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유디트 샬란스키

지하련 2025. 1. 29. 21:54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유디트 샬란스키(지음), 박경희(옮김), 뮤진트리 

 

 

기대 이상의 독서였다. 서정적인 서술과 묘사는 마음을 움직였다. 이젠 없는 것들에 대해서 쓴 글들 모음집인 이 책은 수필이면서 픽션이며 다큐멘터리였다. 내가, 혹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로 이끌며 기록의 소중함을 알린다. 그러나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실. 흔적으로 남았거나 아예 사라진 것들에 대해서 저자는 적고 노래한다. 

 

시의 파편들이 끝없는 낭만주의의 약속임을. 아직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현대의 이상理想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시예술은 지금까지도 어떤 문학 장르보다 더 함축적인 공허, 의미를 증폭시키는 여백을 갖고 있다. 구두점들은 단어들과 함께 유령의 팔다리처럼 생겨나 잃어버린 완벽함을 주장한다. 원형은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면 사포의 시들은 우리에게 한때 눈이 시리도록 화려하게 채색된 고대의 동상들처럼 낯설었을 것이다. (153쪽)

 

그리고 나도 이 책에 옮겨진 사포의 시를 조용히 읽는다. 

 


그는 마치 신과 같아 보이네 
너와 마주 앉아 달콤한
네 말에 귀 기울이는
그 남자는

 

너의 사랑스런 웃음에
내 가슴 수줍게 떨리고
잠시나마, 너를 바라보면
나는 할 말을 잃네

 

내 혀는 굳어 단단한 매듭이 되고
찰나에 피부 속을 떠도는 작은 불,
눈은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귀는 윙윙거리네

 

땀이 쏟아지고, 온 몸이 떨려와
나는 풀보다 더 푸르고
나 스스로 내가
죽은 사람처럼 보이네 

 

그럼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은 .... (144쪽 ~ 145쪽)

 

 

사포의 시집을 사겠다고 생각한 지 벌써 십수년, 아니 그보다 더 된 것이다. 아직도 사포의 시집은 사지 못했으니. 나는 어느 새 에로스를 잃어버린 것일지도. 

 

부처와 공자는 아직 태어나기 전이고,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철학'이란 단어는 아직 고안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로디테의 하인인 에로스는 이미 세상을 완고하게 지배하고 있다. 에로스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신일 뿐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분명한 증상을 가진 질병이기도 하다. 한 사람에게 밀어닥치는 자연의 횡포, 바다를 채찍질하고 참나무 뿌리까지 뽑아내는 폭풍, 거칠고 길들일 수 없는 짐승, 한 인간을 기습하여 제어하기 어려운 욕망을 부채질하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유발하는 달콤하고 씁쓸한, 기력을 소모시키는 열정. (146쪽) 

 

카스피해 호랑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약 10,000년 전에 시베리아 호랑이와 카스피해 호랑이는 서식지가 나뉘며 두 아종으로 분리되었다. 후자는 아락세스강 상류 유역에 살았다. 탈리시 산맥의 울창한 구릉지와 평지로부터 랜캐란의 저지대까지, 카스피해 남부와 동부 강기슭에, 엘부르즈 산맥의 북쪽에서 아트렉 강의 하류로, 코페트다그 산맥의 남쪽에서 무르갑강 유역을 비롯해 아무다리아 강의 상류와 지류까지, 아무다리아 골짜기에서 아랄해, 멀리는 제라프샨 강의 하류까지, 일리 강을 거슬러 올라 터커쓰 강을 축으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분포했었다. 그러나 대대적인 포획과 서식지의 소멸로 20세기 중반 이후 카스피해 호랑이는 사라졌다. 

