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 로베르 브레송 지음, 오일환 외 옮김/동문선 |
너의 관객은 책의 독자도, 공연극의 관객도, 전시회의 관람객도, 콘서트의 청중도 아니다. 너는 그들의 문학적 안목과, 연극적 취향과 회화적 기호와, 음악적 센스의 욕구에 부응할 필요가 없다.(120쪽)
책은 얇고 문장들은 짧다. 로베르 브레송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긴 호흡 대신 짧은 입맞춤, 달콤한 향기보다는 스산한 조명빛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은 권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데이비드 린치의 (상대적으로 형편없는) '빨간 방'이 낫다. 적어도 '빨간 방'을 읽는다는 것은 트렌디한 어떤 삶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하며(서점에 깔린 '빨간 방'들을 본다면 린치가 이토록 인기가 많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트윈픽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요즘 유행타는 '미드'의 원조격이지 않은가) 창의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잊혀져가는 로베르 브레송의)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직까지 영화는 상업주의, 자본주의, 장르 시스템에 빨려들어가지 않았으며, 예술가, 혹은 예술가 집단의 영화로운 창조물이며, 현대의 마지막 예술 장르임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의 죽음과 세 번의 탄생에 대하여.
내 영화 작품은 처음에는 내 머릿속에서 태어나고, 시나리오 위에서 죽는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생생한 모델들과 실재 사물들에 의해서 부활한다. 그리고 다시 이것들은 촬영된 필름 위에서 죽는다. 그러나 편집이라는 어떤 순서 속에 자리잡아 배열되어 스크린 위에서 투사되면 물속의 꽃들처럼 다시 소생한다. (28쪽)
내 영화 작품은 처음에는 내 머릿속에서 태어나고, 시나리오 위에서 죽는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생생한 모델들과 실재 사물들에 의해서 부활한다. 그리고 다시 이것들은 촬영된 필름 위에서 죽는다. 그러나 편집이라는 어떤 순서 속에 자리잡아 배열되어 스크린 위에서 투사되면 물속의 꽃들처럼 다시 소생한다. (28쪽)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영화는 창조되어진다. '창조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실들을 변형하거나 발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사람들과 사실들 사이에, 그리고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새로운 관계들을 엮는 것'이다.(29쪽)
드뷔시는 뚜껑이 닫혀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 (62쪽)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닫혀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던 드뷔시를 잊어버렸다. 심지어 영화 감독들마저도!
영화는 돈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가, 창조되기도 전에 펀딩(funding) 문제로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영화는 예술의 위대한 전통에 먹칠을 하기 시작했으며, 당당하게 자신은 상품이지, 예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스타-시스템. 이것은 새로움과 예측 불허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드넓은 매혹의 힘을 무시하는 시스템이다. 이 작품이건 저 작품이건, 이 주제건 저 주제건 똑같은 얼굴들을 대면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126쪽)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위대한 시대착오을 향한 모험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움직이는 이미지들과 소리들을 가지고 하는 글쓰기'(시네마토그래프)를 향한, 현대의 마지막 예술 장르인 영화를 향한 사랑 고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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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브레송: 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person_info.php?id=9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