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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 들었는데, 새벽에 눈을 떴다. 마음이 무겁고 복잡한 탓이다. 

나이가 들면 사라질 것이라 믿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근심 걱정은 더 많아진다. 

내 잘못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건지 모르겠다. 


젊을 땐 내 잘못이 아니라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원래 인생이 이런 게 아니라 내 잘못이라 여기게 되는 건 왜 그런 걸까. 

내가 제대로 나이가 들고 있긴 한 건가. 


인터넷을 떠돌아다는 영상이 기억나 다시 보게 된다. 

사랑이라 ~. 

참 미안하고 참 슬프다. 


예능프로라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회와 회한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사이로 고백하고 되돌이고 싶은 저 노인의 외침이

흰 눈들 사이로 사라진다. 

방송 출연진의 탄식이 흘러나오고 ... ... 

참 미안하고 슬프다. 

그게 첫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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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내가 글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할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닐 것임을 나는, 어렴풋하게 안다. 마치 그 때의 사랑처럼. 


창백하게 지쳐가는 왼쪽 귀를 기울여 맥주병에서 투명한 유리잔으로, 그 유리잔이 맥주잔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듣는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음악은 오래되고 낡은 까페 안 장식물에 가 닿아 부서지고, 추억은 언어가 되어 내 앞에 앉아, "그녀들은 무엇을 하나요?"라고 묻는다. 그러게. 그녀들은 무엇을 할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할까. 콜드플레이가 왔다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이는 시간을 먹고 나는 청춘을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는 사이, 많은 것들을 잃고 얻었다. 노트 한 장을 찢어 길게 반으로 접어, 한 쪽에 내가 잃은 목록을, 한 쪽에 내가 얻은 목록을 적는 사이, 계절이 가고 계절이 오고, 너무 하얀, 그녀의 창백한 볼을 닮은 눈이 내린다. 반쯤 마신 맥주 잔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쌓인다. 쌓인 눈 위로 서로 손을 마주 잡은 그들이 잔 위로 걸어나와 대학로 거리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취해가던 금요일 밤, 다행히 나는 그녀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실은,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녀들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만날 수 없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 찬란하던 고통을 받지 않아도, 그렇게 투명하던 눈물도, 끝없는 저주의 언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볼 수 없을, 하얀 잔 위로 그 발자국처럼, 그 쓸쓸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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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 대기가 제일 좋다, 나는. 적당한 차가움이 귀 끝을 스칠 때 따뜻한 술 한 잔이 떠오르고 무심한 거리 뒷골목에서 만나는 인생들에게서 정을 느낀다. 그대들과 함께 술 취해가던 그 해 겨울이 그리워지는 이 맘때, 초겨울, 나는 요즘 대기의 결이 좋다. 




아.. 그리고 술. 마시지 않은 지도 꽤 지났구나. 아름다운 술자리가 언제 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아래 광고. 참, 술 생각, 옛날 생각, ... 휴식이 간절해진다. 요즘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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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시절에는 직장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받는 돈이 적거나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제서야 경영의 가치나 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대체로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 결정의 피해는 불행하게도 회사 구성원들이 진다. 그러나 작은 회사의 경우에는 (약간 달라서) 경영진이 책임지고 아예 집안이 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기업 경영과 연관된, 잘못된 정치적 관행(뇌물 같은 것들)에 대한 책임은 이상하게도 기업가들만 진다.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교묘하게 기업가들의 마음을 움직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고,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 대부분은 기업가나 기업, 더 나아가 그 기업이 있는 지역사회가 진다(대우조선처럼).


정치과 기업의 밀착 관계를 끊어야 하고, 정부나 정치가들은 기업가들이 올바른 경영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교과서에선 말하지만, 한국은 아직 한참 멀었다.


고성장 시대를 살아온 노인네들은 저성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상당수는 우연히 사놓은 땅이나 가게로 돈을 벌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은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그들에게 노년은 행복한 일상의 연속이며 그들이 소유한 부동산의 가격만 떨어지지 않으면 된다(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모두, 한결같이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는 정치적 의견이라든가 나라의 미래, 젊은 세대들의 삶과는 무관한 결정이다).


그러나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기업체를 차린 사람들 대부분은 망해, 흔적도 없다.(일부는 성공하여 큰 기업체를 일구었을 테지만, 아마 문어발 확장을 하거나 노동자의 삶과는 무관한 경영을 할 것이다) 즉 노동의 댓가는 실패이거나 해고이고, 부동산 투자의 대가는 여유로운 일상과 이익이다(그래서 노인 빈곤층은 부동산을 사지 않았던 노동자이거나(땅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 이들), 사업을 하다 쫄닥 망한 이거나, 그 외 사회시스템이 커버하지 못했던 어떤 비극을 당했거나 그런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다).


잘못된 것인 줄 알지만, 우리 세대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거나 해고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돈을 모아 아파트나 빌라를 구입하고 만다. 부동산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앞에서(왜 부동산을 사는가에 대해 원인 분석 없이 맨날 부동산 대책만 낸다. 마치 왜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가에 대한 원인 분석 없이 출산 대책만 내는 것처럼).


좋은 경영자가 살아남고 승승장구하여 좋은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 쉽지 않고, 쉽지 않을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우리 삶을 그나마 지탱하게 해줄 것은 좋은 경영자가 아닌 훌륭한 정치가일 테지만, 훌륭한 정치가가 살아남기엔 이 나라는 너무 개판이다. 멍. 멍. 멍.


포스코가 인수하여 망가뜨린 회사에 대한 책임은 포스코가 아니라 그 구성원이 진다. 하긴 경영이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경영 실패의 댓가는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니, 올바른 정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혁신은 실패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이래저래 실패는 가난한 기업가나 기업체에 다녔던 직장인들이 지고 말기 때문이다.


