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일년만에 캠핑을 갔다. 어떤 이유에선가, 혼자 운전하는 것도 그렇고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것도 부담스럽다. 혼자 전시를 보러 가거나 카페에 앉아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곤 하는데, 운전이나 여행은 왜 주저하게 되는 걸까. 하지만 올핸 혼자 자주 캠핑도 가고 여행도 떠나볼까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혼자서도 잘 놀고 아내도 대내외 활동에 열심이니, 나도 혼자 하는 것에 조금 더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다. 또 몸도 마음도 바빠질 테니, 도심을 떠나 자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겠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고 겨울이 떠나지 않은 이월의 마지막 주말, 아침부터 서둘렀다. 코스트코를 가서 와인 몇 병을 사고 쿠팡으로 시킨 냉동 식품과 밀키트를 챙겨 출발했다. 집에서 가평의 캠핑장까지 2시간. 네비게이션이 시키는대로 따라간 길이지만, 멀긴 했다.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사이의 장소로 가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차라리 태안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하지만 태안은 가평과 비교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차가 막히지 않는다는 가정을 깔고 있는 것이지만, 막히면 더 대책 없는 거리다).
이번엔 후배와 그의 아들과 함께 다녀왔다. 흔쾌히 우리 아이와 그의 둘째가 같이 동행하여 기분이 좋았다. 일기예보에는 살짝 비가 온다고 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 오는 캠핑장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으나, 타프 치는 것이 여간 일이 아니다. 후배가 타프 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음에는 타프를 쳐야겠다고 소심하게 다짐해본다. 늘 아들과 함께 텐트를 치다가 이번에는 혼자 쳤다. 그리고 성공했다.
어쩌면 20세기 후반 최고의 여행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이번 캠핑에서도 나와 동행해주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나는 안다. 돌아오는 사람, 떠나가는 사람의 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서 그곳에만 가면 어쩐지 반가움도 더 부풀려지고, 아쉬움도 더 부풀려지는 듯한 그런 곳이 이 세상에는 있음을. 섬세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암스테르담에서 눈물의 탑 언저리를 맴돌며 부드럽게 잡아끄는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눈물의 탑 주변에는 뒤에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 두텁게 쌓여 있다. 요즘은 그런 이별의 아픔을 영 느낄 수가 없다. 여행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것도 아니고, 가야 할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무사히 돌아올 확률도 훨씬 크니까 말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교회 입구의 대리석 기둥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례자의 손자국이 있다. 내 손길까지 보태어 깊이 패인 손가락 자국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이렇게 시작하는 세스 노터봄의 이 책은 지금 몇 년째 읽는 중이다. 한 번 각오하고 읽어 삼분의 일 정도 읽다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도시 이야기에서 멈춰 그 도시 자료를 찾다가 손에서 책을 놓치고 말았다. 스페인 내륙의 어느 도시였는데, 가끔 뉴욕타임즈 같은 곳에 여행 기사로 나오기도 한다. 아마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올릴 글에 그 도시 이름도 등장하겠지.
와인도 두 병 챙겨갔는데, 한 병은 데일리샷으로 주문한 것이고, 나머지는 코스트코에서 구한 와인이다. 코스트코에 진열되는 프랑스 와인은 챙겨야 겠다는 생각을 이번에도 했다. 와인을 마시며 어둠 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냥 문득 내가 너무 쉽게 인생을 살아왔나 하고 생각했다. 늘 술을 마셨고 좋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나를, 혹은 상대방을 아프게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까 말이다. 솔직함이 현대의 미학이라고 여기지만, 그는 나에게 너무 솔직해지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무기를 적절하게 활용하라고. 그와 동시에 나 스스로 나의 무기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여러가지 고려 사항들을 생각하며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떠올렸다.
술을 많이 마셨고 다음날 운전 때 살짝 졸렸던 것같다. 차가 밀릴 때, 한 두 번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기도 했다. 역시 운전할 때 음악을 들으면, 음악의 템포에 운전 패턴도 따라 변하는 것같다.
캠핑장은 아담하다. 개울가를 따라 일렬로 캠핑 자리가 있었다. 개울가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나, 아마 어딘가 있을 것이다. 캠핑장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좋다. 옆으로 강을 끼고 들어온다. 여유만 있다면 강가 카페에 들려 잠시 쉬었다가 들어와도 될 것이다. 캠핑장은 괜찮다. 주방세제도 제공해준다. 가끔 차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봄이 오면 차소리보다 개울가의 물소리가 더 크게 들릴 것이니, 걱정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