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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새벽에 잠 들었는데, 새벽에 눈을 떴다. 마음이 무겁고 복잡한 탓이다. 

나이가 들면 사라질 것이라 믿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근심 걱정은 더 많아진다. 

내 잘못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건지 모르겠다. 


젊을 땐 내 잘못이 아니라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원래 인생이 이런 게 아니라 내 잘못이라 여기게 되는 건 왜 그런 걸까. 

내가 제대로 나이가 들고 있긴 한 건가. 


인터넷을 떠돌아다는 영상이 기억나 다시 보게 된다. 

사랑이라 ~. 

참 미안하고 참 슬프다. 


예능프로라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회와 회한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사이로 고백하고 되돌이고 싶은 저 노인의 외침이

흰 눈들 사이로 사라진다. 

방송 출연진의 탄식이 흘러나오고 ... ... 

참 미안하고 슬프다. 

그게 첫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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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ID 레이블. 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레이블이 될 것이다. 집에 몇 장 있는데, 어디 꽂혀있는지, 나는 알 턱 없고. 결국 손이 가는 건, 역시 잡지 부록으로 나온 BEST COLLECTION이다. 레코드포럼, 매달 나오는 대로 사두었던 잡지, 그 잡지의 부록은 클래식 음반 1장, 재즈 음반 1장. 제법 좋았는데. 


유튜브가 좋아질 수록 음반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하기 힘들던 시절의 아련함은, 우연히 구하고 싶은 음반을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아는 이들을 불러모아 맥주 한 잔을 하며 낡은 영국제 앰프와 JBL 스피커로 밤새 음악을 듣던 시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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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유적이란, 비-현실적이다. 마치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만, 기억에 남지 않고 현실과는 무관하거나 반-현실적이다. 가야 시대의 고분 위로 나무 하나 없는 모습을 보면서 관리된다는 느낌보다는, 신기하게도 나무 한 그루 없구나, 원래 묘 위엔 나무가 자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생각은 논리와 경험을 비껴나간다. 그 당시 인구수를 헤아려보며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사람들이 며칠 동안 일을 했을까 생각했지만, 이 역시 현실적이지 못했다. 


자고로 현실은 돈과 직결된 것만 의미할 뿐, 나머지는 무의미했다.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20대 때 알았더라면, 나는 돈벌기에 집중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이 점에서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그러나 불편하기만 한 비밀을 알려준 셈이다. 


여름휴가다. 





사람들은 바다로 들어갔지만, 해변 근처만 얼쩡거릴 뿐, 깊은 바다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아예 걸어다녔다.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은 좋았지만, 그건 떠있다는 기분보다는 내 눈높이로 낮은 파도가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파도는 햇살을 머금고 소리를 내며 내 눈 앞까지 와서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내 눈 앞에서 사라진 것들은 참 많았다. 사라진 것들의 목록을 적고 싶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 그것들이 걸어나와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기억되지만, 실현되지 않고 개념은 절대로 개별화될 수 없다. 






아들에게 공룡발자국을 설명해주었지만, 그에겐 너무 어렵거나 너무 낯설거나, 무서운 것이었다. 공룡은 사라졌고 흔적으로만 남았다. 가끔 우리의 영혼이 분자, 원자 따위까지 쪼개질 수 있다면, 그것들이 공기 속에서, 혹은 시간에서 서로 연결되어 사유할 수 있다면, ...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던 사이에 아들은 저 멀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해변을 따라 나있는 나무 산책로는 아이가 뛰기엔 다소 위험해보였고, 아마 이 사소한 위험이 그를 자극했을 것이다. 





여름휴가 때마다 도서관으로 가던 버릇은 여전해서 휴가 마지막 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원래 계획은 휴가지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그건 너무 사치스럽고 공허하기만 한 상상일 뿐이다. 


