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후기 마르크스주의

지하련 2009. 12. 26. 01:57

후기 마르크스주의 - 8점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한길사


후기마르크스주의 Late Marxism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 한길그레이트북스


몇 달 전에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서평을 쓰지 못했다. 딱딱하고 압축적이며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이론서를 읽기에는, 내 독서 태도가 성실하지 못했다. 어떻게 겨우겨우 완독하기는 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아도르노에 대한 편애로 가득 찬 프레드릭 제임슨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속하지만, 아도르노는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벤야민에게서 영향 받았겠지만, 실은 벤야민의 독특함 이상이다. 벤야민에 대한 이상한 선호(대중적 인기)로 인해, 아도르노는 종종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견해대로) 포스트모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이론가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산업을 이야기했지만, 문화산업이 가지는 독특함보다는 고전(클래식)문화에 기대어 미국식 문화산업이 가지는 폐해와 악덕 때문이었고, 재즈는 경멸했고,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적 문화 코드와는 거리가 먼 이론가였다. 하지만 프레드릭 제임슨은 아도르노에게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마르크스주의를 끄집어낸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해석을 그는 한 권의 책을 엮어낸 것이다. 책은 아도르노의 거의 모든 저서들을 오간다. 또한 철학, 사회학, 문학을 오가며, 아도르노의 사유가 가지는 성격과 현대 사상과의 유사성,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속에서 아도르노가 가지는 중요성을 언급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 우세종이라는 강력한 의미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아도르노의 중요성은 차라리 그의 사회학적 내지는 철학적 비판 속에 있을 것이다. 사실 아도르노가 실증주의라고 부른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르는 것으로서,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좀더 초보적인 단계가 실증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재현의 문제이다. (중략) 비록 모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총체성은 존재할 지 모르지만 인식될 수도 묘사될 수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 총체성을 재현하는 것이다. 변증법이란 - 부정변증법 같이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는 변증법일지라도 -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작업인, 이 원의 전체 넓이를 구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읽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두께도 두께지만, 아도르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읽기 어렵다. 또한 프레드릭 제임슨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도르노임을 명심해야 한다. 즉 (프레드릭 제임슨의 편파적인 시각에서의) 후기마르크스주의자 아도르노에 대한 비판적 해설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기에 이 책을 손에 들 이가 있기라도 한 걸까. 나 또한 ‘후기마르크스주의’라는 책제목에 이끌려 구입했지만 말이다.

현대 철학의 관점에서 재현이나 총체성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약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부생에겐 어려운 책이고 대학원생에게나 적당하다. (이 책을 읽은 나는 뭔가… 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