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2,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하련 2025. 1. 26. 15:04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지음), 곽광수(옮김), 민음사 

 

 

Natura deficit, fortuna mutatur, deus omnia cernit. 자연은 우리들을 배반하고, 운명은 변하며, 신은 저 높은 곳에서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155쪽) 

 

 

조그만 나의 영혼, 방랑하는 어여쁜 영혼이여, 육체를 받아들인 주인이며 반려인 그대여, 그대 이제 그 곳으로 떠나는구나. 창백하고 거칠고 황폐한 그 곳으로. 늘 하던 농담. 장난은 이제 못하리니. 한순간 더 우리 함께 낯익은 강변들과, 아마도 우리가 이젠 다시 보지 못할 사물들을 둘러보자 ... ... 두 눈을 뜬 채 죽음 속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하자. ... ... (236쪽) 

 

가끔이지만, 지금 죽으면 어떨까 하곤 생각한다. 때로는 죽음이 무섭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이 생각은 더 넓어진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죽음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결국 '죽어가는 내'가 있을 뿐이다. 그 앞에서 황제는 지난 날들을 떠올린다. 그 소설은 죽음을 앞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지난 날들을 독백조로 이야기하는 것을 담고 있다. 

 

어떤 그늘도, 죽음도, 패배도, 우리들이 자신에게 스스로 가하는 그 한결 더 미묘한 패주도, 그리고 어쨌든 우리들을 찾아오고야 말 노년도 나의 나날들 위에 드리워져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 매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면서 동시에 최후의 시간인 것처럼 나는 서두르는 것이었다. (59쪽) 

 

하지만 그것은 후회이거나 번민이지 않다. 도리어 힘들었으나, 가치 있었던 날들에 대한 담담한 불러내기다. 소환이다. 기억 속에서 지금은 없는 사람들이 걸어나와 하드리아누스에게 말을 건네고 손을 잡으며 로마 제국을 이야기한다. 황제는 차분하게 자신을 이야기하면서 미래를 향해 손을 내민다. 열정적이면서도 사려깊음을 잃지 않는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아테네를 떠났다. 그 이후 나는 그 곳에 다시 간 적이 없다. (128쪽)  

 

그러나 때론 쓸쓸하고 때론 우울해지기도 한다. 

 

미래란 중요치 않은 것이 되어버렸고, 신탁(神託), 신에 질문을 하는 것도 그만두게 되었으며, 별들은 이제 하나의 궁륭(穹隆)에 그려진 경탄할 만한 그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때만큼 큰 희열을 느끼며 섬들이 흩어져 있는 수평선 위의 창백한 새벽빛과 끊임없이 철새들이 찾아드는 요정들에 바쳐진 서늘한 동굴들, 황혼녘에 무겁게 날아가는 메추라기떼를 바라본 적은 그 이전에는 결코 없었다. 나는 여러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었다. 몇몇 시인들의 작품은 옛날보다 더 좋아보였지만, 대부분은 더 나빠 보였다. 그리고 나 자신이 쓴 시는 여느 때보다 덜 불완전한 것 같았다. (15쪽) 

 

거대한 제국의 황제. 로마를 떠나 지중해 세계 여러 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이었다. 국경 지역에서의 전투도 치러야 했으며, 여러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해야 했다. 이렇게 나가 있는 동안 로마에서는 황제 몰래 이런저런 정치적 음모가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로마황제들은 자주 암살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딘다. 그런 위험 속에서 하드리아누스는 시를 썼고 사람들을 만났으며 위대한 로마를 꿈꾸었다. 

 

1권, 2권으로 나온 이 소설은, 2권 후반에 실린 창작 노트로 그 빛난다. 유르스나르가 어떻게 이 소설을 준비했으며 어떤 관정을 거쳤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그녀는 이 소설로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프랑스 소설가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작년 내내 이 책을 읽었다.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 또한 슬펐고 힘들었으며 견디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지금 여기를 떠나 저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아마 그도,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어둠이 경이를 이루고 있었다. : 저녁 어둠 가운데 사자의 벗긴 가죽이 나의 천막 입구에서 두 말뚝에 걸려 별빛을 받으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향료를 뿌렸는데도, 그 가죽에서 풍기는 야생동물의 냄새는 밤새 내내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71쪽) 

 

 

 

 

Marguerite Yourcen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