요즘 자주 내일이 두렵고 무섭다.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사십대가 되었고 사십대가 되자 무력하기만 한 나를 보고 있을 수 조차 없다. 그런데 아마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애초에 이 나라의 시스템이 잘못 설계되거나 사소한 설계 변경들이 모여 문제 해결력은 커녕, 장애 처리에서만 모든 자원이 소비되기에 이르렀다. 시스템의 문제이니,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도입한 자들은 이미 없고 그걸 운용하는 이들은 경험 없는 초짜들이거나 낙하산들이다. 아니면 그렇게 스스로를 포장하고 언론들이 뒷받침해준다. 언론들은 연일 정부를 비난하지만, 그 비난도 계산된 정치적 타협일 뿐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을 게다. 


여름휴가를 다녀왔고 여름휴가가 끝났다. 난생 처음 모든 이들이 가는 7월말 8월초에 휴가를 갔다왔다. 어느새 나는 지워졌고 그 자리에 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휴가를 떠나기 전 로또 한 장을 구입했는데, 5등도 되지 않았다. 뭔가 운 좋게 당첨된다면 ... 참 좋을 텐데, 아마 모든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겠지. 실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여 삶이 개선되거나 계단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현대 자본주의는 그렇지 못하다. 마치 르네상스에서 중세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랄까. 소란스럽게 세속화에 열광하며 계량적 가치와 도구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졌던 근대인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할까. 


토니 주트의 <<20세기를 생각한다>>를 휴가 내내 읽을 계획이었나, 겨우 몇 장 읽었을 뿐이다. 다만 그의 놀라운 시각은 20세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 한국은 파시즘 국가에 가깝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파시즘의 메시지임을 알게 되었다. 파시즘 정당은 하층 계층의 미묘한 심리을 자극하여 지지를 얻고 확고한 신념이나 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태도만 공유할 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정당도 여기에 속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마르크주의를 억지로 연장시키는 것일 뿐, 마르크스와는 별 관련없다. 유태인이 20세기 초 유럽에서 희생당한 것은 유태인들만의 커뮤니티를 고수하면서 정치 권력에는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 동시에 그 당시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독일어를 구사하던 그들이 도리어 희생되었다는 아이러니.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현대 이스라엘은 아주 흥미롭게 정치전략에 결부시켜서 미 유태인 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은, 아마도 토니 주트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피곤하다. 집에 오자마자 몇 시간 낮잠을 잤고 다시 잠자리에 들 것이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내일은 무섭다. 달리기를 해야 하고 무조건 1등을 해야만 한다. 사십대에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이십대엔 몰랐다. 이제 오십대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조만간 리뷰를 써서 올리겠지만, 강력 추천한다. 일종의 20세기 지성사, 사상사가 될 법한 이 책은 20세기를 리뷰하면서 현재를 다시 읽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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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글을 참 멋지게 잘쓰시네요~
    저책을 장바구니에 살며시 담긴했는데.... 읽기는 쉬울려나 모르겠습니다.

    • 책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전문적인 연구서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읽기 어렵진 않습니다. 다만 한 세기를 여기저기 오가며 서술되기 때문에 문맥을 따라 읽는데,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순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지만, 매우 천천히 읽게 되더군요. 벌써 한 달째 잡고 있습니다. 뭐, 읽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지만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



블로그에 작은 글 하나 써서 올릴 틈도 없는, 하루하루가 지난다. 낮엔 잠시 비가 왔고 우산을 챙겨나온 걸 다행스러워 했으며, 저녁엔 비가 그쳤고 손에 든 우산이 거추장스러웠다. 내 과거는 다행스러웠고 내 현재는 거추장스럽다. 


집에 와서 페이스북에 한 줄 메모를 남겼다. 


*   *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건 ... ... 반대로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 ... ... 거참, 힘든 일이다.


*   * 


십수 년전부터 선배들을 따라 간 호텔 바를 얼마 전에도 갔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와인을 마셨다. 한창 와인 마실 때가 그립다. 그 땐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갑작스러울 정도로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


이젠 술을 마시기도 힘든 시절이 되었다. 내 몸도, 내 마음도, 이 시절도, 이 도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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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만 해도,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곤 했는데, 지금은 놓은 지 오래다. 얼마 전 아는 형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나가는 소설가들의 인세 이야기를 듣고선(뭐, 한국에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약간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 아니, 매우 부러웠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이. 적어도 이제서야 인생의, 아주 작은 일부를 안 것 같으니 말이다. 아마 그 땐 다 거짓말이거나, 짐작, 혹은 추정이거나 과도한 감정 과잉 상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문득 습작을 하던 글이 눈에 띄어 옮긴다. 이것도 거의 십오년 전 글이군. 그 사이 한 두 편 더 스케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술만 마셨다. 어떤 소설이 아래와 같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역시 글은 마감이 힘이다. 마감이 있어야 하고 마감을 지켜야 하고 마감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마감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끝나지 않는 마감이 있을 뿐. 


