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메를로 퐁티

지하련 2011. 5. 8. 09:24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 책세상


1.
1년 전의 메모를 꺼내 읽는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두 세 번 읽어야 할 책이었으나, 한 번 읽었고 읽은 것을 정리하다가 그만 두었다. 결국 그 정리는 포기하고 읽은 지 1년 만에 간단하게 읽은 바를 적어본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로, 현상학에 있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특히 그의 예술론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는 그 메모의 일부분이다. 내가 쓴 것보다 인용한 것이 많다. 원래는 더 많았다. 퐁티의 글이 짧고 압축된 것이라, 어설픈 리뷰도, 상세한 설명도 어려웠다.

2.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다는 것, 느낀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의식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의식은 내가 경험한 세계를 다만 정리하고 배치해서 ‘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의식하기에 앞서서 세계에의 체험과 감각이 있고 우리의 실존은 ‘생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이며, 매순간적인 체험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서서 이미 존재하는 세계 속에 사는 ‘나’는 의식과 반성의 결과로 나타난 의미와 관념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정확한 범위 내에 이루어지는 ‘학문의 세계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세계 속의 ‘나’는 바로 신체를 가진 나로서, 몸 전체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메를로 퐁티는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순수 의식 대신에 신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체적 실존을 말하며, 신체가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세계를 ‘지각된 세계’라고 부른다.
신체는 감각을 통해서 외부에 있는 것들을 지각하고 세계와 교류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에 따르면 신체는 세계를 향한 통로이며, 지각은 곧 세계와의 소통 방식이다.
- '철학 용어 용례 사전', 박해용, 심옥숙 지음, 돌기둥출판사, 2004. 176-177.



3.
책에서 몇 문장을 옮긴다.

사유라는 것은, 사유에 적합한 단어를 찾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문장이 옮기려고 애쓰는 일종의 관념적인 텍스트로 존재하고 있다. (23쪽)

언어는 기호와 의미 간의 대조표를 전제하지 않고 세상의 어린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비밀들을 드러내어 가르쳐주는, 완전한 드러냄monstration이다. 언어의 애매함, 집요한 자기 지시, 스스로를 향한 방향 전환과 회귀 등은 언어에 정신적인 힘을 불어넣어준다. 언어는 차례로 사물을 의미로 바꾼 후, 그 안에 사물이 머물 수 있도록 하나의 우주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표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될 것이고, 결국 모든 언어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소위 침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25쪽)

왜냐하면 기호는 자신의 의미가 드러남과 동시에 사라질 것이고, 사유는 사유들 - 기호를 통해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유와, 지극히 명확한 언어로 형성하려는 사유 - 외에는 다른 어떤 것과도 만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6쪽)

회화처럼 인간과 세계와의 생생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를 무언으로 표현하고, 수많은 해석을 내포해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지 못하는 침묵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19쪽)



4.

이 짧은 책은 퐁티 철학에 대한 충분한 개론서이면서 퐁티의 예술론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한 번 읽기에는 부적합한 책이었으며, 두 세 번 읽고 노트해야 하는 책이었다.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 10점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