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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새로 생긴 동네 더치 커피 전문점, 스테이지 나인. 

그리고 잠깐 동안의 커피 여행. 

짧고 굵은 목넘김, 낮고 은은한 향기, 

초봄 햇살이 빌딩 사이로 사라지고 그 틈새를 물들이는 어둠.  

출렁이는 어두움이 입술에 닿을 때, 살짝 미소를 짓는다. 

아, 나는 역시 예가체프구나. 

우아하고 깊은 시원함. 시큼함. 쓸쓸함. 허전함. 

지난 청춘 깊이 숨겨져 있던, 늙어가는 피부 아래 잠겨있던, 그 기억이 

무심한 거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함께 다가오는 공포여. 내 삶, 미래의 두려움이여. 

쫓기듯 뭉게, 뭉게, 뭉게

위로, 위로, 올라가는 내 삶의 진정성이여,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들뜬 모험이여,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의 불꽃을 앗아갔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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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 들었는데, 새벽에 눈을 떴다. 마음이 무겁고 복잡한 탓이다. 

나이가 들면 사라질 것이라 믿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근심 걱정은 더 많아진다. 

내 잘못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건지 모르겠다. 


젊을 땐 내 잘못이 아니라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원래 인생이 이런 게 아니라 내 잘못이라 여기게 되는 건 왜 그런 걸까. 

내가 제대로 나이가 들고 있긴 한 건가. 


인터넷을 떠돌아다는 영상이 기억나 다시 보게 된다. 

사랑이라 ~. 

참 미안하고 참 슬프다. 


예능프로라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회와 회한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사이로 고백하고 되돌이고 싶은 저 노인의 외침이

흰 눈들 사이로 사라진다. 

방송 출연진의 탄식이 흘러나오고 ... ... 

참 미안하고 슬프다. 

그게 첫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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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ID 레이블. 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레이블이 될 것이다. 집에 몇 장 있는데, 어디 꽂혀있는지, 나는 알 턱 없고. 결국 손이 가는 건, 역시 잡지 부록으로 나온 BEST COLLECTION이다. 레코드포럼, 매달 나오는 대로 사두었던 잡지, 그 잡지의 부록은 클래식 음반 1장, 재즈 음반 1장. 제법 좋았는데. 


유튜브가 좋아질 수록 음반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하기 힘들던 시절의 아련함은, 우연히 구하고 싶은 음반을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아는 이들을 불러모아 맥주 한 잔을 하며 낡은 영국제 앰프와 JBL 스피커로 밤새 음악을 듣던 시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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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내가 글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할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닐 것임을 나는, 어렴풋하게 안다. 마치 그 때의 사랑처럼. 


창백하게 지쳐가는 왼쪽 귀를 기울여 맥주병에서 투명한 유리잔으로, 그 유리잔이 맥주잔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듣는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음악은 오래되고 낡은 까페 안 장식물에 가 닿아 부서지고, 추억은 언어가 되어 내 앞에 앉아, "그녀들은 무엇을 하나요?"라고 묻는다. 그러게. 그녀들은 무엇을 할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할까. 콜드플레이가 왔다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이는 시간을 먹고 나는 청춘을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는 사이, 많은 것들을 잃고 얻었다. 노트 한 장을 찢어 길게 반으로 접어, 한 쪽에 내가 잃은 목록을, 한 쪽에 내가 얻은 목록을 적는 사이, 계절이 가고 계절이 오고, 너무 하얀, 그녀의 창백한 볼을 닮은 눈이 내린다. 반쯤 마신 맥주 잔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쌓인다. 쌓인 눈 위로 서로 손을 마주 잡은 그들이 잔 위로 걸어나와 대학로 거리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취해가던 금요일 밤, 다행히 나는 그녀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실은,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녀들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만날 수 없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 찬란하던 고통을 받지 않아도, 그렇게 투명하던 눈물도, 끝없는 저주의 언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볼 수 없을, 하얀 잔 위로 그 발자국처럼, 그 쓸쓸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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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특정짓는 것이 짙은 녹음과 뜨거운 열기라면, 이미 여름은 왔다. 그렇다면 사랑을 특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이별?, 아니면, 나는? 