* *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황폐하게 부서지는 가을 햇살 속을 걸어가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본 후, 익숙함이라든가, 낯섦이라든가 하는 생의 사소함 따위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찻집 구석진 곳에서부터 울려나왔다. 하지만 그때도 늦진 않았다. 만약 그때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난 매일 이 자리에 와서 유리창 바깥만 바라보는 일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밤이면 누군가를 품에 안고 잠을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이 자리에 와서 창 밖을 바라본 것도 벌써 십칠 년이 흘렀다. 그 십칠 년 동안 내가 바라는 유일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제 밤, 술에 취한 한 여자가 이 테이블을 작은 두 손으로 내리쳤을 때, 그 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되었음을, 골목길을 쓸쓸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자신의 쓸쓸함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라, 중년의 주름진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했다. 십칠 년 동안 눈동자 뒤편에서 깊은 희망의 수면(睡眠) 속에 있던 눈물들이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동안 난 차마 그 이름을 혓바닥 위에 올리지 못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된 이유는 나처럼 희망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희망을 이루고 난 이후, 그 희망이 자신이 바라던 그 희망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그건 손바닥만한 무쇠덩어리에서 나간 손톱만한 고철덩어리가 한 영혼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여하튼, 이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건 한 여자를 집요하게 쫓아다닌 한 남자에게 한 여자가 ‘지금 당신은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보다 더 늦은 순간이다. 그 순간에 느닷없이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저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사라진다. 난 그 이름을 부르는 대신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혓바닥 위로 올렸고 얼마 뒤 그 소리는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 찬란한, 그러면서 너무 슬픈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따라가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지기엔 내 인생이 불쌍했는지 난 이렇게 오래된 빈 노트 한 권을 꺼내 넋 나간 듯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존재하고 있을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과연 있을까.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빗물에 지워지고 바람에 묻어 날아가지만, 그래도 흔적은 끝내 남아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었던 흔적부터 처음 자위행위를 하고 난 다음 부드러운 표면의 성기에서 나온 정액의 흔적까지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 글도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 몇 년,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이 지난 후 그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힐지도 모르며 이 속에 담긴 내 눈물 자국을 보면서 나처럼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혓바닥 위에 올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고자 했다면, 난 이런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아픔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 분명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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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육체의 나이에 익숙해지는 2013년.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쓸쓸해지는 나이. 사십대. 날씨 변화에 터무니없이 민감해지(또는, 아프)고, 어린 아들의 웃음에 눈물이 나고(고마워서) 아내의 잔소리가 듣고 싶어지는(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끝도 없이 물컹물컹해지는 마흔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지나간 젊음 위로 쌓여 얼어간다. 얼어붙은 불안은 깊고 날카로운 냉기를 시간 속으로 밀어넣고. 


잠시 내일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내 주위를 피한다. 미래는 무섭고 현재는 견디기 어렵다. 현대 문명은 어쩌면 과거 문명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불안들을 켜켜히 쌓아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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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영화평론집 세트 - 전2권 - 10점
정성일 외 지음/바다출판사

왜 영화를 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글쎄. 그냥 보지 않을 뿐이다. 아직까지 장 뤽 고다르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사랑하며, 영화라는 이름을 우정을 믿고 싶어하지만, 이 거친 자본주의 앞에서 우정은 늘 그렇듯 믿을 수 없는 이정표와도 같다. 1년 동안 수 백 편의 영화를 기억했고 틈나는 대로 영화를 보던 시절이 있기도 했다. 유명하다는 영화를 어떻게든 챙겨서 보았고 습작 삼아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으며 영화 평을 기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땐 영화에 대한 신기루만 보았을 뿐, 진짜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며칠 전 정성일의 영화 평론집이 나왔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책이었던가! 서점에서 바로 구입했다. 편집자의 기준에 의해 선정된 글들로 한 권의 책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그의 글 몇 편은 실리지 않았다.
 
