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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슈가 맨 




아 - 입 벌려요.


너는 마른 휘파람을 불기 위해 입술을 모았고,

나는 그게 지겨웠어.

슈가 맨, 벤츠를 사 줘.


너는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훔쳐 왔지.

꽃집에서 버린 시든 꽃을 주워 왔지.

아울렛에서 싸구려 팬티를 사 왔지.

나는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넣었어. 


슈가 맨, 너한테 없는 것을 줘.

다이아몬드 - 

은빛 배 - 

파리로 날아가는 전용 비행기 - 

번뜩이는 빌라의 지붕 - 

금빛 넘실거리는 전자 오르간 - 


아 - 입 벌려요.


너는 녹아 사라지고,

깊게 썩은 입이 말하기 시작했어. 

가엾은 슈가 맨.

너는 노래방에서 ... ... 


- 장정일, <세계의 문학>, 2015년 여름호 



도서관에서 문학잡지를 읽는다. 밖은 낮아지는 구름, 어두워지는 대기, 사랑을 꿈꾸지 않는 젊음, 어긋나버린 시간들로 채워지고, 나는 흔들리며 가라앉는 마음 끝자락을 꽉 부여잡곤, 오래 전에 잃어버린 내 시간들의 흔적을 더듬거린다. 장정일. 그도 이젠 소년이 아니고 나도 이젠 문학 습작생이 아니다. 


구립 도서관을 채운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부터 은퇴한 후 책읽기로 시간을 보내는 늙은이까지, 책은 세계의 비밀을 담은 어떤 것이 아니고, 도서관은 숨소리까지 죽인 독서광들의 아지트도 아니다. 그저 형편없어져 가는 도시의 쓸쓸하고 슬픈 뒷골목같은 곳. 


계간지에 실린 시들을 읽으며, 아, 내가 모르는 시인들이 이렇게 많구나, ... 아, 이 시인은 아주 오래 전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 ... 시인과 술을 마시지 못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하긴 술을 마시며 시에 대해, 문학에 대해, 예술에 대해 이야기해 본 게 몇 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겨우겨우 루이지 피란델로의 소설,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을 다 읽으며, 마티아 파스칼의 철부지 같은 모험도 19세기에나 가능한 일임을, 세상의 우연과 신비, 슬픈 가능성마저도 사라졌음을, 식어버린 커피 속에서 첨벙거리며 탄식했다. 


다시 한 주일이 시작되고, 나는 야근에, 스트레스에, 쫓기듯 시간을 보낼 것이다. 빨리 이 가을도 가고, 이 겨울도 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좀 쉴 수 있을 것같다. 그 전까진 최선을, 사력을 다해 끝을 내야 할 목표가 존재하니... 그 전까진 무너지지 말아야지. 십 수년 만에 장정일의 시 읽으며, 늙지 않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늙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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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이네요 ㅎ

    전 제가 어렸을 때랑 똑같아서 지겨운데 ㅋㅋㅋ 어른처럼 생각하고싶어요.

    • 오랜만!이예요. ^^

      실은 어른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만 어른처럼 생각한다는 건 주위를 좀 더 신경쓴다고 할까요. 이게 조금 달라질 뿐, 나머진 그대로인 것같아요. 하긴 그 사소한 변화가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오는 것이긴 하지만요. ~...

    • 그 변화가 좋은 건가요 아님 나쁜건가요. 아님 경우에따라 다른 건가요? 제가 요즘 그게 궁금해서요.

      굳이 위 글의 맥락이랑 상관없이 그냥요...

    • 다들 겪는 변화이니,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예요. 좋게 받아들이면서 젊은 시절의 열정이나 가치를 계속 지켜나가는 게 제일 좋겠죠. ~ 힘들긴 하지만요. ~ : )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지음), 한겨레출판





언제 이 책을 샀던 걸까. 그리고 하필이면 이 소설이었을까. 몇 명 등장하지도 않는, 굳이 분류하자면 '성장소설' 쯤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이 소설은 두 명이 죽는다. 한 명은 그냥 사라지고 한 명은 죽고 ... 차라리 일종의 알레고리이거나 은유라면 좋을 텐데, 그렇진 않고 참 슬프다는 생각만 들게 하니, 눈물샘을 자극하는 순정 소설(만화가 아니라)같다고 할까. 


우리들의 성장은 과연 그랬던가. 누군가가 죽고 사라지고 정든 집을 떠나야만 성장할 수 있었던 걸까. 소년 화자인 '동구'는 몇 해 살지 못하고 죽을 여동생 '영주'의 탄생과 함께 소설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영주'가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읽기를 배우고 어두웠던 80년대 초 세상을 잠시 엿본다. 하지만 그 선생님도 사라지고, 할머니 - 어머니 - 아버지로 이어지는 가족의 갈등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심각해보이지 않고 도리어 흔한 풍경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만나고 오는 '동구' 앞에서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강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낯설게까지 여겨지는 건 내가 이상한 것일까.  


문장은 좋고 서술에 힘이 있어, 이야기를 쉬지 않고 앞으로 간다. 그래서 더 아쉬운 걸까. 아니면 우리들, 1970년대에 태어난 동구와 같은 세대인 나에게 이런 성장소설은 뭔가 맥이 빠지고 애처로움만 자아낸다. 


하지만 소설은 참 좋기만 하니, ... 그래도, 이야기는 이야기이고 작품성이나 예술성은 이야기의 완성 뒤에 오는 어떤 것이다. 이 소설은 이야기하는 방식은 빼어나지만, 딱 거기에서 멈춘다. 그래서 이야기에 몰입되지만, 이야기가 끝난 다음 알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이렇게 성장한 어떤 소년이 있었다는 정도. 그게 나는 아쉽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개정판]

심윤경저 | 한겨레출판 | 2013.12.13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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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느와르의 초기 작품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가 배워왔던 페인팅과 앞으로 나아갈 페인팅이 서로 섞이고, 작품을 통해 성취하고 하는 젊은 열망들이 색채로 뿜어져 나온다고 할까. 한 때 '젊음'에 대한 평문을 쓰고 싶었는데, ... 지금이라면 가능할까. 오랜만에 르느와르 작품들을 찾아 봐야겠다. 





-- 

2003년 11월 28일에 쓴 글. 






Young Boy with a Cat

1868-69

Oil on canvas

43 3/4 x 26 1/4 in (124 x 67 cm)

Musee d'Orsay, Paris 



이 그림을 보면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 약간 신비스러워 보이는 이 작품은 르누와르의 초기 작품으로 고양이를 스다듬는 소년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앞의 꽃무늬 천이나 고양이의 처리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리고 소년의 누드는 무척 이국적이면서 애로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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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답네요..카프카라니,.. 공감입니다. 뭔가호밀밭의파수꾼이 되기전모습이랄까요?^^

    • 그 때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잡지에 글 하나를 썼고요. 그 이후로 하루키를 손에 든 적은 없네요. ㅋ. ~ 호밀밭의 파수꾼은 ... 뭔가 사고 치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파수꾼 되기 전이라면 ... ㅎㅎ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Young Boy with a Cat
1868-69
Oil on canvas
43 3/4 x 26 1/4 in (124 x 67 cm)
Musee d'Orsay, Paris


이 그림을 보면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 약간 신비스러워 보이는 이 작품은 르누와르의 초기 작품으로 고양이를 스다듬는 소년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앞의 꽃무늬 천이나 고양이의 처리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리고 소년의 누드는 무척 이국적이면서 애로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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