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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Strolling Players
1793
Oil on tinplate, 43 x 32 cm
Museo del Prado, Madrid


고야의 작품은 언제나 흥미롭고 격조있지만, 비극적이고 끔찍한 우울과 절망을 가리고 있다. 몇 년 전(2004년 6월), 어딘가에 올렸던 글을 다시 여기에 옮긴다.
 

낭만주의 시대(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최고의 예술가는 "프란시스코 고야"다. 그는 계몽주의가 남긴 혁명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허무와 거짓된 역사를 뚜렷하게 목격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이야기하곤 하는 사랑이라든가 환상, 또는 매혹의 도피 따윈 다 허위이거나 기만이고, 도리어 그 세계 속에서조차 우리는 삶의 허무나 죽음,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자끄 루이 다비드와 동시대인이면서 다비드가 계몽주의 신념 속에서 자만과 오만의 성을 쌓았다면 고야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계몽주의 세계가 만들어놓은 거짓, 그리고 우리가 끝내는 굴복하고 말 어떤 허무와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고야의 세계를 느끼게 될 때 그 이후의 모든 낭만주의자들이 시시해지고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자들을 다시 보게 된다. (2004년 6월)


내가 스페인 마드리드를 가게 된다면, 아마 그것은 프라도 미술관 때문일 것이다. 여튼 이 짤막한 글을 올리고 난 다음, 아는 분의 긴 리플이 이어졌다. 여기에도 옮긴다. 미뇽님께선 어떻게 사시는지 무척 궁금하다. 건강하게 잘 계신지. 


미뇽 (2004/06/28 13:53)

프랑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비하여 서정성이 부각되고 주제에 있어서 다양화되면서 어떤 것도 주제가 될 수 있었지만 대부분 사랑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자기 목소리로 시를 쓸 수 있었겠죠.
그러나 위고를 비롯해서 역사성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독특하죠.
그래서 서사시에 대하여 높은 가치를 두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미술에서는 계몽주의와 대비가 되어 낭만주의가 상관관계 속에 놓임으로써 그 특징이 비교되는 것이 일반적인가 봐요. 문학에서 낭만주의는 보통 고전주의와의 대비 속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지하련 (
2004/06/28 13:54)

빅토르 위고는 '후기 낭만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진보에 대한 열정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이 때부터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논의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좀더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한 계급갈등. 도시의 급성장과 농촌의 피폐화. 자본주의 시스템 속으로 편입된 예술가의 지위에 대한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19세기 초의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은 18세기 계몽주의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곧바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특히 칸트에게서 두드러지는데, 칸트의 철학은 계몽주의이며 그의 미학은 낭만주의 미학입니다. 다른 관점으로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예술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도 마찬가지이구요.


미뇽 (2004/06/29 18:16)

초기 낭만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이라는 말은 개인의 해방과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혁명의 이념과 낭만주의의 모토가 같은 뿌리라는 말로 이해되며 그 점은 저도 동감을 해요. 그러나 초기 낭만주의의 경우 이상한 점은 혁명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프랑스 낭만주의의 경우에는요.
왜냐하면 혁명기의 격동은 도리어 18세기의 낭만주의 예고자인 루소가 대표적으로 보여 준 새로운 감수성의 맥을 끊어 놓았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복고주의가 대두하고 문학의 모든 쟝르에 있어서 옛 형식이 그대로 지배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나폴레옹의 정권은 신 고전주의의 틀 속에 문학을 가두어 두려고 했으니까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새로운 감수성의 작가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차라리 고립적, 예외적 존재들이었다할 수 있었어요. 이들(샤토브리앙, 스탈부인, 콩스탕, 세낭쿠르)을 소위 전기 낭만주의자들로 명명합니다.

지하련님이 위에서 지적하신 대로 고야에게서 초기 낭만주의 자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이들 모두가 18세기 이성이 약속해준 듯이 보였던 새로운 사회는 환상에 불과함을 인지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낭만주의는 크게 보수적, 진보적 낭만주의로 나누어지나, 이들의 고통된 점은 현실에 대한 혐오와 고전주의에 해단 반감으로 합결된다는 점에서 볼때, 외적으로는 대혁명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지만 내적으로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하련 (
2004/06/29 18:43)

흠. 제 리플에 오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군요.
19세기 낭만주의가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이라고 한 것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 속에서 낭만주의가 생겼다는 뜻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미뇽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는..)

프랑스 혁명의 귀결은 이성주의가 아니라 감정주의였으며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몽주의가 내세웠던 이성의 결과라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낭만주의는 반합리주의, 비이성주의라는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의 반발이라고 볼 수 있죠. 즉 혁명 실패에 대한 결과인 셈이죠.

제가 프랑스 대혁명이나 계몽주의를 이야기한 것은 19세기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두 계기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낭만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그 당시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혁명의 열기, 그리고 그 혁명이 가져다 준 절망감, 공포, 독재에 대해선 별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 속에 자신의 성을 쌓고 안주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의 경우 사태가 좀더 심각하여 독일이라는 나라에는 아예 혁명이 가능하지도 않는 곳이라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의 이러한 고립감은 더욱 심각했으며 이것이 독일 이상주의를 만들게 됩니다.
루소의 경우 18세기, 19세기 초반을 지배했던 인물입니다. 이는 루소라는 인물 자체가 서로 모순되는 점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루소에게서는 이성주의적 성격과 비이성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파악해낼 수 있습니다. 전자는 프랑스 혁명으로 연결되지만, 후자의 경우 로코코 양식이나 낭만주의 양식으로 연결됩니다. 미뇽님이 생각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고야의 경우에는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도피한 곳을 보여주면서 그 곳마저도 현실의 절망이나 비극, 삶의 허무가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야는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만큼 현대는 절망적인 인식을 하기 시작하는 시대이니깐요.

***
요즘 포스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집중할 시간이 없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다. 꽤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예전에 올렸던 글을 새로 올리면서 사소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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