왜 사업을 했냐고? 왜 그런 회사를 다녔냐고? 평생 직장이 사라진 지금, 왜 노력을 게을리 했냐고? 웃긴 개소리다. 멍. 멍. 멍. 그건 시스템이 잘못되어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문제이고,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정치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결국 정치다. 좋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지만, 나이든 이들은 얼마남지 않은 그들의 삶을 걱정할 뿐, 미래 세대들의 삶이나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를 걱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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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순간순간 묻지만, 답은 없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움직여야만 한다. 설령 그게 잘못된 방향일지라도. 그게 삶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노력하는 것, 정성을 쏟는 것과 무관한 게 삶이다. 하지만 원하고 노력하고 정성을 쏟는다. 이게 또한 삶이다. 그러면 나는,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술이나 마셔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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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출근을 했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을 홍수 난 강물처럼 흘러갔고 바람은 여름을 버리고 가을을 택했다.  끝내 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내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빌딩 근처 커피숍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토니 주트의 책. 내가 앉은 네모나고 긴 테이블 주위, 둥글거나 네모나거나 가볍거나 무겁거나 따뜻하거나 차겁거나, 모든 테이블에는 다들 연인이 흔들리는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게 보이진 않았다. 나는 끝내 사랑을 믿지 못할 나이가 된 것이다. 마르케스라면 노년의 사랑도 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사랑을 잃어버린 후이거나 사랑을 믿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니 사랑을 믿다가 끝내 사랑하지 못한 이에게는 차라리 사랑은 없다고 믿는 편이 살아가는 데 더 용이할 것이다. 마치 사랑은 자동차 같은 거라든가, 아니면 강아지 같은 거라든가... 즉물적이거나 동물적인 것.  





어느새 월요일 정오가 되었다. 아름답던 기억은 술에 취한 박제가 되었고 술자리에서 일찍 떠난 이는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향기롭던 청춘의 의미가 사라지자 시간은 정지되었고 색들은 그 다채로움을 잃어버렸다. 도톰한 입술에서 저주스런 비린내가 가득했다. 2015년 한국 서울. 나는 그가 아니고 그녀는 없었다. 


가끔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감에 휩싸이지만, 나는 어느 새 그 곳을 지나쳐가고 있었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어느 월요일, 나는 그 무시무시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화요일에 이 글을 공개모드로 바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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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바쁘고 정신 없다. 8월 내내 책은 거의 읽지 못했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회의들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예상과 달리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모호성과 변동성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일정은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대해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대비해놓고 이해관계자들에게 프로젝트 위험 상황임을 알려야 한다. 


일처리라는 건 결국 모호성과 변동성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위기 순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는 걸까. 아니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에 있는 걸까. 실은 이 상황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한 게 크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기 전에 협조가 필요한 파트에 강하게 어필해야 하는데, 이 어필을 약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은 협조한 필요한 파트도 자신들의 업무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상황은 쉽지 않다. 





그리고 밤이 왔고 나는 퇴근을 했다. 지루한 일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린다. 세상이 불확실해지고 우리들 인생도 불확실해진다. 마음도 불확실해지고 존재하지 않는 꿈에 모든 걸 맡기게 된다. 로코코의 세계다. 여성들의 화장술이 발달하고 사랑의 미사어구가 넘쳐난다. 그리고 화장술이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고 감미로운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세상은 어떻게 되고 나는 어떻게 될까. 


다행인 것은 나는 화장술을 모르고 감미로운 언어 구사엔 취약하다. 하지만 가끔 존재하지 않는 꿈에 모든 걸 맡기고 싶다. 그러고 보니, 편한 마음에 술 한 잔 한 것도 참 오래되었구나. 


두서 없이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일이 어수선하니, 글도 마음도 어수선하다. 빨리 일이 마무리되고 이 시절도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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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럴 겁니다! 백작은 이른 아침, 정확히 8시 반에 일어났다. ... ... 백작 부인은 목 둘레에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라일락 꽃무늬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 ... 테레지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 ... 루크레지아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 ... 오, 세상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있습니까? 우리는 한줄기 태양광선을 채찍 삼아 쉼 없이 회전하는 보이지 않는 팽이 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연유도 모른 채,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때로는 더위를 때로는 추위를 선사하고, 혹은 쉰 번쯤 혹은 예순 번쯤 회전한 후에는 죽음을 - 대개는 어리석은 짓만 범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 선사하기 위해 그저 그렇게 돌고 도는 데에 재미 붙인 양 미친 듯이 회전하는 모래 알갱이 위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 아닐까요? 신부님,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코페르니스쿠스가 휴머니티를 더는 회복할 수 없을 만치 파괴시켰습니다. 우리가 이룬 그 모든 잘난 발명과 발견들로 인해, 어느덧 우리 자신이 무한히 작은 존재라는 새로운 개념에 서서히 젖어 들었어요. 그러고는 스스로를 우주 속의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자각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들 개개인의 불행뿐 아니라 인류의 총체적인 불행에까지요.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제 한낱 버러지들의 이야기에 불과해요. 앤틸리스 제도의 작은 재난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별거 아닙니다. 그 폴란드 참사회원의 주장대로, 아무런 목적 없이, 돌고 도는 데 진력이 난 가엾은 지구가 다소 인내심을 잃고 급기야 제 몸의 무수한 출구 중 한 곳에서 불꽃을 좀 뿜어내고 말았지요. 대체 무엇이 그토록 지구를 분노케 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지금보다 더 한심한 적이 없었던 인간들의 우매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만두죠. 햇볕에 그을린 무수한 버러지들. 그래도 우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 루이지 피란델로, <나는 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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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지음), 김난주(옮김), 바다출판사 




1.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2. 가족, 이제 해산하자

3.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4.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5.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6. 신 따위, 개나 줘라 

7.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8.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9.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10.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 이 책의 목차다. 정말 이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도 이십 여년이 지났다. 그의 소설, 투명한 서정성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의 산문은 거침없다.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문장과 달라,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런 각오로 소설을 써야 된다는 점에서 도리어 감동적인 면까지 있다. 그런 면이 잘 드러난 산문집은 <소설가의 각오>(김난주 역, 문학동네)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이 산문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도 거침없다 못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식상하다고!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나 '가족, 이제 해산하자'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초반에 언급된 가족 사회, 즉 필요에 의한 계약 관계로만 유지된다는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관심 없는 건 다 아는 이야기고 직장인이 노예라는 거나 애절한 사랑에 대한 내용도 다 아는 내용이긴 매 한가지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이야기가 마음을 흔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아니라, 마치 술자리에서 인생 선배가 말하는 느낌이랄까. 우리들은 종종 '알아, 그래 알고 있다고'라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알고 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알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전부이지 않은가.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적어도 인생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는 점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8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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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린모옥 2015.05.04 20:46 신고

    마루야마 겐지
    라는 이름 잘 기억해 둘께요
    감사합니다.