세월은 너무 흘렀다. 나만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다 아는 사실 하나,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 


평일 창원엘 갔다. 연휴나 명절이 아닌 날 내려간 건, 거의 이십년 만인가. 지방 중소 도시에선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도 서울에선 참 낯선 풍경임을 새삼 느꼈다. 그만큼 서울 생활이 익숙해진 건가, 아니면 지친 건가.  





올해 초 새로 생긴 경상대학교 병원 앞에 이런 하천이 있었다. 조금만 가꾸면 사람들이 다닐 수 있을 것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을 것이다. 여기저기 공원이다 보니.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몇 장의 창원 풍경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지난 기억이 떠올라 가슴 아팠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어떤 삶 앞에서 문학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던 시절, 그 이후 나는 술이 늘었고 주사가 생겼으며 마음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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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만 해도,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곤 했는데, 지금은 놓은 지 오래다. 얼마 전 아는 형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나가는 소설가들의 인세 이야기를 듣고선(뭐, 한국에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약간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 아니, 매우 부러웠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이. 적어도 이제서야 인생의, 아주 작은 일부를 안 것 같으니 말이다. 아마 그 땐 다 거짓말이거나, 짐작, 혹은 추정이거나 과도한 감정 과잉 상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문득 습작을 하던 글이 눈에 띄어 옮긴다. 이것도 거의 십오년 전 글이군. 그 사이 한 두 편 더 스케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술만 마셨다. 어떤 소설이 아래와 같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역시 글은 마감이 힘이다. 마감이 있어야 하고 마감을 지켜야 하고 마감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마감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끝나지 않는 마감이 있을 뿐. 


* *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황폐하게 부서지는 가을 햇살 속을 걸어가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본 후, 익숙함이라든가, 낯섦이라든가 하는 생의 사소함 따위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찻집 구석진 곳에서부터 울려나왔다. 하지만 그때도 늦진 않았다. 만약 그때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난 매일 이 자리에 와서 유리창 바깥만 바라보는 일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밤이면 누군가를 품에 안고 잠을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이 자리에 와서 창 밖을 바라본 것도 벌써 십칠 년이 흘렀다. 그 십칠 년 동안 내가 바라는 유일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제 밤, 술에 취한 한 여자가 이 테이블을 작은 두 손으로 내리쳤을 때, 그 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되었음을, 골목길을 쓸쓸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자신의 쓸쓸함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라, 중년의 주름진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했다. 십칠 년 동안 눈동자 뒤편에서 깊은 희망의 수면(睡眠) 속에 있던 눈물들이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동안 난 차마 그 이름을 혓바닥 위에 올리지 못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된 이유는 나처럼 희망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희망을 이루고 난 이후, 그 희망이 자신이 바라던 그 희망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그건 손바닥만한 무쇠덩어리에서 나간 손톱만한 고철덩어리가 한 영혼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여하튼, 이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건 한 여자를 집요하게 쫓아다닌 한 남자에게 한 여자가 ‘지금 당신은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보다 더 늦은 순간이다. 그 순간에 느닷없이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저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사라진다. 난 그 이름을 부르는 대신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혓바닥 위로 올렸고 얼마 뒤 그 소리는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 찬란한, 그러면서 너무 슬픈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따라가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지기엔 내 인생이 불쌍했는지 난 이렇게 오래된 빈 노트 한 권을 꺼내 넋 나간 듯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존재하고 있을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과연 있을까.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빗물에 지워지고 바람에 묻어 날아가지만, 그래도 흔적은 끝내 남아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었던 흔적부터 처음 자위행위를 하고 난 다음 부드러운 표면의 성기에서 나온 정액의 흔적까지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 글도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 몇 년,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이 지난 후 그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힐지도 모르며 이 속에 담긴 내 눈물 자국을 보면서 나처럼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혓바닥 위에 올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고자 했다면, 난 이런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아픔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 분명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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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동영상이다. 자막판도 있는데, 이는 페이스북에서만 확인했고 youtube에서는 찾지 못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모습인데, ... 세월이 흐른다는 걸 이 동영상을 보면서 느끼는 걸 보면, 나도 꽤 나이를 먹었다. 





