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중세의 가을, 호이징가

지하련 2011. 5. 14. 09:55


중세의 가을
요한 호이징가 (지음), 최홍숙(옮김)
문학과 지성사



책을 다 읽은 지 몇 달이 지났고, 그 사이 여러 번 책을 꺼내 읽으며 노트를 했지만, 쉽게 소개 글은 씌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때였으니, 나는 거의 십 년 넘게 이 책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완독하지 못했다. 자끄 르 고프의 ‘서양중세문명’을 금방 완독한 것과 비교한다면, 이 책에 대한 내 느린 독서는 다소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책은 두툼하고 활자는 작으며 문장은 길다. 제 1장의 제목은 ‘삶의 쓰라림’이고 이렇게 시작된다.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더 젊었을 때, 삶에 일어난 많은 일들은 지금과 현저히 다른 모습과 윤곽을 띠고 있었다. 불행에서 행복까지의 거리도 훨씬 멀게 여겨졌고, 모든 경험은 기쁨과 고통이 어린 아이의 정신 속에서 갖는 것 같은 그런 즉각적이고도 절대적인 강도를 띠었다. 매 행동과 매 사건들은 언제나 일정한 의미를 갖는 형식에 둘러싸여졌고, 또 그 형식들은 거의 의식의 높이에까지 올려졌다. 탄생과 결혼과 죽음 등의 주요 사건들은 성례를 통해 신비의 후광을 띠었고, 여행, 직무, 방문 같은 대단치 않은 사건들조차도 강복식이니 의례니 서식 따위를 동반하였다. - 11쪽



현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중세 시대의 여행에 대해 단단히 각오하라는 어투다. 그런데 이 주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대로 드러난다. 라틴어와 병기되는 무수한 인용구, 사례, 문헌들. 우리와는 다른 시대, 다른 사고, 다른 종교 아래에서의 삶, 일상, 문화와 예술은 슬프고 기묘하며 어딘가에선 현대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하였다.

“신에게 있어서는 의미 없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nihil cavum neque sine signo apud Deum”

절정기 중세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로 가는 길목의 이정표와도 같은 이 책의 저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ga(1872~1945)는 문화사, 혹은 예술사가 시작되었던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최고의 학자이자, 현재까지 중세 문화사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의 이 ‘중세의 가을’은 중세 후기 유럽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이자, 현대인들이 종종 부딪히는 심리적 갈등이나 병적이고 경련적인 마음이 어떤 배경 위에 이루어져 있는가를 파악하는 우회로와도 같다.

이 책은 역사, 특히 문화와 예술에 집중된 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중세에 대해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연구자들이 늘어나 마치 중세 연구의 부흥기처럼 여겨진 20세기 후반에도 이 책의 명성이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더해진 것도 문화사 연구에 있어 호이징가의 탁월한 식견과 통찰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시대 전체가 보다 아름다운 삶을 열망한다. 현재가 어둡고 혼란스러울수록 그 같은 열망은 더욱 더 깊은 바람을 띠게 마련이다. 중세 말의 삶은 침울한 멜랑콜리로 가득 차 있다. - 40쪽


 

열렬하고 격하며, 냉혹하면서도 동정적이며, 세계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또 세계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이 시대의 정신은 엄격한 형식주의를 필요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같은 감동들은 관례적 형태라는 엄격한 틀 속에 당겨져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 생활 역시 그 같은 방식으로 배열되었다. 삶의 사건들은 아름다운 광경이 되었고, 고통과 기쁨 역시 비장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입혀지고 단장되었다. 감동을 표현하는 수단에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감정은 단지 그 미적 표현에 의해서만 그 시대가 열망하던 그 높은 단계의 표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 60쪽



 

삶의 이상으로서 기사도의 개념은 매우 특수한 성격을 띤다. 본질상 그것은 환상과 영웅적 감동에서 나온, 그러나 외관에 있어서는 윤리적 이상을 담당한 하나의 미학적 이상이었다. 중세적 사고는 기사도의 개념을 종교와 미덕에 결부시키면서만 그 기사도적 개념에 귀족적 위치를 부여할 수 있었다. - 83쪽



중세 초기의, 신흥 종교에 대한 열렬한 믿음과 열정, 그리고 그것이 반영된 여러 종교 의식들은 이제 형식으로만 남아 종교를 지탱할 뿐이다. 그리고 그와 대비되어 변하지 않고 도리어 피폐해지는 삶의 조건들. 신앙의 힘, 기도의 힘 대신 보다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행동들이 삶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 정신은 그 변화 속에서 길을 잃곤 한다. 이것이 중세 후기 대다수 민중의 삶이었다. 미학적 형식주의에의 경도는 그 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고딕만의 해결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학적 표현으로 경도되던 형식주의적 세계 속에서도 생의 실존적 물음은 절대 사라지는 법이 없다.

쇠퇴기의 중세만큼 그렇게 죽음에 대한 생각에 큰 강조와 감동을 부여한 시대는 달리 없었다. 그 시대에는 끊임없이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는 호소가 메아리친다. - 166쪽



가령 이런 표현은 현대인들에게 어떤 기분이 들게 할까?

“여자는 음란과 악취 속에서 아이를 배며, 슬픔과 고통 속에 아이를 낳고, 번뇌와 노동으로 아이를 키우며, 탄식과 공포로 늙어간다. Concipit mulier cum immunditia et fetore, parit cum tristitia et dolore, nutrit cum angustia et labore, custodit cum instantia et timore” - 170쪽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신앙의 기운이 깃든다. ‘정신적인 양극 사이의 긴장’, 즉 ‘위선과 텅 빈 편협한 신앙’이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15세기 사람들은 늘 근엄한 신앙에 기괴한 허식에의 애호를 결합시킨다.’

이런 이유로 중세는 종종 현대의 우리에게 낯설고 기괴하며 불가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정신적인 사랑은 쉽사리 단순하고 순전한 육체적 사랑으로 전락한다 Amor spiritualis facile labitur in nudum carnalem amorem”. 이는 단순하고 순전한 육체적 사랑에 대한 교회의 관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성스러운 사랑을 대상으로 한 지극히 관능적인 환상을 용인하는 것이다. 마치 바로크처럼.

상징주의는 직관에 의해 예감되고, 음악이 우리에게 밝혀주는 것과 유사한 관계들의 불완전한 표현이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Videmus nunc per speculum in aenigmate” 사람들은 하나의 수수께기에 직면해 있다고 의식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형상들을 분별하려고 애썼고, 이 형상들은 다른 이미지들을 수단으로 해서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상징주의는 창조라는 거울에 마주 세울 수 있는 제 2의 거울과도 같았다. 모든 개념은 조형적이거나 회화적이 되었다. 세계의 표현은 달빛 아래 선 성당의 고요함에 도달했고 거기서 사고는 잠들 수 있었다.  - 260쪽

 

호이징가는 중세의 종교 생활, 세속 영역의 확장, 사랑의 방식, 이미지와 상징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한다. 실은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책을 읽을수록 책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채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마치 고딕 성당의 스태인드 글라스에 비친 햇살처럼.


중세의 가을 - 10점
요한 호이징가 지음, 최홍숙 옮김/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