    • 지하련 2015.05.05 21:10 신고

      이 산문집보단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이 좋습니다. ~ 산문집은 <소설가의 각오>가 이 책보단 나아요. 그의 소설은 참 서정적인데, 그의 산문은 직설적입니다. ~ 너무 직설적이라서 의외라는 느낌을 읽을 때마다 받아요. ㅎㅎ


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김철수(지음), 청림출판 




계속 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계속 공부를 하고 있긴 하다. 그냥 습관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공부가 팔자인 듯 싶기도... 그 공부가 돈벌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데 인생의 곤혹스러움이 있다고 할까. 그래서 가끔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만약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아직도 글을 썼을 테고 이름과 부를 얻는 대신 고집을 넘어선 아집스러운 순수함만 추구했을 테니 말이다. 


종종 이런 책을 읽는 건 나에게 신선한 자격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평범하다고 하면 저자가 화를 낼려나. 직장인이지만, 시카고 IIT 디자인대학원에서 HCI를 전공했으며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혁신시키며 책까지 내었으니, '평범'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재수를 해서 대학에 한 해 늦게 입학한 고등학교 동기에게 왜 1년 더 공부를 하는데, 성적은 오르지 않고 대학시험에 또 떨어지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고 3 때보다 더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다소 충격스러웠다. 


그랬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을 보며 그/그녀를 부러워하며 나도 언젠가 그/그녀처럼 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또는 그녀가 되지 못한다. 이유는 당연하다. 그가, 그녀가 했던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런 노력을 지탱할 열정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오늘도 부러워 하기만 한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런 노력이 담겨있다.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있다면, 자신의 노력을 솔직하게 정리하며,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그의 노력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서 배움을 구하고 그것을 정리한다. 그 정리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자기 인생의 한 줄 컨셉을 도출하는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맞는 실천법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실천법을 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특히 국내 저자의 책은!

(국내 출판사들은 이렇게 국내 저자들을 발굴해야 할 텐데, 번역 출판물만 팔리고 있으니...) 


나에겐 읽기 쉬운 책이었지만, 이 책과 저자에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조금 더 성실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모자람만 보이니, 큰 일 났다. 이를 어쩌면 좋으랴. 



사족) 저자 소개에 HCI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이 없다. 내가 이 단어를 들은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되었지만... Human-Centered Innovation이라는 단어의 약자다. 그런데 Human-Computer Interface도 HCI다. 10년 전만 해도 후자로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 정리해놓은 몇몇 글들이 있다. 지금은 검색하면 훨씬 좋은 글들이 많지만... 

http://intempus.tistory.com/category/Business%20Thinking/Design%20Thinking 







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 8점
김철수 지음/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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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으로 나가는 길, 중대 앞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효자손을 든 5살 무렵의 꼬마 여자아이와 길거리 카페 문 앞 긴 나무 조각들로 이어진 계단을 네모난 카드로 뭔가 찾는, 흰 머리가 절반 이상인 중년의 여자가 실성한 듯 두리번거렸다. 어제 불지 않던 바람이 오늘 아침 불었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년의 여자와 꼬마 여자아이는 제 갈 길을 잃어버린 듯했다. 겨울 추위는 제 갈 길 잃어버린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지구의 겨울은 거짓된 길이라도 제 갈 길을 가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도 길 잃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호랑이 무늬의 앙고라 자켓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는 추위에 새하얗게 변한 얼굴 위로, 제 갈 길 가고 있다고 믿는 나에게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울컥했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추위 속의 모녀는 움직였고 중년의 엄마의 흰 머리칼 사이로, 그녀가 손에 든 하얀 핸드폰 충전기가 눈에 띄었다. 충전기의 전선줄이 길게 늘어져, 걸음에 흔들거렸다. 흔들거리다 잠시 멈춰서고, ... ... 버스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에게 길을 안내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 그녀들은 버스 정류장 옆에서 잠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나라의 겨울은 참 오래 갈 것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겨울이 정치인들과 정부, 정부의 수반이 가지고 온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우리가 불러들인 것이다. 우리의 무관심, 냉대, 침묵이 불러들인 겨울이다.


그 겨울이 TV 속에 그 곳에서만 분다고 여기겠지만, 아마 조만간 우리 바로 옆으로 왔을 때 후회를 할 것이다. 늘 후회와 반성은 시간 늦게 도착하고, 우리가 건너려고 하던 저 다리가 부서지고 난 다음이다.


그런데 그 꼬마아이는 무슨 죄란 말인가. 그 꼬마아이가 자라나 스무살이 되고 서른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얼마나 많은 증오를 이 사회에 대해 가지게 될까, ... 도대체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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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할수록, 사람을 만날수록 내 모자람, 내 무지, 내 불성실함을 깨닫게 되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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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16 01:08

    비밀댓글입니다

    • 지하련 2014.12.17 12:37 신고

      실은 젊은 시절, 나이 들면 좀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그러니 나이가 들면 안 됩니다. ㅡㅡ;;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비밀글의 댓글은 비밀글이 안 되네요. ~~)

11월 28일 늦은 밤. 





25층 아파트 옥상으로 맨 발의 여자가 눈이 풀린 채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치킨 배달원한테서 전해들었다. 

... ... 

그리고 우리에겐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는 걸 알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 ... 

그리고 결국 나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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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선가, 누군가가 나에게 술 마신 걸 마치 전쟁에서 겪은 전투이냥 이야기한다며 지적했다. 하긴 그랬다. 그래, 지금도 그렇지. 

하지만 간이 좋지 않다는 건 가족을 제외한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1주일에 한 두 번으로 술자리를 줄여도 힘든 경우가 많아졌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라, 마음이, 인생이, 사랑이 답답할 때면 술이 생각난다.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봐라봐도 좋다. 이쁘다. 영롱하다.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의 입술같다. 앞으로 사랑하게 될 그녀의 볼같다. 


어쩌면 지금은 읽지 않는, 과거의 흔적, 상처, 씁쓸한 향기같은 추억,처럼 밀려든다. 어떤 술은. 






세월은 참 빨리 흐르고, 술맛은 예전만 못하다. 마음따라 술맛도 변하고 사랑따라 술잔도 바뀐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으며 벗들과 술 마신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거리기만 하다. 그렇게 술잔, 혹은 술 속으로 추억이 빠지고 마음이 빠진다. 