미국의 팝스타들이 모여 'We are the world'를 노래하기 전에 영국의 팝스타들이 먼저 Band Aid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음반을 냈다. 집에 LP가 있는데, ...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려운 지경이니. 






이 음악들을 들으면서 추억에 잠긴다면, 당신도 나이 든 것이다. 


(일요일 밤에 술 마신 지도 정말 오래 되었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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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술은 참 오래된 벗.

에라주리즈 에스테이트 까베르네쇼비뇽. 

이 가격대(1만원 ~ 2만원 사이)에서 가장 탁월한 밸런스를 보여준다고 할까.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까쇼 특유의 향이 물씬 풍기는 와인. 

이 와인을 즐겨 마신 지도 벌써 10년. 

그 사이는 나는 이 와인을 참 많은 사람들과 마셨구나. 

아직 만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끊어진 이도 있고. ... 

흐린 하늘의 춘천을, 사용하지도 않을 우산을 챙겨들고 갔다 돌아온 토요일 저녁, ... 

한없이 슬픈 <<화양연화>> OST를 들으며 ... 

참 오랜만에 혼자 술을 마신다. 

오마르 카이얌도 이랬을까. 

인생은 뭔지 모르지만, 술 맛은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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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기억은 사진으로 되살아난다. 사진이 없으면 여행은 없다. 그저 사라질 뿐이다. 여행 이후 쌓이는 건 사진이고 추억은 사진에 기생하는 어떤 것이 된다. 


작년 늦가을 속초를 다녀왔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사람은 나고 자란 곳을 잊지 못한다. 내가 자란 곳이 중소 도시이듯, 이런 도시에 가면 살고 싶어진다. 바람이 막힘없이 흘러가는 도시, 조금만 움직이면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도시, ... ... 나도 서울에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누군가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적 죽음을 겪는다.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벗어남으로써 부재를 경험한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지켜보며 자신의 가치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사회적 존재로서 부활하는 기쁨을 누린다. 이것이 여행이 주는 진정한 의미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왔는데, 기억나질 않고 ... 


아바이 마을 옆 다리 ... 


두 개의 등대, 


멀리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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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말랑말랑하던 감수성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났던 선배는 나에게 '10년 전 나는 참 4차원이면서 똘똘했다'고 평했는데, ... 내 스스로 그랬나 싶어할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물 안에 있으면 내가 있는 곳이 우물인지 모르고, 우물 밖에 나와야만 내가 우물 안에 있었다는 걸 안다. 즉 자신 스스로 돌이켜보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물어서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2004년 6월에 쓴 메모를 다시 읽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게 휴식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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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6일 05:04


전화를 하지만, 전화는 되지 않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빙빙 돌다가

어디 막다른 벽에 부딪히면

내 영혼은 심한 균열을 일으키면서 염려가 되고 두려움이 된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스려보지만, 되지 않는다.

역시 난 현대의 병을 앓고 있다.

프루스트가 그랬고 바흐만이 그랬던 그 병

한 번 앓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 에고이스트들의 병.

 

하드디스크를 뒤적뒤적 거린다. 그리고 오래된 글 하나를 발견하다.

97년. 참 힘든 해였다고 생각했는데 ...

 

 

 

 


 제  목:97년, 날 사랑한 두 명의 여자.                               