한때 영화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영역이었다. 컬트 영화를 찾아보고 너도 나도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배웠듯이 나도 비디오 가게에서 반 년 가까이 일을 했고 비디오 데크를 두 개를 붙여놓고 구하기 힘든 영화를 카피하느라 한 계절을 보내기도 했다. 문학을 하던 친구들마저도 영화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소설과 영화가 어떻게 다른가를 탐구하느라 바보같은 문학평론가들이 얼마 되지 않던 지면을 낭비하던 시절이었다. 자신의 형편없는 문학성을 변호하기 위해 뻔뻔하게도 '소설은 영화와 경쟁한다'라고 떠들던 소설가들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짜 문학평론가나 소설가는 한국에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결국은 영화도 예술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만드는 구조물이 아니었고 협업의 과정과 부단한 협상과 금전적 거래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러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는 웃고 우는 기계가 되어갔으며, 감독은 영화 제작자 앞에서 목소리가 줄어 들어갔다. 가끔 보기 드물게 큰 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기도 했지만, 그건 소수의 몫이었고 대중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국의 소설은 그 위대한 산문의 전통 속에서 형편없는 대중문화와 경쟁하느라 자신의 위대함을 잊고 말았다)

결국 어느 세계에나 있는 구분이 영화를 뒤덮었고, 영화를 그렇게 사라졌다. 젊은 날의 묘비처럼 정성일의 낡은 책이 세상에 나왔고 미래에는 없고 과거에 있었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오랜만에 정성일의 오래된 글을 찾아 읽는다.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Highway Revisited
http://php.chol.com/~dorati/web/roadshow/road920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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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체로 보자면, 안정적인 성공을 구가했던 시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전쟁과 정치적 갈등, 계급 갈등의 연속이었다. 요즘 한국을 보면, 나라와 국민의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는 당장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인가에 정부와 정당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당장 눈 앞의 돈에 온 신경을 두고 가족이, 친척이, 이웃이 어떻게 소외당하고 망가지는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란 우리가 지내온 세월의 결과물이다. 현재를 탓한다는 건 우리의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며 우리의 반성을 부르는 행위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누구도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실은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성을 하는 것과 그것으로 현재를 변화시키고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깨닫고 있는 요즘, 일상은 바쁘고 긴장의 연속이며 정신 없이 흘러가기 일쑤다. 이럴수록 여유를 가져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게하르트 리히터의 짧은 문장을 옮긴다. 리히터. 그는 현대적 회화의 경계를 보여주는 거장이다. 또한 현대 회화와 사진이 동일한 운명을 타고 났음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강령도, 어떤 양식도, 어떤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관성이 없고, 충성심도 없고, 수동적이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 게하르트 리히터 

 

 

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엔 너무 플라톤주의자이며, 체계주의자다. 다행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머리 속에는 끊임없이 인과율을 따지고 시스템을 따진다. 리히터의 저 불확실한 자유로움을 언제쯤 가지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영영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사유는 아래에서 위로 종적인 체계다. 하지만 그 종적인 체계도 횡적인 공간을 요구한다. 요즘 나는 횡적인 공간의 빈곤함을 자주 느낀다.

 

 

 

 

게하르트 리히터, Self Portrait x 3, 흑백인화에 유채, 49.8×59.7cm,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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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의 (저주받은 듯한 느낌의) 자서전, '미래를 오래 지속된다'가 재출간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93년,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니, 벌써 십수년이 지났다. 이 책, 내가 20대 시절 생각나면 뒤적이던 책이었다. 잔인할 정도로 자신을 파고들며, 자신이 목 졸라 죽인 아내에 대한 기억을 태연하게 하는 죽기 전 알튀세르의 문장들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과거 앞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모든 걸 포기하지 않는 어떤 지식인의 슬픈 초상 앞에서, 그나마 내 20대는 낫다고 위안받던 시절이 있었다.