텅 빈 잔을 보면서 술에 대한 생각을 시작한다. 죽음과 가까워질 수록 내 눈도 침침해지고 내 마음도 어두워진다. 사랑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는다. 열정은 굳고 몸은 느릿느릿 앉아 쉴 수 있는 공원 벤치를 찾는다. 그리고 예고 없이 겨울은 올 것이다. 


... 내가 기억하고 나를 기억해주던 사람들이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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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 내려가기 위해 옷 몇 가지를 챙겨 집을 나왔다.  아내와 아이는 이미 창원에 내려갔고, 오늘 저녁 모임을 나간 뒤 심야 우등 버스를 탈 계획이다. 어젠 이런 저런 업무들로 인해 밤 늦게 사무실에 나올 수 있었고 벌써 내 나이도 사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누군가 정해준 곳으로 갔으며, 심지어 대학 전공마저도 그랬다. 나처럼 고등학교 3년 내내 모의 고사에서 한 곳만 지원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그 대학 그 전공을 다 마치고 한참 후에야 내가 받은 대학 교육의 형편없음을 욕했지만).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 당하며 산다. 내 의지대로 의사결정 내리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내 의지대로 하지 못한 어떤 결정, 행동,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다른 이의 결정, 행동, 결과와 비교당한다. 부모로부터, 학교 선생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사회로부터. 나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취향, 다른 배경, 다른 생각을 가진 이와 비교당하며 자라고 성장하여 (빌어먹을) 성인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의 압력으로 결정하고 행동한 결과가 형편없고 실패했을 경우, 그 책임은 압력을 행사한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지고 내가 상처입고 내가 쓰러진다.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왜냐면 한국 사회만큼 실패에 대해 냉혹할 정도 무관심하며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가혹할 정도로 공격하는 곳도 없으니까. 


최악의 경우, 나는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 혹은 사회에 의해 강압된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고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십대 중반을 향하는 지금,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말썽꾸러기로 변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내 생활은 자유와 방종을 오갔으며 굶는 대신 시집을 사고 굶는 대신 청계천에서 중고 오디오를 샀다. 학교 구내 식당에서 한 끼만 제대로 챙겨먹으면 된다고 여겼으니. 가장 오래 다닌 회사는 만 3년 6개월 정도인데, 이는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였다. 그 전까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여기저길 옮겨다녔다. IT - Consulting - editorial - Gallery - Art Fair - IT(Telecom - Digital Agency - Digital Contents). 


가장 다행인 것은 내 의지대로(혹은 어쩔 수 없는 경제적 사정도 있었지만), 혹은 결정의 주체는 온전히 나였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무척 많은 노력을 하고 마음 속으로 각오를 다진다. 그래서 아직까지 버틴다. 앞으로도 버틸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고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 그게 싫다면 혼자일 때 바다를 건너, 하늘을 건너 멀리 떠나라. 그리고 새로 시작해라. 어차피 한국 사회에서 우리 대부분은 비교당하면서 가난하게 평범하거나 실패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평범하거나 실패하라. 그러면 견딜 수 있을 것이고 재기할 것이고 끝내 성공할 것이다. 



정동 병원 지하 물리치료실에 누워. 심하게 어깨가 아프다. 유착성 관절염의 세계에 들어왔다. 



요즘 술친구가 부족하다. 결혼의 후유증이다. 이제 한 두 명 남은 듯 싶은데, 매번 부를 수도 없고 밤늦게 뜬금없이 연락하기도 ... ㅡ_ㅡ; 


 

오랜만에 서재 사진. 아이고, 이 서재는 총각 때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일세. 로또에 걸려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리정돈된 서재를 갖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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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페북과 인스타그램에 빠져 블로그짓에 뜸하다.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내 아이디는 yongsup이다. 요즘은 먹스타그램으로 빠지긴 했지만. 




퇴근길, 나이가 들었다. 조금 있으면 사십 중반이 될 텐데, 스스로 아직 청춘인 줄 안다. 밤 11시, 술 생각이 나는 건, 오늘 때문일까, 아니면 내일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들 때문일까.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질문들은 줄지 않고 믿었던 답들마저 사라진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참 맛없는 치킨 옆의 맥주가 안타까웠다. 참 맛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대박을 꿈꾸긴 않았지만, 적어도 여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서울, 한국을 사로잡은 21세 자본주의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엉망으로 된 전 회사에서 가지고 온 난 화분들. 화분을 선물 받고 그 화분이 죽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 않은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나는 조금은 아팠고 그래서 내가 화분을 챙겨가지고 왔다. 생명에 둔한 사람들은 정말 싫다. 



평창동 밤 10시. 금보성아트센터 앞 평상에서 술을 마시며 예술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술을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예술에 대해서 아는 척 했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나는 지금 죽는 연습을 하고 있다.  



동작도서관. 집에 이런 서가를 가지고 싶다. 로또에 걸리면 이런 서가를 꾸밀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하면 ... 사서로 들어가기도 쉽지 않던데. 사소하게 보이는 꿈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다. 이젠 늙은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뜰때>>의 첫문장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담은 젊음을 버리고 그것을 이룬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박하여 내가 국립 서울대학교에 입학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소망이나, 커서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하기를 꿈꾸는 어린 사촌동생의 소망보다 차라리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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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성형외과 2014.07.23 13:44 신고

    로또에 당첨되면 도서관지을수는 없어도

    어지간한 서재와 그 서재를 가득 채울 책은 충분히 사고도 남을 듯...


    힘내요!!

    • 지하련 2014.07.23 18:08 신고

      글쎄요.. 서재와 그 서재를 가득 채울 책도 안 될 것같은데요.. ㅎㅎㅎ
      먼저 집부터 사야되나서.. ㅋㅋ 댓글 감사합니다. : )





인생은 빨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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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술은 참 오래된 벗.

에라주리즈 에스테이트 까베르네쇼비뇽. 

이 가격대(1만원 ~ 2만원 사이)에서 가장 탁월한 밸런스를 보여준다고 할까.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까쇼 특유의 향이 물씬 풍기는 와인. 

이 와인을 즐겨 마신 지도 벌써 10년. 

그 사이는 나는 이 와인을 참 많은 사람들과 마셨구나. 