 올린이:지하련  (김용섭  )    97/12/31 22:13    읽음:106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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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밤 좀 틔각거린 일도 있고  해서 그랬든지 아무튼 일부러  달게 

       자는 새벽잠을 깨울 멋도 없어 남편은 그냥 새벽차로  일직암치 관평을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訣別』(지하련의 소설. 1940)의 첫 문장

          

          Hazel Motes sat  at a forward  angle on  the green plush  train 

       seat, looking one minute at the window as if he might  to jump out 

       of it, and the next down the aisle at the other end of car.

          -『Wise Blood』(Flannery O'Conner의 소설. 1952)의 첫문장

          

                 *                   * 

          

          두 명의 여자 소설가. 한 명은 남편의, 총살당한 시체도  보지 못한 

       채 미쳐 죽어간 여자. 한 명은 홍반성 낭창(루시퍼)으로 육체가 엉망이 

       되어가는 가운데, "나에게 인생의 의미는 그리스도교에  의한 구제라는 

       한 점에 귀결된다"라고 절규하며 소설을 쓴 여자.

          

          97년 12월 31일 수요일. <<O'Conner - Collected  Works>>을 마지막

       으로 책을 샀다. 35달러나 하는 그녀의 소설을 오늘 기준 환율 1달러당 

       1600원을 적용해, 은행까지 오가며 사고 말았다. 살아있는 여자들은 내 

       곁을 떠나는데, 죽은 여자들은 내 곁으로 온다. 

          池河連과 Flannery O'Conner. 

          97년 날 사랑한 두 명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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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외근이 있었고, 장소는 압구정동이었다. 평일 오후 압구정동 거리는 참 오래만이다. 상권이 많이 죽어 인적이 드물었다. 내가 자주 왔던 이십년 전에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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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점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 지음, 김진화 옮김/눌와


벽 - 건축으로의 여행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지음), 김진화(옮김), 눌와 



벽에 대한 짧은 에세이다. 건축가인 저자는 건축물로서, 우리가 마주 보며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벽에 대한 여행과 생각을 조용히 들려준다. 그 목소리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녀가 '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의 밑바닥에는 늘 '사랑'이 깔려있다.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얻게 되는 벽에 대한 지각은 차라리 감각적으로 느끼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햇볕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벽에 어깨를 기대고 있으면 우리를 받쳐주고 있는 벽의 든든함과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동시에 곧게 서 있는 벽,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벽을 지각할 수 있다.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꼭 침대나 땅 위에 길게 누웠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11쪽 


벽의 온기... 아마 이런 기억.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에서 한참 동안 기대고 있었던 담벼락. 또는 여자아이가 살던 집 옆 골목길 담벼락에 숨겨져 있던 따뜻했던 느낌같은 것. 

책의 초반은 벽의 재료나 건축적 의미를 묻지만, 책의 후반은 문학적 해석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초반은 딱딱하고 다소 지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후반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기억이나 꿈, 상상은 벽의 정신적 이미지를, 다시 말해 벽이라는 물성으로부터 거리를 둔 상징적 가치를 가지는 벽을 재현시킨다. 이런 상징적 기능을 통하여 벽은 또 다른 존재성을 가진다. 즉, 벽은 인간과 직접 맺은 물질, 도구적 관계를 떠나 자신을 생각하는 주체를 밖에서 자신을 실현하고 다시 새로운 형태로 상상과 실제 속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107쪽 


우리가 매일 만나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 벽.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면서도, 마음 속으로 뻗어나가는 상상적 공간이기도 한 벽. 두껍고 무거운 벽에서부터 현대 건축물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유리로 된 벽까지. 

이 책은 벽에 대한 짧고 매혹적인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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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는 창원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건 내 나이 탓일까, 아니면 내가 처하게 되는 환경 탓일까.


