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인상주의와 까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지하련 2025. 1. 19. 12:35

 

인상주의 조각에 대해선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네, 피사로, 르느와르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회화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도 있지만, 낭만주의 조각에서 인상주의 조각으로의 이행은 눈에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로델의 조각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킨다. 

 

결과적으로 양식이란 동시대 미술의 흐름 안에서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예술사에서는 '시대착오적 양식'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인상주의의 시대에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프랑스 아카데미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예술가적 고집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나 고집도 어느 정도가 있지, 이들의 미술은 문화예술의 발전을 저해한 대표적인 사례다. 하긴 현대에도 그런 예술가들은 많으니까. 대신 이들은 근대 프랑스 미술계 헤게모니의 꼭대기에 있었으며, 인상주의 양식이 뒤늦게 인정받게 되는 것도 이들이 속한 아카데미 때문이었다. 

 

인상주의 양식은 순간에 집중하며, 그 때 그 순간의 존재를 탐구한다. 고전주의적 양식이 그 속에서 변하지 않고 영원하고 불변하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인상주의는 한 순간 한 순간 사라지고 또 사라지고 결국 사라지게 될 어떤 순간을 담아낸다. 고전주의 예술이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담아내기 위해 지각되는 현실의 수정이나 왜곡을 용인하지만, 인상주의 예술은 도리어 너무 감각지각에 충실하다가 보니, 수천 수만년 동안 지적인 역량을 축적해온 우리들에겐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다른 말로 하지면 원근법적으로 보는 것이 실제적이고 평면적으로 보는 것이 현실을 왜곡해서 보는 것이라는 착각이다. 

 

우리는 원근법적으로 보고 인식하는 것을 훈련받고 교육받았을 뿐, 실제 감각지각에서는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지적인 양식이라고 할 때, 대체로 원근법적이며 고전적 경향을 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인상주의 양식은 반-지성적이며 철저하게 감각지각에 충실한 예술 양식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리고 이 인상주의가 세잔에 이르러 새로운 지적 양식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어쩌면 인상주의의 신비일지도 모르겠다) 

 

로댕의 제자이지만, 로댕보다 훨씬 감각적이며 활력이 넘치고 우아하다. 적어도 이 작품에 있어선. 까미유 클로델의 대표작품들 중 하나인 <La Valse(왈츠)>는 춤을 추는 연인을 표현하고 있다. 인상주의 회화가 평면성에 집중하듯 인상주의 조각은 표면에 집중하다. 인상주의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의 <La Valse>가 두 남녀가 추는 왈츠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라면, 그와 비슷하게 클레델은 그 음악을 브론즈의 표면 위로 수놓는다. 인상주의 조각의 대표적인 특징은 시시각각 변화는 외부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표면 질감의 처리다. 마치 물결 치듯 표면은 굴곡져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 마음과 사랑, 그것을 향한 맹렬한 움직임을 담고 있다. 인상주의 조각이 종종 인상주의 회화보다 더 감동적인 이유는 너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자연 풍경에만 집중했던 회화와 달리 조각은 우리들이 사는 공간을 점유하며 우리 삶을 인상주의적으로 노래하고 표현하기 때문이 아닐까. 

 

끌로델의 <왈츠>가 슬픈 이유는 브론즈 아래 부분을 떼어내면 넘어진다는 것이다. 춤을 추는 두 남녀가 가볍게 여기저기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 그래서 자코메티는 그렇게 조각을 만든 것일까. 최소한의 지지대로 인간 실존의 고난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 사랑이 얼마나 지속되기 어려운 지 드러내기 위해. 

 

결국 끌로델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생을 마감한다. 나는 현실 세계에서 완고하고 고집센, 가부장적인 예술가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그리고 로댕을 떠올리곤 하고, 그런 남자에게 사랑을 구애하는 여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세상은 종잡을 수 없고 사랑은 신비한 것이니까.  

 

 

 

 

어떻게 미니어쳐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찾아봐야겠다. 가격이 제법 나가긴 하겠지만. 

 

 

까미유 클로델이다. 그녀의 동생은 폴 클로델도 프랑스 외교관이자 시인이었다. 

까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  Rêve au coin du feu , 1899–1905. White, grey-veined marble and bronze.

 

아, 이런 작품도 참 좋지 않은가. 그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로댕에 버금 가는 예술가인데 말이다. 나중에 까미유 클로델에 대해 긴 글을 적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