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11월 29일 토요일

지하련 2009. 11. 29. 10:29


 

다이스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우메코의 어깨 너머 커튼 사이로 맑은 하늘을 기웃거리며 보고 있었다. 멀리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시야에 들어왔다. 옅은 갈색의 새 잎이 돋아나고 부드러운 나뭇가지 끝이 하늘과 맞닿은 곳은 이슬비에 젖은 것처럼 뿌옇게 흐려 있었다.
-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민음사), 48쪽~49쪽



그는 지난 주 내내 전날의 피로의 채 가시지 않은 직장인들이 빼곡히 들어찬 출근길 지하철 객차 안에서 서서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한 문단을 떠올렸다. 한 때 문장을 지어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꿈이었으나, 누군가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적는다는 것이 주제넘은 일이라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하지만 형편없는 글을 소설이라고 발표해대는 요즘 작가들의 글을 읽곤 암담해지는 기분은 어쩌질 못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오에 겐자부로, 아베 코보 이후로 그가 탐독하는 일본 작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 년에 읽는 소설은 고작 20권 남짓. 최대한 까다로워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책들이 쌓인 무채색 무늬 벽지로 덮인 벽 사이의 철제 샤시로 된 유리창을 연다. 안개가 자욱했다. 며칠 째 아침,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그를 제외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서, 그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듯한 미소를 안개 낀 도시 변두리에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그가 왜 그런 미소를 지었지는 알지 못한다. 실내는 안토니오 미켈란젤리가 연주하는 쇼팽의 피아노곡 소리로 가득했다. 그는 어제 직장 근처 빈하모니라는 커피집에서 사온 이디오피아 예가체프 원두로 드립커피를 해 마신다. 요리를 거의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씽크대는 요리 기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마치 언제든지 동거인이 생긴다면 바로 요리를 해줄 수 있다는 태세로 무장해있었다. 하지만 그 무장된 씽크대를 보고 있자면, 혼자 사는 남자의 지저분한 쓸쓸함밖에 보이지 않지만, 씽크대는 행복한 요리에 대한 상상에 취해 그 무장을 풀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몇 통의 메일을 확인하고 오늘 일정을 체크하는 그의 눈에 들어온 어제 기사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의 현대사는 아직도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음을 그는 쓸데없이 안타까워했다. 20세기 중반의 냉전시대와 국토개발 시대의 가치관으로 21세기 한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박수를 치고 동조하는 국민들을 보면서, 정치란 정보의 공유와 활발한 의사소통, 그리고 합리적 의사 결정의 과정이라기보다는 그럴싸한 이미지를 통한 설득과 감성적 공감 과정을 통한 일종의 고도화된 조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그에게 정치란 마치 뒷산 너머 남의 마을 이야기처럼 된 지 오래였다.

그러면서 아르마티아 센을 떠올렸다.


영미공리주의 이론가인 아마르티아 센이 지적하듯이, 평등은 사회구성에 관한 자유주의적 개념의 본질적 특성(모두에 대한 동등한 자유, 모두에 대한 동등한 고려)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유와 평등을 대립시키는 것은 인위적이고 부정확하다고 말한다. 자유는 평등의 적용가능한 영역 중 하나이며, 평등은 자유의 가능한 분배 양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장 피에르 크로스, ‘자유를 누린 평등한 가치 - 자코뱅이 추구한 현대적 가치’, 르몽드디플로마크 한국어판 9월호.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의 귀에 미켈란젤리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안토니오 미켈란젤리는 그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다. 비행기에 피아노를 들고 다녔던 미켈란젤리의 이야기는 다소 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가 연주에 임했던 태도는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형편없는 독자, 관객, 청중들을 비아냥거렸던 미켈란젤리...

실은 문화와 예술을 망가뜨리는 것은 형편없는 대중들이고 그리고 그 대중들의 눈높이에 어떻게든 맞추려고 하는 일군의 재능 없고 덜 떨어진 작가들과 예술가들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에는 비평가들이나 철학 저술가들까지도 그런다는 점을 심히 염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