋게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차 안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19쪽)
하얀 눈 속에 갇히면 어떨까. 온통 하얀 세상. 그 하얀 공간 속에서 혼자 고립되어 잠들어갈 때, 어떨까. 이 짧은 소설이 주는 여운은 꽤 단단하고 슬프다. 결국은 가족 뿐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가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 입고 있는데 말이다. 세상은 하얗고 서로가 있다는 걸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숲은 광대하다. 숲은 하나의 세상처럼 크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세상 안에 있다. 이 세상은 어둡다, 너무나 어둡고 컴컴해서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너무나 커서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너무나 어둡고 컴컴해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는데, 아니, 저기 저 위에 어느새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둥글고 온화한 달, 어느새 하늘에는 별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별, 선명한 별들, 반짝이는 별들, 노란 달빛과 하얗게 반짝이는 별들. 아름답다. 그보다 더 적당한 말은 찾을 수 없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아름답다. (35쪽)
이렇게 소설을 쓴다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욘 포세 특유의 연극성이 들어났다. 장정일의 소설을 읽을 때 가끔 드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그도 극작품을 썼다. 이 소설은 눈 속에 갇힌 어떤 이가 그 속에서 죽음을 향해가는 과정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마 많은 이들이 여기에 감동했을 것이다. 나는... 죽음보다는 연극을 보는 듯한 서술 방식이 좋았다.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 지루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지만, 대화만 나누고 서로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든가 욘 포세만이 구사하는 작법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