일 때문에 잠시 나간 삼성역 반디앤루니스 서점(아직도 서울문고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에서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삐에로'와 알랭 레네의 '내 사랑 히로시마'를 샀다. 아, 오랫만에 만나는 내 20대의 우상들이었다. 요즘에도 장 뤽 고다르와 알랭 레네에 흥분하는 이들이 있을까. 하긴 알튀세르보다는 낫겠지. 그가 죽고 난 다음, 마르크스주의 학자로는 보기 드물게 르몽드 한 면을 다 차지하는 추모기사가 실렸지만, 그가 죽은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프랑스에서나 한국에서는 그는 이미 잊혀진 인물에 가깝다.

문득 내 나이를 떠올릴 때면, 종종 아찔해진다. 내 머리 속에 가득차, 끝없는 심연을 헤매고 있는 스토리들과 인물들, 정제되지 못한 표현들. 그리고 모호하고 불투명한 열망들. 삼성역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잠시 20대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았으나, 사람들은 거의 기억 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에 만났던 이들마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도망만 다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문득 머스 커니햄을 찾아보았다. 그의 무용을 보고 있으면, 늘 흥미롭지만, 새로운 표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현대 예술이 막다른 골목으로 향해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Merce Cunningham--Beach Bird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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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an 2009.01.05 21:42 신고

    알랭 레네와 알튀세르에 흥분하는 일인 소심하게 손을 들겠습니다^^;

  • 알튀세르가 누구인지 오늘까지 전혀 몰랐던 일인 여기 있습니다 ㅡ.ㅡ 이럴때 보면 저는 너무 편식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듭니다.

    • ^^; 실은 인문학 전공한 사람들도 잘 모른답니다. 그의 자서전은 조금 자극적이긴 하지만(너무 내밀한 자기 이야기를, 꼭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적고 분석하기 때문에), 그리고 꽤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를 띄고 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매우 뛰어난 자서전입니다.


벌써 4년이 지났다. 이 노래를 들었던, 그 때. 그 사이, 나는 더 황폐해진 걸까. 아니면 더 우아해진 걸까. 혹은 변하지 않은 걸까. 뜻하지 않은 과거로의 상념은 사람을 참 서글프게 만든다.

거의 열흘 만에 헬스를 했다. 몸을 움직이면 그 때만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 담배를 자주 피고 스트레스를 받고 정장을 입고 다닌다. 예전에 깔끔해보였던 정장 차림이, 요샌 부쩍 나이 들어 보인다. 나이가 들긴 했지만.



Y Tu Que Has Hecho?
    - by BuenaVistaSocialClub

En el tronco de un arbol una nina
Grabo su nombre henchida de placer
Y el arbol conmovido alla en su seno
A la nina una flor dejo caer

Yo soy el arbol conmovido y triste
Tu eres la nina que mi tronco hirio
Yo guardo siempre tu querido nombre
Y tu que has hecho de mi pobre flor?


그리고 넌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무 밑둥에, 기쁨에 넘친
어느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새겼네
자신의 중심까지 그 감촉을 느낀 나무는
그 소녀에게 꽃송이 하나를 떨어뜨려 주었네

나는 슬프고 또 감동받은 나무야
그리고 넌 내 껍질을 상처낸 소녀지
나는 사랑하는 네 이름을 언제까지나 간직할 거란다
그런데 넌, 내 가엾은 꽃송이를 어떻게 했니?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 계속 이 노래만 듣고 있다. 집에 브에나비스타 쇼셜클럽 DVD가 있는데, 우연찮게 이 노래가 나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기타를 튕기며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 슬프고 너무 행복해 보였다. 누구였을까. 누구였을까. 상처를 낸 그 소녀는. 그 소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난 내 머리카락이 희게 변하게 되었을 때,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2004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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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번 밖에 안들려서 아쉽아쉽.. 계속 재생되면 좋겠네..

  • 윤민맘 2008.03.26 22:21 신고

    예전엔 담배보다 술이라며 담배 잘 안 피우더니?
    요즘은 담배 피우는 사람은 원시인 소릴 듣던데?
    우아해지려면 계속 술을 마셔요.
    담배는 금물.

