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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바의 방랑

(신림동 우드스탁. 어두워서 사진이 엉망이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라디오에 연결해서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 장정일, 턴테이블에 레코드판. 이것도 꿈이라면 꿈이었다. 하지만 서재에 있는 턴테이블과 레코드에 먼지가 쌓이기 일쑤다. 들을 시간도 없고 같이 들어줄 사람도 없다. 무관심해졌다. 음악을 듣는다고 삶이 윤택해지면 좋겠지만, 딱히 그렇게 되진 않더라. 하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아는 음악이 나왔고 모르는 음악이 흘러갔다. 그 선율을 따라 알코올도 내 혀와 식도,..

한 잔의 깔바도스

술 기운이 확 올라왔다. 피곤했다. 지쳐있었다. 어쩌다 보니, 다시 프로젝트의 한복판에 있었다. 자주 술을 마신다. 팀원을 다독이기 위해서 마시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마시고 이런저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마신다. 블로그도 뜸하다 보니, 오는 사람도 뜸해진다. 레마르크의 을 읽다보면, 사과로 만든 술 '깔바도스'가 궁금해진다. 사과향이 확 올라오지만, 끝은 무겁고 까칠하다. 거친 사내의 느낌이다. 둔탁하지 않고 날카롭다. 적당한 바디감이지만, 부드럽지 못해 살짝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연거푸 마셔 한 잔을 빠르게 비운다. 비운 만큼, 내 마음의 때도 알코올 향 따라 사라질려나.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올해의 반성이니 결산이니 하는 건 사치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이렇게 술을 마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