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노먼의 인터랙션 디자인 특강 The Design of Future Things
도널드 노먼(지음), 김주희(옮김), 유엑스리뷰
2009년에 출간된 책인데, 2022년에 번역되었다. 디자인 전문서적이라, 딱히 읽을 사람도 많지 않으니, 이제서라도 번역된 것이 다행이랄까. 이 책은 원서 제목처럼 미래의 사물들에 대한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히는 인텔리전스 제품과 사람과의 인터랙션(interaction)에 집중한 책이다.
최근 나는 'AI 기반 프로덕트를 위한 UX'라는 제목으로 세미나 발표를 하였다. 최근 나는 AI 기반 제품/서비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제품/서비스와 사람들 간의 인터페이스, 그리고 그 경험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꽂혀있는데, 의외로 여기에 대해 연구가 덜 되어 있고 연구하기도 어렵다. 일종의 학제간 연구를 기반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여러모로 유용한 시사점들을 제공해주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사물과 인터랙션을 주고 받고 있다. 가령
주전자 소리는 신호를 보내고 사람들은 소통을 한다. (83쪽)
물이 끊는다는 걸 우리는 소리를 통해 알고 있다. 주전자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는 걸 보고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단서들을 캐슬프란치는 '암시적 소통'이라고 말한다.
"특별한 학습, 훈련, 전달이 필요하지 않다. 단순히 일반적인 행동과 그에 대한 인식의 지각적 패턴을 활용하는 것이다."(90쪽)
암시적 소통은 방해와 간섭 없이 정보를 전달하고 의식적인 주의집중조차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지능형 사물디자인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발자국, 어수선한 연구 실험실, 밑줄 쳐진 글, 승강기나 가전제품에서 나는 소리 등. 이 모든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추론하게 하고, 우리가 있는 환경에서 어떤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식하게 하며, 언제 나서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게 해준다. (90쪽)
암시적 소통이라고 했지만, 이 소통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을 기반으로 할 것이다. 닫힌 창 밖으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건 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걸 보고 알 수 있듯이, 대부부의 암시적 소통은 휴리스틱한 UX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전기자동차는? 혹시 소리없이 뒤에서 다가온 전기자동차 때문에 놀란 경험을 한 두 번 있을 것이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해 확실히 적은 소음을 가지고 있는데, 자동차 내부에서는 쾌적함을 줄 지 몰라도 좁은 이면 도로 뒤로 소리없이 자동차가 나타날 때는 다른 경험일 것이다.
소리와 진동은 중요한 환경 요소에 대한 자연스러운 지표이자 암시적 신호를 제공해준다. 전기자동차의 엔진은 너무 조용해 운전자조차 작동하고 있는지 모를 수 있다.(92쪽)
어딘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단순할수록 해결하기 쉽고 복잡할수록 해결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집에 공구상자 하나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어느 것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고 그런 접근도 좋지 않다. 분명한 것은 예전보다 확실히 복잡해졌다. 모든 것들이. 하지만
정해진 하나의 길은 없지만 직관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다. (98쪽)
제임스 깁슨(James Jerome Gibson, 인지심리학자)은 행동 유도성을 이야기하며 이는 동물, 또는 사람이 세상의 사물에 대해 수행할 수 있는 행동 범위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새로운 사물을 만나 새로운 상황에서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일종의 방향이며 이를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효과적이며 인지할 수 있는 행동유도성을 제공하는 것은 커피잔, 토스터, 웹사이트와 같은 오늘날 사물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다. 자동화된 자율 지능형 기기라면, 인지할 수 행동유도성을 통해 우리가 그 기기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지를 알고, 마찬가지로 그 기기와 세상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소통이 되는 행동유도성이 필요하다. (97쪽)
그렇다면 지능형 사물에서는 이는 어떻게 구현될까?
