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서재 정리를 하면서 방바닥에 뒹구는 시집 한 권을 펼쳐 들어, 몇 편 읽었다.
광고판이 붙은 버스
운전사는 왕, 뽕짝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달린다, 폭군처럼 달려간다. 브레이크를 느닷없이, 계엄령처럼 다급히 밟을 때마다
거꾸로 내리박히고 나뒹굴고 엎어져 기지 않으려고, 무수한 나는, 무수한 중심을, 무수한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선채로 흔들리는 객(客)들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다음은 고목나무 앞입니다’ 그 다음은 망우리묘지 종점입니다, 라고 스피커가 앵무새 소리로, 늙음 뒤 뼈의 길과 망우(忘憂)의 길을 종알거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벌써 긴 세월을 새우처럼 갇힌 채 호송돼 온 느낌이었다.
그러자 새우깡 광고판이 붙은 버스가, 황혼에 물든 큰 거품 속으로, 속력을 내며 굴러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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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도시의 즐거움 - 최승호 지음/세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