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지로Alfred Giraud 테이스팅 클래스에 우연히 참가했다. 프랑스 위스키는 난생 처음이다. 프랑스 와인이야 늘 마시는 것이지만, 위스키는 ... 그러고 보니, 프랑스는 왜 위스키가 없지. 와인이나 코냑이 너무 막강해서 그런 건가. 그런데 이번 클래스에 참가하면서 전 세계 1인당 위스키 소비량은 프랑스가 1위라고 한다(그래서 프랑스 애들이 가면 갈수록 와인을 마시지 않는 건가). 또한 위스키의 재료가 되는 맥아(몰트)의 생산량은 세계 2위라고 하니. 물이 좀 나쁜 거 빼곤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추어져 있는 셈인데. 물도 알프스 쪽으로 가면 괜찮은 걸로 알고 있으니까, 의외로 위스키 시장의 숨겨진 인재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보리로 술을 담그는 문화를 나폴레옹 때부터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주로 과일을 재료로 하는 술들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다고. 그래서 이번 클래스에 맛 보게 된 '알프레드 지로'로 실제 위스키 증류를 한 것은 수십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생 위스키 브랜드가 가지는 파워는 예사롭지 않았다.
알프레드 지로 브랜드에 대한 설명과 함께 프랑스 위스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와인과 코냑의 나라답게 '블랜딩'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높게 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위스키에 막 입문한 사람들이 가지는 여러 오해들 중 하나가 싱글몰트 위스키가 좋고 블랜딩된 위스키(조니 워커나 발렌타인 등)은 좋지 않다는 것인데, 실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싱글 몰트는 완성도 면에서 각각 증류소마다의 편차가 있고 심지어 캐스크마다 맛이 다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점에서 블랜딩 위스키는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도리어 높은 평가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피트 향 가득한 싱글몰트 매니아라서...)
알프레드 지로의 위스키는 블랜딩 위스키다. 최근에 소량으로 출시된 나온 싱글몰트 위스키인 호라이즌을 제외하면. 실은 알프레드 지로 위스키들 대부분은 소량으로 수입된다. 이유는 생산량 자체가 많지 않고 각 나라별로 몇 백 병 보내지도 못하는 수량이다. 그러니 보이면 그냥 사두는 것이 유리한 위스키라고 할까.
위스키는 어느 정도 술 느낌, 즉 타격감이 있어야 된다. 나는 알프레드 지로 하모니가 좋았는데, 적절한 무게와 은은한 피트향과 스모키함은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 위스키에 시가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우아한 위스키의 풍미를 보여준 헤리티지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을 보여주었다. 클래스에 참가한 가장 많은 이들이 이 위스키를 선택했다.
싱글몰트 위스키인데, 이건 위스키라고 하기엔 너무 산뜻하고 향기로웠다. 높은 도수의 위스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마저도 단숨에 사로잡을 듯한, 마치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느낌을 선사했다. 클래스에 참가했을 때, 이 호라이즌부터 테스팅을 했는데, 그냥 단번에 신생 프랑스 위스키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한 잔씩 테스팅을 했고 한 잔 마시고 난 다음 물로 가볍게 입 안을 헹구어 내며 마셨다. 각각마다 특색이 명확하고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풍미를 보여주여 무척 기분 좋은 테스팅 클래스였다. 이런 식으로 좋은 위스키를 맛보면, 좋지 않다. 입맛은 너무 간사하고 사악해서 좋은 건 너무 잘 알아내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얇아지는 지갑으로 고통받기 일쑤다.
하지만 저 영롱한 빛깔을 어쩌란 말인가! 가끔 위스키라도 마셔야 가난한 처지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건 아닐까. 결국 키치적 태도이겠지만, 어쩌란 말인가. 잠깐의 도피와 착각으로 고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야...
몇 병 수입되지 않기 때문에 알프레드 지로가 보이면 한 병 사두어야겠다. 아, 참고로 병도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