아직 만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끊어진 이도 있고. ... 

흐린 하늘의 춘천을, 사용하지도 않을 우산을 챙겨들고 갔다 돌아온 토요일 저녁, ... 

한없이 슬픈 <<화양연화>> OST를 들으며 ... 

참 오랜만에 혼자 술을 마신다. 

오마르 카이얌도 이랬을까. 

인생은 뭔지 모르지만, 술 맛은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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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앤세바스티안 신보를 사지 않은 지도 ... 몇 년이 지났다. 


'젊음'에 대해 게을러지는 순간, 우리는 늙어간다. 락을 들은 지도, 몸을 흔든지도, 맥주병을 들고 술집 안을 이리저리 배회한 지도 참 오래 되었다. 


시를 외워 사람들에게 읊어준 지도, 새로 나온 소설에 대해 지독한 악평을 한 지도, "그래, 세상은 원래 엉망이었어"라며 소리지르곤 세상과 싸울 각오를 다진 지는 더 오래 되었다. 


이 노래 들은 지도 참 오래 되었구나.







포티쉐드다! 중간에 베스 기븐스가 담배 피우며 노래 부르는 장면은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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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쭈니러스 2014.03.23 20:57 신고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그런데 '젊음'에 대해 게을러지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아이돌 음악이라도 계속 들어야 할까요..;;;
    젊음이 참 그리워지는 순간이네요.

    • 지하련 2014.03.23 21:52 신고

      그러게 말이예요. '젊음'에 대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한 물리적 환경 조성이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어요. ㅡ_ㅡ;;; 자주 20대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20대들이 거부하더군요. ㅜㅜ;;; 25살의 봄날이 그리워지네요. ...


There's no magic in street fighting. Street fighting may be lethal, especially when one guy is bigger and stronger than the other. But boxing is designed to be lethal, designed to test lethally the male will of both fighters, designed to see who's boss, who will stake out and control the magic territory of a square piece of enchanted canvas. 

- F.X. Toole, Million Dollar Baby - stories from the cornerECCO(HarperCollinsPulishers), 2000, 7쪽 


'사각의 링'이라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곤 하는데, 최근 읽기 시작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삶이란 '사각의 링 위의 복싱'이 아니라 '길거리 싸움'이기 때문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may be lethal'이라는 문구와 'is designed to be lethal'이라는 문구의 차이를 보다 생생하게 느끼고 싶은데 쉽진 않다. 


종이 울리면 실컷 맞다가도 잠시 쉴 수 있지만, 길거리 싸움에선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발길질은 깨진 얼굴과 뒤틀리는 복부에 끊이지 않은 테니, 우리 삶은 길거리 싸움에서 늘 맞는 쪽일 것이다. 


날은 춥고 햇살은 가지런하기만 하다. 아이는 잠이 들었고 몇 주만에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턴테이블에 수십년이 지난 존 바에즈의 Best 곡 모음집 LP를 올리고 잠시 상념에 잠기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채 가시질 않는다. 우리 시대는 과거는 쉽게 잊어버리고 현재는 발목을 잡고 미래는 차마 오지 않았으면 하는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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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병 2013.12.30 04:28 신고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평안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지하련 2013.12.30 10:39 신고

      감사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연말입니다. 그렇행복한 연말 되시고요~.





무관심한 듯 시선을 거두는 행인 A, B, C, ... 무수한 알파벳들은 실은 다른 알파벳들, 다른 숫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고 어떻게 평가할까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봐주고 평가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커피 위로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선릉역 인근 빌딩숲에서는 그 수를 세기 어려운 모기들이 가을 깊숙한 곳까지 진을 치고 있었다.


화요일이 왔고, 수요일이 올 것이고, 목요일, 금요일, ... 2013년이 지날 테지만, 우리에게 인생의 해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그녀는 연애를 포기했고 그 남자는 한국을 떠났다. A는 그림을 포기했고 B는 사업을 시작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세속적 가치, 뉴튼이 공표했고 데카르트가 뒷받침했던 도구적 이성의 상징적인 수단, 돈을 위해 B는 사업을 했다. 그리고 그 B의 열정적이고 감동적이며 자기 헌신적인, 종교적으로까지 승화된 도전에 B1, B2, B3도 따라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저기 출사표들로 넘쳐나는 어느 오후. 나는 미련스럽게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묻고 다시 묻고 다시 물었다. 해가 오고 해가 가고, 해가 반복될수록 내가 막연하게 가졌던 답은 오답으로 결정하거나 예외들을 쌓아가서 결국 무너졌다. 막연한 방향들로 내 미래의 지침을 삼는 요즘, 마치 앞으로 가지 못하고 뒤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건 아닌가 무섭고 두렵다. 


결국 나 혼자 할 수 없고 나 혼자 해서도 안 된다. 새로 팀을 꾸릴 생각이고 팀원들 앞에 'Great Team'이 되자고 할 생각이다. 내년 1월 1일에. 나는 벌써 내년 1월 1일을 고민한다. 올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시간은 가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성장한 내 아들은 나에게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아버지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고 질문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을 두려워하자. 그리고 그 순간만은 아버지의 지혜로움으로 대답을 하자. 지금 그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 순간에도 해답을 가지지 못했을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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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를 잘 알지 못한다. 뭔가 있어 보이게 할 때, 자주 이용된다는 생각도 있고,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사자성어에 빗대어 설명해야 하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오늘 네이트온 닉에 이렇게 적었다. 


'易地思之 & 反面敎師'. 


참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타인도 원하고, 내가 싫은 것은 타인도 싫어한다. 하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서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모든 일의 기본이고, 오래 가는 방법이다. 기업은 고객의 입장에 서봐야 하고 리더는 구성원의 입장에서 서봐야 한다. 이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다. 그런데도 안 되면, 그 다음은 반성해야 된다. 


반면교사(反面敎師)는 그렇게 시작된다. 자신의 노력이 헛되이 끝날 때는 자신의 노력 방식이 잘못되었으니, 타인의 허물을 보면서 반성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긴 하나,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건 그런 것이고, 위치가 올라간다는 것도 그런 것이다.