 

말하자면 세계는 어느 정도는 조망이 불가능한 스스로의 아카이브라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와 무생물체는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과 결론을 끌어내려는 시도로 가득한, 엄청나게 길고 매우 지난한 기록체계를 가진 문서이며, 분류학은 생물학적 다양성을 지닌 복잡한 아카이브를 색인화하고, 진화론적 계승의 끝없는 혼돈에 그럴싸한 객관적인 구조를 부여하는 사후 시도에 불과하다. (25쪽) 

 

문자는, 화레즘의 학자 알 비루니가 표현했듯,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스스로 번식하는 존재이며 처음부터 유전이나 혈연과 무관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이었다. (29쪽) 

 

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파될 확률이 높은 매체이자 기록되고 인쇄된 이후의 시간의 흔적이 새겨지는 열린 타임캡슐이며, 모든 판본이 저마다 폐허와 무관하지 않은 유토피아적 공간임을 증명한다.(29쪽) 

 

이런 이유로 저자는 이 책을 썼을까. 어떤 것들은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찾으면, 한국에서도 참 많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이 주제로 글을 써서 책을 내게 될까. 너무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이 많은 지역에서, 그것의 흔적과 의미를 묻는 작업은 과연 현대적, 혹은 동시대적 가치를 가질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포는 이제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그녀의 시 일부만 남아 세상을 떠돌며 기억해달라고 요청할 뿐. 

 


그녀와 동향 사람이고 동시대인이었던 알 카이오스에 의하면서 그녀는 기품있고 제비꽃처럼 매력적이고 꿀처럼 달콤한 미소를 지었으며, 소크라테스는 아름답다고, 플라톤은 현명하다고, 카다라의 필로데모스는 열 번째 뮤즈로, 스트라본은 놀라운 존재로 그녀를 묘사했다. 호라츠는 남성적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생각한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2세기 후반이나 3세기 초반의 파피루스에는 사포가 못 생기고, 상당히 작고, 피부가 검었으며 경시할 만한 여성애자였다는 주장이 펼쳐진다. (149쪽) 

 

책 서두에 실린 글에선 문화의 다양성은 그 귀결이 어떤 식이든 가치 있는 것일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헤로도토스의 증언에 따르면, 칼라티에인들은 본인들은 죽은 부모를 먹으면서도 그리스인들이 죽은 부모를 태우는 풍습에 대해서는 강한 혐오감을 보였다고 한다. (13쪽) 

 

칼라티에인의 풍습은 고대인들의 사회에서는 의외로 많이 등장하는 모습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책에게서도 등장하는 식인의 풍습은 추억을 자신의 몸에 새기며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풍습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쿠루병(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 생겼다. 

 

죽음이라는 전환점은 유산과 기억의 출발점이며 조사(弔詞)는 각 문화의 원천이다. 사람들은 죽음으로 인해 벌어진 삶의 빈틈과 갑작스러운 정적을 노래와 기도와 이야기들로 채우며 부재하는 대상에 다시 한 번 생기를 부여한다. (14쪽) 

 

지금은 사라진 종교인 마니교에 대해서도 나온다. 한 때 세계 3대 종교였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아직도 연구되는 종교이기도 하다. 한글로 된 책을 찾아보니, 의외로 없었다(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마니는 물결치듯 부드러운 동아람어로 말하지만, 그의 말들은 단호하고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가 다시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악을 동반한 선, 어둠을 동반한 빛, 물질을 동반한 영혼, 삶과 죽음처럼 명백히 다른 영역에 속하는 두 본성의 혼합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집처럼 느끼지 않아야 하며, 집조차 짓지 말아야 하며, 아이도 낳지 말고 고기도 먹지 말 것이며, 육신의 즐거움에 빠져서도 안 된다. 최소한의 물질만 소유하도록,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땅을 경작하고, 채소를 자르고, 열매를 따는 것들은, 그렇다. 풀 한 포기를 밟는 것조차도 그 안에 담긴 빛을 아프게 한다. (197쪽) 

 

전체적으로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역자가 공을 들였을 것이다. 유디트 샬란스키(Judith Schalansky)의 책들을 몇 권 더 읽어야겠다. 최근 뮤진트리에서 나온 책들을 자주 읽는다. 책을 읽다보면 특정 출판사의 책들을 자주 읽는데, 뮤진트리도 그 중 하나다. 나에겐 이것도 참 흥미롭다. 갤러리에 자주 다닐 때에도 특정 갤러리를 선호했는데, 출판사도 그런 듯 싶다. 사적인 취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유디트 샬란스키(Judith Schalan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