집 밖을 나오면 멀리 뒷 산들이 보이는 풍경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건, 너무 오래 서울 생활을 했다는 뜻일 게다. 하긴 지금 살고 있는 노량진 인근 아파트 창으론 여의도가 한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연휴 때 나온 사무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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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물리적 공간, 혹은 거리와 면적은 언제나 넓고 길다. 마치 지나온 시간 만큼, 쌓여진 추억들만큼, 기억 속에서 공간들은 소리 없이 확장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무렵의 마산의 중심가는 창동과 불종거리였다. 그 곳에서의 사춘기 나에겐 무수한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늘 현재를 살기에, 단지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만 짐작할 뿐, 추억의 상세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힘들고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올 여름의 휴가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마산 창동에 갔다. 한 때 극장과 서점, 까페, 옷가게들로 융성했던 거리는 이제 쇠락해가는 구 도심일 뿐이었다. 화요일 점심 때가 가까워져 오자, 사람이 한 두 사람 느는 듯했지만, 서울과 비교해 인적은 뜸했다.





이 곳을 가게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창동 예술촌’ 때문이었다. 아마 보기 드물게 활력을 잃어가는 도심을 살리기 위해 예술가들과 지자체가 함께 하는 예술 마을 프로젝트가 여러 번 저널에 실리고 TV에도 방영된 탓에, 내 기억 속의 거리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시선을 잡아 끄는 벽 장식들과 건물 외벽의 색채들, 벽화들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했다. 실험적이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고 진솔해 보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지역적 특색을 살리고 있어, 예술로 시작했지만 예술은 뒤로 사라진 채, 코스모폴리탄적 무국적성이 아닌 상업적 무국적성을 띄어가는 서울 인사동이나 삼청동, 혹은 홍대 거리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예술가들의 의식적 실험이 지역의 도심을 살릴 수 있다는 흥미로운 발상은 다른 지역의 예술 공동체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클 것이라 생각 되었다.




마산 창동예술촌을 둘러보던 중에 먹은, 추억의 음식인 마산 코아양과의 밀크쉐이크와 육이오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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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산문집에서 그리운 이름 하나를 발견하고 기뻤다. 그 이름은 파트릭 모디아노. 프랑스의 대중적인 소설가(?), 라고 하면 그런가. 다른 이들 - 미셸 투르니에, 르 끌레지오 등 - 과 비교해 어떤 문학성으로 승부한다기 보다는 서정성, 분위기 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할까.


내가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때 언제였는지 아련하다. 고등학교 때부터였나. 그리고 대학시절까지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지금 스토리가 기억나진 않지만, ... 지금 그의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번역된 그의 소설 몇 권을 리스팅해본다. (예전 내가 읽었던 소설들은 이제 품절이거나 절판이다. 이런..)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역

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운비 역




팔월의 일요일들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옮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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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싶어. 아버지는 죽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잖아." 
- '서쪽부두'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희곡)의 샤를르의 대사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이제 내년이면 나도 마흔이 된다. 서른부터 마흔까지 너무 길었다. 스물부터 서른까지는 무척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스물까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슬픈 플라톤보다 현실적인 헤라클레이토스가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왜일까.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현대 프랑스 최고의 희곡 작가.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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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앞 바다 어딘가에서


상반기 워크샵, 그리고 하반기 워크샵.

이번에는 부산으로 다녀왔다. 부산 출신들이 많고 이번에는 좀 멀리 가보자는 의견에...

하지만 나는 새벽 첫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야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고 그냥 술 마신 기억밖에 없구나. 술에 취한 채 탄 첫 기차.

부산에 도착하니, 밤이라 바다 사진 한 장 못 찍고 올라왔다.

그래서 대신 지난 여름 사진 한 장 올린다.


- 일본 후쿠오카 어딘가에서


시간은 흘러, 흘러 나도 내년이면 마흔이 된다.
기적 같은 일이다.
나이 마흔이 된다는 건. 그렇게 늙을 수 있다는 것은.