몇 주 간 이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그러다가 7월 9일 페이스북에 위 내용을 적었다. 결국 모든 것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개의 원고가 마감기한을 어긴 채 밀려 있었는데, 다행히 마감을 연기해주었다. 이제 시간을 잡고 쓸 일만 남았다. 그리고 업무 인수 인계와 마무리, 새로운 업무에 대한 이해와 준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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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주 가끔 ...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고 ... 시간이 지나간다. 


모든 것들이 선연히 보일 때, 정작 움직이지 못한다. 왜냐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해답은, 늘 그렇듯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 


지난 주 목요일에 걸린 목감기(인후염)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고. 잠을 8시간 이상 자는대도, 사무실에 오면 졸린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와 과로가 꽤나 심각한 모양이다. 


이래저래 주변이 시끄럽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하지만 내 꿈은 단연코 '멋지게 사는 것'이었다. 


청춘은 비에 젖지 않는다. 나는 청춘이고 싶다. 

하지만 술에는 젖지, 아름다운 청춘은. 


** 



어제 배달되어 온 LP 관리 용품들이다. 크리닝 매트, 판솔, LP 스프레이. 이제 상점에선 구하기 어렵고 인터넷으로 힘겹게 구한 녀석들이다. (실은 있는지 몰랐다. 오프라인으로 한참 구하다가 포기하였으니..) 


이번 주말 신나게 음악을 듣고 싶지만, 원고 2편을 써야 하고, 시험을 봐야 하며,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제천까지 내려가야 한다.


2012년 5월달, 6월달, 정말 힘들다. 화끈하게 좋은 일 좀 생겼으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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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전략? 실은 전략이랄 것도 없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었을 땐 제 멋에, 잘난 맛에 살았고, 굶어죽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만큼 무책임한 표현도 없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그러나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말을 상투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들은 종종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를 잊는 것이다. 


어쩌면 잊고 싶을 지도 모를 일.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삶은 없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못할 삶도 없다. 이 두 가지 삶 사이의 작은 길이 우리 삶의 길이 된다.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서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니, 우리 일상은 한 없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한 회사에서 이제 4년이 다 되어 간다. 조직 구성원도 두 배가 되었고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문득 내 위치를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이력서를 제출해 직장을 옮긴 적이 한 번도 없고, 구직 활동이랍시고 한 게 딱 두 번 있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로 사람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면접을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팀원을 뽑을 때도 그렇다. 아직 작은 회사라 많이 지원하지도 않고 '사람 인연은 하늘의 뜻'이며, 대체로 기업에서 원하는 업무 능력은 제대로 가르쳐 주면 못할 사람은 거의 없고, 만일 못한다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려는 탓이거나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성격이 더 중요하다. 거짓말 하지 않을 것, 즉 모르거나 못하는 일은 그대로 이야기할 것. 자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것. 무조건 노트하고 메모해서 정리해 둘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팀원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꽤 조심스럽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겪어보기 전엔 알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것이고, 그건 그냥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상식적인 것에 해당되는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면접같은 것에서 나를 포장해본 적 없고, 심지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다른 세계에서 과연 강조되어야 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솔직히 말해 내가 면접을 당하는 입장에서 나를 알리는 일만큼 얼굴 화끈거리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B2C나 B2B 서비스의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행안을 마련한다.


이렇게 보면 살아가는 건 참 재미있기도 하다. 오늘은 문득 팀원들에게 서양 지성사나 서양 미술사 강의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인문학이 유행이라는데, 그런 이벤트 한 번 해주면, 지금 당장은 도움이 안 되겠지만, 먼 미래를 위해선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고민하는 힘' -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래 생각하고 결론나지 않을 듯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가가 우리의 노년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드는가를 잘 알기에, 아주 엉뚱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진리란 있는가?', '아름다운 사물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이나, '왜 추한 것이 현대 미술 속으로 들어왔는가?'와 같은 미술에 대한 주제도 흥미로울 것이다. 


---


할 일은 많은데, 정작 다른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문서 작업 조금 하고 새벽에 일어나 정리하고 고객사 미팅을 준비해야 겠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고, 나에겐 두 분의 스승이 있는데, 두 분 다 나로선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공부를 하신 터라,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책 한 권 내면, 저자 서문에다 두 분의 은혜를 이야기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마음과 무관하게 책은 커녕, 공부도 못하고 원고 쓸 시간도 없어졌다. 한 분과는 연락이 끊어진 상태이고 한 분과는 아주 가끔 연락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예의없는 학생도 없을 것이다. 내 스스로 공부에 불성실하진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더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생의 정답은 없고, 내가 배운 것은 없는 정답 대신 정답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것이다. 그걸 나는 대학 밖에서 배웠고 책 밖에서 배워, 책 속에서 그것의 실마리를 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의 정답이 왜 없는가'를 찾는다고나 할까. 너무 현대적인가. 


아, 이제 일을 좀 해야 겠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요즘 읽고 있는 플라톤  '향연'의 한 구절을 옮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앉으면서 말씀하셨다고 하네. "참 좋을 것이네, 아가톤. 지혜가 우리가 서로 접촉할 때 우리 가운데 더 가득한 자에게서 더 빈 자에게로 흐르게 되는 그런 거라면 말일세. 마치 잔 속의 물이 털실을 타고 더 가득한 잔에서부터 더 빈 잔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네. 지혜도 이런 거라면 난 자네 옆에 앉는 걸 아주 귀중히 여기겠네. 나 자신이 자네에게서 나오는 많은 아름다운 지혜로 채워질 것으로 믿으니 말이세. 내 지혜는 보잘것없고 꿈처럼 의심스런 것이지만 자네 지혜는 빛이 나며 많은 늘품을 갖고 있거든. 바로 그 지혜가 젊은 자네에게서 그토록 맹렬하게 빛을 발하며 밝게 빛나게 되었지. 엊그제 3만이 넘는 희랍 사람들이 증인이 된 가운데 말일세."

"도가 지나치십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하고 아가톤이 말했네. 