    담배 피워서 멋있는 시대는 이제 사라졌어요.

  • 앗. 티스토리에 로그인하고 쓰니까 이름이 Breezy로 등록되네..

    • Tistory에 오셨군요. : )

      저도 꽤 오래동안 홈페이지를 운영했는데, ... 관리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결국엔 블로그로 정착했어요.

  • AnneDonn 2008.10.06 21:31 신고

    우연히 발견했는데...노래는 들을 수 없어 아쉽지만
    덕분에 반가움 가득 안고 갑니다.

  • 2008.10.18 01:24

    비밀댓글입니다

    • 받긴 할 텐데, 조건이 붙을 것같아요. 20일 동안 내가 원할 때 같이 술을 마셔줘야 한다는.
      기쁨도 술로 나누고
      슬픔도 술로 나누는.. : )


<<
매의 노래>>, 바진(지음), 홍석표, 길정행, 이경하(옮김), 황소자리

 

 

 

책을 읽으면서 현대 중국 사회에 있어서 문화혁명’(1966 ~ 1976)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노(老) 작가 바진은 끊임없이 개인의 삶과 문학의 존재 의미를 물으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문화혁명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끊임없이 문화혁명 시기의 자기 자신과 그의 가족, 그의 동료들에 대해 회상하면서 후회했다. ‘바진 타계 일주년 추모 수상록 선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에서 독자는 시간 앞에서 끝없이 진실해야 된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일을 없단 말인가? 문혁이라는 기름 솥에서 10년을 뒹굴었는데, 몸과 마음을 졸였던 재난에 대해서 쓰면 된단 말인가? 누군가 나에게 서독 청년이 나치가 폴란드에서 종족 말살용 살인공장을 지었던 일을 믿지 못하고 일이 일부 사람들의 환상 불과하다고 생각하더라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런 일이 있을 있다니! 겨우 40년의 세월인데, 사람들은 나치당원이 인성을 저버리고 행한 극악무도한 죄행을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아우슈비치의 나치 전범 박물관에 적이 있다. 학살수용소의 유적은 아직도 그곳에 보존되어 있었다. 독가스실과 시체를 태우던 용광로가 몸서리쳐지게도 눈앞에 보였는데, 벌써 존재들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생겼단 말인가!
(30
– 31)

 

과거란 부정할 없는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혁명은 이미 잊혀진 과거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문화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상기시키면서 비이성적인 시기 동안 사라져간 동료들과 고통 받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진을 도리어 공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은 극좌파적 오류라는 중국 공산당 공식 평가를 받은 문화혁명. 책에 실린 글들이 1980년대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2000년대의 중국 작가들은 이것을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문화혁명 시기, 중국 신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중의 사람인 바진을 비난하고 공격했던 10대의 아이들은, 40, 50대가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은 과연 아직도 문화혁명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래서 바진은 문혁박물관 세워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 … 일부 사람들에게는 과거란 날조된 상상의 부산물이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어떤 종류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수잔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마지막 부분의 짤막한 이야기는 묘하게 바진의 책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과거는 끊임없이 우리 곁을 돌며,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1982년에 (1926년에 벤야민의 교수 지원을 퇴짜놓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는 <<파사젠베르크(아케이드 프로젝트)>> 벤야민 <<전집>> 5권으로 출판된 사건에 주목했다. 공식 발제가 끝난 다음날 아침에 학생들과의 자유 토론에서, 벤야민 학자들은 각자 대립하는 학파에 맞서 자기만의벤야민을 옹호했다. 이들 논쟁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많이 들었던 논쟁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아침에 통찰력 있는 발언을 것은 우리가 아니라 독일 학생이었다. 갑자기 그는 학회장에 독일계 유대인이 없다, 자기 세대 학생 중에 그들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의 부재가 느껴진다고, 그들이 없어서 슬프다고 말했다. 학회장은 갑자기 유령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오한을 느꼈다.
(<<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수잔 모스 지음, 문학동네), 427
)





매의 노래 - 8점
바진 지음, 홍석표.길정행.이경하 옮김/황소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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