청년실업의 '착각'이다. 아주 가끔, 이런 좋은 노래를 만나기도 하는 마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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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았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밖으로 나가자, 먼저 만난 이는 도시를 흐르는 대기의 흐름이었다. 가을 아침 바람. 강남구청역 1번 출구. 내가 아침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곳. 이리저리 흔들리는 공기 틈새로 비가 내렸다. 하지만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굳어버린 중년의 감각 세포들.

거리는 어수선한 지난 밤 속을 헤매는 듯 보였고, 상기된 표정의 행인들은 가져온 우산을 힘없게 펼쳤다. 그 때 마침 문을 연 커피숍에선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참 멀리 걸었다. 걸으면서 낡은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 데이비드 린치, 스매싱 펌킨스의 EYE를 떠올렸다. 기억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향해 달려가고 ... 내 몸도 따라 휘말려 들었다.

여기는 어디지? 어디까지 걸어온(혹은 걸어간) 것일까? 기억은 길을 잃었고 의식은 희미해진다. 아주 길게.

커피숍에서 커피를 가지고 난 순간, 빌딩 지하 고급스러운 술집에서 나오는 젊은 여자와 그녀를 데리고 나오는 젊은 남자와 만났다. 그러자 테이크아웃 종이컵 위로 갈색 커피 향이 밀려들었다. 기억은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게, 추억은 고통스럽게 한다. 어느새 2011년도 채 네 달이 남지 않았고, 그렇게 내 삼 십대도 지나고 있다. 멀리 돌아온 커피 한 잔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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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플파란 2011.09.09 22:06 신고

    밤에 마시는 커피가.. 참.. 향이 좋아요..ㅎㅎ 이상하게 낮에 먹는 커피보다도..

    • 지하련 2011.09.10 08:03 신고

      저도 밤에 커피를 내려마셨는데, ... 요즘은 거의 마시질 않아요. 다음 날 출근이 힘들더라고요. ㅎㅎ.. 조용한 밤의 커피 향기 참 좋죠~. ^^


 




지금도 이럴까? 하긴 지금은 수도권-비수도권, 그리고 지역마다 지역 이기주의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한때 슬프고 비극적이었으나, 이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갈등을 해석하는 걸까.

영화는 유쾌하다. 작고 사소한 소재들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마치 즐거운 순정 만화 같다고 할까.또한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이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로 포지셔닝되었고, 성공한 듯 보인다.

그 뿐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를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들로만 모든 것들은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재미있지만, 그렇기에 씁쓸하기도 한 영화다. 그 두 지역의 갈등을 경험한 이들에게 있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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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잔뜩 술에 취해 들어와, 라이 쿠더의 '파리, 텍사스' OST를 들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으나, 슬픈 기분만은 어쩌지 못했다. 강해지려고 하지만, 늦가을 바람 앞에 나는 늘 맥없이 무너진다. 오랜만에 흔들리는 마음 한 자락을 느꼈으나, ... ... 나를 위로하는 건 늘, 낡고 오래된 LP와 일제 턴테이블이었다.

한동안 영화에 미쳐 살던 시절이 있었고 그 때 내가 사랑하는 몇몇 영화들 중의 하나,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조각난 가정에 대한 회복을 담고 있는 영화이지만, 내가 보는 건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정처없는 방황과 구원, 사랑했던 한 순간에 대한 추억들이었다.

추억, 어쩌면 그건 우리에 남은 마지막 위안거리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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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창동거리에서 어시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 동성동인가, 남성동 어디쯤 있었던 레코드점에 들어가 구한 음반이 쳇 베이커였다. 그게 94년 가을이거나 그 이듬해 봄이었을 게다. 그 때 우연히 구한 LP로 인해 나는 재즈에 빠져들고 있었고 수중에 조금의 돈이라도 들어오면 곧장 음반가게로 가선 음반을 사곤 했다.


어제 종일 쳇 베이커 시디를 틀어놓고 방 안을 뒹굴었다. 뒹굴거리면서 스물두 살이 되기 전 세 번 정도 손목을 그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치열함이라든가 진정성 같은 거라든가.