- 플라톤, <<향연>>, 175d (강철웅 옮김,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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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지음), 이경덕(옮김), 사계절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비가 온 뒤 땅은 굳어지는 왜일까.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서야 우리는 왜 사랑에 대해 (철저하리만큼) 숙고하고 보잘 것없이 여겼던 연애의 기술을 반성하는 것일까. 거친 홍수처럼 세차게 밀려들었던 후회와 끔찍한 반성의 세월을 술과 함께 보내며, 나는 얼마나 많이 ‘철 들지 않는 나’를 괴롭혔던가. (그리고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을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포기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될 청춘들에게 자이니치(재일한국인) 강상중은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 너머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등장시킨다. 이미 베버와 소세키가 죽었던 그 나이보다 더 살고 있으면서(그래서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강상중 교수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인용하면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는 건 의외의 일이긴 하다. 허나 막스 베버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문학에서 나쓰메 소세키 같은 작가가 있다는 건 정말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한국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 자체는 사고하고 성찰하는 데 부적합한 것’(1)일 지도 모르니,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나쓰메 소세키는 세계문학전집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작가이고, 막스 베버는 전공자들에게나 읽히는 사회학자 쯤으로 여겨지는 요즘에, 강상중 교수의 이 책이 이렇게나 많이 팔리고 읽혔다는 건 참 낯선 일이다(그리하여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더 많이 읽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삐딱하기만 한 내 눈엔, 저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힘’을 이야기했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에겐 ‘고민하는 힘을 읽은 위안’만 전해준 것은 아닐까.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하라는 저자의 조언 대신.

현대, 즉 모던(Modern)과 그 이후에 있어서 자신의 문제는 자기에게로 돌아온다(자기반영성의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 이후의 우리에게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은 결국 신경쇠약을 낳는다. 신경쇠약은 20세기의 모두가 공유하는 병’(나쓰메 소세키)이 되어, 우리는 그 정신병과 싸우거나, 반대로 그까짓 것 하는 심정으로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가 되어야 할 것이다(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채 거대한 세상에 끌려 다니다 죽을 수도 있겠지).

강상중의 이 짧은 책은 독자에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요청하지만, 책은 너무 간략하고 강상중 교수의 문장은 종종 넋두리 같이 들렸으니, 이는 결국 살아가야 하는 건 나이거나 독자이고, 저자인 강상중 교수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까. 

자살을 생각하는 한 여인을 앞에 두고, “죽지 말고 살아야해”라는 소세키의 조언 다음에 나오는 ‘죽음은 삶보다 귀하다’라는 독백은 우리 인생이 어떤 대지 위에 서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 이 책 속에서나 밖에서나 삶(인생)의 문제란, 근대(Modern)의 문제이고, 청춘의 문제이며, 젊음의 문제였다. 

그래서 스물 살 때의 고민이나 스물 다섯이나 서른 다섯, 혹은 쉰 다섯이라고 해서 그 고민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나 질문이 달라지지도 않을 게다. 고민하는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 고민이나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온 것도 아닐 것이고. 단지 고민과 의문에 답을 구하는 자신의 태도가 달라져 있을 뿐.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고민이나 의문이 아니라 그 고민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될 것이니,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대하게 될 비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고, 잔인한 슬픔을 동반한 헤어짐 뒤에, 새로 만나게 되는 연인에 대해선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과는 다른 태도로 연인을 대하게 될 것이니, 인생은 관객은 없고 오직 주인공만 혼자 이리저리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한 편의 잔인한 드라마는 아닐까.(2)

그저 인생은 원래 쓸쓸했고, (주위의 조력자) 없이 고민하는 나로 인해 세상은 조금이나마 살만한 곳이 될 터이니,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한 공허한 위로만이 저 차가운 대기를 채운다.

이 책을 감히 추천하기에는, 이 책을 번역한 역자도 나쓰메 소세키를 번역하면서 읽었다고 하니, 과연 이 책이 얼마나 깊은 호소력을 가지게 될 지는 미지수다. 그나저나 막스 베버의 책은 서가 어디에 있는 걸까. 오래 전에 읽었으니,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다 읽고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읽기를!)



1)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Black Swan’(동녁사이언스) 중에서
2) 하긴 이런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의 99%는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부자가 되었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1%의 문제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파멸을 향해 달려갈 테지만, 이 얼마나 현실적인 답변인가! (출처: 잭 트라우트, 알 리스, '마이 포지셔닝My Postioning'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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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블로그를 뒤지다 다시 읽었다.
벌써 4년이 지난 인용이다. 그 사이 나는 해 지기 전 한 걸음만 더 걷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이제서야라도 한 걸음 더 걷는 사람이 되기로 하자. 이현세의 아래 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다시 현재형으로 올린다.

(2011. 10. 21)



- 아래는 2007년 6월 5일 작성

좋은 글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교보문고 북로거이신 기번님의 블로그에서 가지고 왔다.  


출처 : 서울신문 2005-02-23    20 면


[이현세의 만화경]


해 지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 년이든 20 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 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 장을 그리게 되고 10 년이면 3만 5000 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 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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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선희 2007.06.08 09:38 신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없는번호라고 하네요. 메신저도 잠수 중이고... 간만에 연락했더니 연락도 안되고...댓글 보면 연락 좀해요.

  2. 첨엔 지나다 그림이 이뻐서 눈을 멈췄네요..무심 읽다 참 좋은 글을 만나서 더 좋았고요..허락없는 댓글도 이해해 주시길..^^/


 

철든 남자만큼 안타깝고 슬프고 절망스러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종종 우리들은 성직자들에게서 ‘철 들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철들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이니, 성직자들에게는 종교적 관점에서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힘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는 ‘종교적 관점’이 될 것이다. 성직자들은 신앙을 향한 ‘철없는 열정’을 숨기고 있다. (즉, 모든 열정은 철없음의 소산이다!) 마음 속에서는 늘 자신들이 믿는 신을 향한 끝없는 신앙심을 숨겨져 있는 탓에, 그들은 자신의 생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철든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병상 위의 남자다. 죽음을 향해 가는 남자. 자신의 생명력이 부질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 남자는 갑자기 철이 든다.

