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역사 속의 종이부인 - 정종미 展

지하련 2009. 4. 25. 16:11


역사속의 종이부인 - 정종미展
2009년 2월 6일 ~ 2009년 3월 1일
금호미술관 


정종미, 황진이, 한지, 비단, 모시, 안료, 염료, 콩즙, 193.5×520cm, 2008, 부분



정종미를 떠오를 때면, 언제나 종이의 여성을 떠올린다. 종이와 여성은 그녀가 사용하는 소재이고 대상이다. 그녀는 종이를 직접 만들어,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다듬어 윤기나고 매끄럽게 만들며,  '그림의 바탕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이미지가 태어나게 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바르는 안료와 아교도 직접 만들고, 종이와 안료가 결합되어 종이와 ‘부인’이 하나가 되어 ‘종이 부인’이 태어나도록 콩즙도 만들어 수차례 올린다.' 이러한 고되고 반복된 작품 제작 과정은 마치 제의를 준비하고 시행하는, 일종의 주술적 과정처럼 느껴진다.

금호미술관 전관을 사용한, 지난 2월의 정종미 전시는, 한국의 여성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는가를 보여준 보기 드문 전시였다. 그것도 한국적인 느낌(지역적 독창성)을 살려내면서도, 지역의 역사와 정신에 근거하며, 역사의 소외된 존재들이면서 이 땅의 역사를 지탱해온 여성들을 담아내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러했다. 

그녀의 작품들은 마치 어두운 과거 속에서 걸어나온 영정들처럼 여겨졌고, 미술관은 아픈 과거와 흐릿한 현재, 아파할 것만 같은 미래와 뒤죽박죽된 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흩뜨려 놓았다.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채 죽은 역사 속의 여성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삶과 영혼을 어루만지며, 현재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인생을 기억시키게 만드는 정종미의 작품들은 현대 예술의 본질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제의성'에 충실했다.

미술관은 마치 죽은 이들을 모셔놓은 사당이 되었고, 관람객들은 자신이 의도하던, 하지 않던, 아픈 역사 속으로 걸어들어가, 이미 지나간 죽음과 앞으로 살아갈 삶의 중간 지점에서 서서, 과거의 여성과 현대의 여성을 서로 비교하며, 그녀들을 위로하게 된다.


그러나 몇몇 이들에겐 꽤 불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한결같이 슬픈 표정으로 서 있는 역사 속의 종이 부인들 앞에서, 현대의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의 삶도 그녀들처럼, 그렇게 될 지 모르는 막연하고 거대한 안타까움을 마주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정종미, 명성황후, 한지, 비단, 안료, 연료, 금분, 210×210cm, 2008


정종미, 유화부인, 한지, 비단, 안료, 염료, 469×182cm, 2008, 부분

정종미, 유화부인, 한지, 비단, 안료, 염료, 469×182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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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전시 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