시스템이 목표와 의도를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시스템에서 따르고 있는 전략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103쪽)
그런데 명시적으로 보여줄 수 없다. 최근의 AI 서비스들은 Input을 알 수는 있으나, Output이 나오게 되는 추론 과정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AI 시스템을 Black Box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Input과 Output 간의 명시적이고 투명한 인과과정을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AI 시스템에서의 UX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스마트 기계는 동기를 추론하기 위해서든,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해서는 안 된다.
기계가 노력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기계는 틀릴 수도 있다. 둘째, 기계가 노력한다는 것은 기계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기계는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기계는 사람의 행동을 추측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은 기계가 무엇을 할 지 예측하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혼란이 생길 것이다. (107쪽)
그러나 지금 AI의 발전 속도를 본다면, 기계는 노력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편안함에 젖어있다. 세상에 본연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으로부터, 복잡하고 강력한 기계에 본연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기계, 약물이 실제만큼 위험해 보인다면 사람들은 그에 맞게 행동을 변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위험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충격도 완화되고, 살균처리되듯 희석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실존하는 위험을 인지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위험의 진짜 모습을 다시 불러와야 하는 것이다. (118쪽)
어쩌면 불편함을 부르는 디자인이 필요하게 되는 걸까. 도널드 노먼은 '과잉자동화'에 대해 경계한다.
과잉자동화, 이는 장비 자체가 너무 뛰어나 사람이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이론적으로는 사람이 자동화를 감독하고 항상 작동을 감시하고 일이 잘못될 때 언제라도 개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지만, 자동화가 매우 잘 되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감독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148쪽)
그는 위험보상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며, 자동차 주행을 보다 위험하게 보이게 만들면 보다 안전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실제 조사결과에도 나타난다. 운전자에게 보다 많은 역할을 수행하게 만들 때 교통사고 빈도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 제이머 헌트의 <<스케일이 전복된 세계>>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노먼은 사람을 스마트하게 하느냐(증강augmentation), 사람을 게으르게 하느냐(hyper-automation)으로 나누지만, 실제 기술 발달은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물들과의 의사소통을 준비해야 한다.
휴먼 컴퓨팅은 사람에 대한 사람을 위해 만드는, 사람 모델을 기반으로하는 예측 인터페이스에 대한 것이다. 기존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넘어서는, 행동 및 사회적 신호를 이해하고 모방하는 것을 포함한 자연스럽고 사람다운 상호작용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142쪽)
의사소통, 설명, 이해, 이 세 가지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계든, 지능이 있는 대상과 작업하기 위한 핵심요소다. (188쪽)
사람과 기계의 소통에 꼭 필요한 피드백 - 적절한 피드백은 즐거움을 주는 성공적인 시스템과 답답함과 혼란을 야기하는 시스템 간의 차이를 만든다. (191쪽)
2009년, 도널드 노먼은 요즘 단어로 AI 기반 제품들이 갖추어야 할 디자인의 성격을 정의하려고 했다. 지금 읽어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는 "디자인이 미디어처럼 공유되는 의사 소통과 기술로 간주되는 순간, 디자인 철학 전체가 급진적으로, 그러나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 여겼다.(95쪽)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여 '지능형 시스템까리 다투게 되는 날이 오게 될까? 냉장고는 먹으라고 유혹하는데 체중계는 먹지 말라고 하고 가게는 구입하라고 유혹하는데 휴대폰 속 개인 비서는 사지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233쪽)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지능형 시스템을 개발하는 이들 모두가 한 번 쯤 읽어둘 만한 책이다. 앞으로 자주 AI와 UX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될 듯 싶다.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책 마지막 부분에 도널드 노먼은 지능형 시스템을 위한 디자인 규칙을 제시하였다. 꽤 시사적이라 옮긴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기계 내부에 구현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나열해 놓은 규칙
디자인규칙 1: 풍부하고 복잡하며 자연스러운 신호를 제공하라
디자인규칙 2: 예측 가능해져라
디자인규칙 3: 양질의 개념모형을 제공하라
디자인규칙 4: 이해할 수 있는 산출물을 만들어라
디자인규칙5: 성가심없이 지속적인 인식을 제공하라
디자인규칙 6: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위해 자연스러운 매핑을 활용하라 (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