스무살 가득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탓일까. 아직까지 인생이 어떤 무늬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아무 것도 모르겠다. 문학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집트 예술가의 진정성과 현대 예술가의 진정성은 전적으로 다른 양식을 향해 간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내가 누군가에게 탓함을 당할 이유도 없다. 나라는 개별자만 있을 뿐, 보편적인 개념으로 날 구속할 순 없다.


그런데 이 얼마나 슬프고 기가 막힌 일인가. 내 삶의 가치나 의미 같은 건 순전히 내 속에서만 존재 가치를 가질 뿐, 이 건조한 도시의 거리에선 아무 가치도,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니.


누군가 내 옆에 누워 자기가 누렸던 사랑의 기억을 더듬기 위해 내 사랑의 흔적을 물었던 적이 있었던 것같다. 기억의 아련함. 그 때 내가 한 말은, 사랑은 지나가면 그저 잊혀질 뿐, 그걸 되새기기 위해, 그걸 되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 ...,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하긴 그 때 내 옆에 누워있던 그 이는 바로 떠나버렸고 그 이후 소식을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꿈이었던가, 아니면 내가 쓴 소설 속이었나.


과거는 중첩되어 쌓여져가고 가끔 내 마음 안 쪽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올 때만 되살아날 뿐이다. 그냥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뿐. ‘이제 네가 싫어졌어. 그 뿐이야’라고 말했던, 나에게 청혼했던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가끔 과거는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내 폐 깊숙한 곳의 H2O를 사라지게 한다. 금세 호흡곤란을 느끼며 자리에 눕는다. 그렇게 누워 남극의 얼음들처럼 천 년이고 만 년이고 그렇게 잠만 잤으면. 우리 인간이 아는 영원함이란 고작 몇 천 년이거나 몇 만 년 수준이다. 영원함이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상상적 개념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런 상상적 개념은 너무 많고 그런 개념에 목을 매는 꼴이라니.


당인리 발전소 안 길에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하지만 꽃향기는 내 몸에 닿지 못한 채 강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꽃을 입 안 가득 씹어 먹지 않는 한, 순결한 꽃향기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리고 말을 건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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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발전소 안의 벚꽃길


오늘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를 타고 행주대교 옆으로 들어가 강을 따라 올라갔다. 계속. 계속. 가양. 양화. 성산. 서강대교를 지나 여의도로 들어갔다. 여의도를 지나가 한강대교까지 올라갔다. 계속 올라가고 싶었다. 계속 올라가면 양수리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양수리를 지나 계속 올라가고 싶었다. 계속 오르고 오르면 내가 알지 못하는 그 곳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한강대교를 건너 동부이촌동으로 들어와 다시 김포공항 쪽으로 향했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쳐갔다. 한강을 보면서 오늘 산 자전거의 이름을 생각해냈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자전거를 ‘풍륜’이라고 부른다는데, 나는 내 자전거를 뭐라고 붙여야할까.


내 자전거의 이름은 ‘머저리’다. 너무 좋은 이름인 것 같다. 머저리. 머저리. 머저리. 이 세상도 머저리고 나도 머저리다.


다시 양화대교에서 강을 건너 행주대교 아래까지 왔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있었고 방화동으로 들어가기 전 강가 매점에서 맥주캔 하나를 먹었다. 바람에 내 다리가 흔들거렸다. 아, 머저리를 타면 바람에 흔들거릴 정도로 내 몸도 가벼워진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나면 일요일 밤도 자정을 향할 것이고 알게 모르게 월요일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가고, 하루가 가고, 그러다 보면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사소한 위안처럼 느껴지는 밤이다. 서글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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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동에서 나오면 있는 강서 한강시민공원. 한강 하구인지라, 좁은 물길을 따라 있는 바다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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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가양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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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앞 강물 위의 백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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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 내 인생의 카아~를 위한 캔 맥주 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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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난데없이 자전거 가게를 방문한 이에게 팔려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내 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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