그리고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며, 그것을 병상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가끔 이 때까지도 철이 들지 않는 남자가 있기도 한데, 이 경우에는 이미 사라져가는 생명력을 철없음으로 인위적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이 다시 좋아져, 병상을 벗어나는 순간, 그 남자를 둘러싸고 있던 ‘철 들었다’라는 동사는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결국 (여성의 입장에서) 철 든 남자란 없고, 남자가 철이 든 순간 남자로서의 존재 의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다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철 들었다’는 것에 대한 기준점이 있다면, 남자의 건강 상태와는 무관하게, 세상의 거친 풍파와 여성의 사랑, 또는 잔인한 훈육을 통해 어떤 남자는 그 기준점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나는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 다만 철 들었다는 기준점(만약 존재한다면)에 10년 전보다 가까이 다가갔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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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낭만킹 2011.08.26 15:07 신고

    소현님의 페이스북/트윗 보시고 쓰신 글 같아서 냅다.. 주소를 업어갑니다.ㅋ
    남자랑 여자랑 같은 인간인데도 왜이리 다른 점이 많은지..ㅎㅎ
    항상 꾸준히 잘 읽고 있습니다.
    -미니 드림^^-

    • 지하련 2011.08.27 21:33 신고

      '철든다'라는 단어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면에 철들 순 없거든요. 그런데 모든 것에 철들기 바라는 시선이 있는 것같아요.. ^^~


카메라를 가지고 나갈 때조차, 나는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아직 익숙치 않은 탓이다. 도리어 어떤 풍경을 보고 그것에 어울리는 문장을 고민하는 편이다. 최근 한 달간 내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놓고 보니,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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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동사무소 옆 흰 벽과 거울이 인상적인 카페에서 더치 커피를 마셨다. 커피 향이 너무 좋았고 같이 있었던 이도 좋았다. 집 안에서 키울 수 있는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커피에 대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녀에게서 커피를 선물받았다. 그런데 아직 드립퍼를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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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 있는
카페 향에서 있었던 재즈 연주 풍경이다. 최근 들었던 그 어느 재즈 밴드들보다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연주에 비해 모인 사람들이 다소 적었고 단골들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도 바쁜 일상 중이라,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즐겁게 술에 취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그런 일이 있었나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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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와인은 깊고 두터운 향을 경험하게 해준다. 특히 몇 시간에 걸쳐 아주 천천히 마실 때야 말로 이 와인의 진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땐 너무 급하게 마셨고 결국 취하고 말았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근사한 와인 파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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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라 투르의 세컨 와인이다. 가격 대비 무척 훌륭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 잡지의 어워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위의 마고 와인을 마신 후, 이 와인은 너무 밋밋했다. 난 구대륙의 무겁고 진한 와인을 너무 좋아한다. 와인 이야길 적다보니, 와인 마시고 싶어진다. 아, 이 와인 중독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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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박 갤러리엘 갔다. 주위의 풍경이 좋았고 현재 전시 중인 정광희 선생의 작품은 너무 좋았다. 갤러리 근처의 한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몇 분과 인사를 나누었지만, 나서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과 만날 땐, 늘 조심스럽다. 조용히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닥터박 갤러리 대표님과 관장님, 그리고 미술평론가 윤진섭 선생님도 함께 식사를 했으나, 인사를 나누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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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사람들 중에
블랙칸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다. 살사 댄스 강사이기도 한 그녀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살사를 춘다. 그녀의 초대로 홍대 근처에서 열린 파티엘 갔다. 생각해보니, 이런 파티는 처음이다. 춤이 어우러진 근사한 파티였다. 나같은 이는 술만 좋아라 할 텐데, 연주와 춤을 함께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위의 사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는 강재선 선생이다. 모스크바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정식 클래식 연주자인데, 라틴 음악에 빠졌다고 한다. 나도 흥에 겨워, 잠시 살사 스텝을 배웠으나, 서른 중반에 이른 몸의 기억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고 막춤 세대라 매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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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미술에 매혹되거나 혹은 사진이라는 것에 매혹되었다면, 대기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왜냐면 대기의 변화에 따라 풍경의 색채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것을 최초로 발견한 예술가가 바로 인상주의자들이다. 바로크 풍경화가들이나 몇몇 낭만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자연 풍경의 미묘한 변화가 실험되기도 했으나, 이를 주도적인 경향으로, 깊이있는 분석과 표현으로 이끌어낸 이들은 인상주의자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은 현대의 사진가들이 아닐까 싶다. 어제 오전에는 인사동에서 여러 전시를 보았고 몇 명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는 사진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 종일 미술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눈 보기 드문 하루였다. 저녁 6호선 광흥창 역 근처에서 몇 장의 평범한 사진을 찍었다.  

좋은 작품들은 좋은 향기가 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에게서도 좋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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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쉐아르 2008.08.30 04:34 신고

    향기나는 사진들... 참 잘 봤습니다. 그리고 그안에 담겨있을 음악과 웃음들도 같이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네요. 와인은... 술을 안하기에 패스지만요 ^^

    카메라 어떤 것 쓰시나요? 디지탈은 아닌 것 같은데요.

    • 지하련 2008.09.01 13:04 신고

      상태가 좋지 않은 사진들은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입니다.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콘트라스트 정도는 손을 보긴 했지만요. ^^
      맨 밑의 사진은 니콘 D-70s로 찍은 것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긴 하나, 거의 찍지 않아서 산 지 벌써 2년이 넘었는데도 신제품입니다. 크~


뜨거운 차가 부담스러워지는 계절이 온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뜨거움이 어색해지고 낯설어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엉망으로 살아온 시절들에 대해 육체가 그 특유의 반응을 쏟아내는 것일까.

천칭자리 태생은 늘 어떤 선택의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그 선택을 끊임없이 뒤로 미루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까. 세 여신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파리스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망쳐놓은 계절은 실성한 듯한 더위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깊은 바다 물고기들이 길을 잃고 얇은 바람은 삽시간 두텁고 무거운 부피로 우리의 도시를 강타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모른다는 건 얼마나 좋고 행복한 일인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두려움에만 떨고 신에게만 의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신은 우리에게 외롭고 싸늘하게 죽어가는 키에르케고르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한 채 미쳐 죽어가는 니체의 모습에게서 교훈을 찾으라고 한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

이젠 술마저도 날 버리고 날 둘러싼 모든 이들이 적처럼 보이는 어느 시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내 자신이 내 인생 최대의 적이 아닐까. 하긴 그럴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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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컨대 인생은 매우 슬픈 익살이다. 왜,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그 욕망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우리는 하나의 현실을(저마다 다른 현실을 각자 하나씩) 창조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속이려는 욕망을 우리 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따금 이 현실이 헛되고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예술은 자신을 속이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쓰라린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연민 뒤에는 반드시 인간을 자기 기만으로 몰아넣는 운명의 잔인한 비웃음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 루이지 피란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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