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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쯤 적어놓은 서평이다. 이 서평을 다시 꺼내 읽어보니, 안타깝게도 내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형편없어지고 있는 것같다. 그만큼 인문학 공부는 뒤로 밀리고 회사 일에 쫓겨 글쓰기나 인문학 공부에 게을러진 탓이리라. 자고로 인문학 공부는 오래 시간 책상에 앉아, 많은 것들을 되새김질해야 되는 법. 그래야만 어렴풋하게나마 뭔가 건질 수 있다.
'역사를 위한 변명'은 현대 역사학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고전이다(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가지고 있는 약점들을 마르크 블로크의 이 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란 어떤 것인지 마르크 블로크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인문학 공부를 하고 있다면, 혹은 관심에 두고 있다면 이 책은 필독서이다.
역사를 위한 변명
마르크 블로크(지음), 한길사
1. 인문학 공부
하버마스를 읽고 있었을 때, 사회학 석사 과정에 있는 이가 날 보더니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와 비슷하게 마르크 블로크의 이 책을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전공이 졸지에 역사학도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버마스의 책이나 마르크 블로크의 책을 읽는 것은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로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을 전공하면서 소설책이나 시집, 되먹지 못한 비평서만 읽는 이들을 경멸하듯이 철학을 전공하면서 철학책만 읽는 이들을 경멸한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어떤 통찰력을 가지려고 할 때, 손에 닿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역사책이다. 문학과 철학을 지나 도달하게 되는 학문의 영역이 바로 역사다. 그리고 이 책, '역사를 위한 변명'은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탐구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2. 아날학파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를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인간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당시 사회, 또는 시대의 기반을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루터, 칼뱅, 로욜라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틀림없이 과거의 인간이고 16세기를 살았던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 사람들을 이해하고 다른 이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역사가는 그 시대의 상황으로 돌아가 당시의 정신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어, 우리 시대와는 다른 의식의 문제에 직면해야만 한다.
- 70쪽~71쪽
- 70쪽~71쪽
그 당시의 분위기에 젖어들기 위해 역사학자는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까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고 이것들의 진위여부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건들까지 추론해내어야 한다.
마르크 블로크는 프랑스의 역사학파인 아날학파의 제 1세대 학자이다. 아날학파는 일상사에 집중하기 시작한 최초의 역사학파이다. 그들의 목적은 거대한 정치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영웅을 중심으로 기술되는 역사학의 허점을 비판하고 우리들의 이름 없는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위적인 시간 구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항구적인 어떤 것을 뜻한다.
3. 역사 연구 방법의 필요성
현대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이 책을 먼저 읽어둘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바대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어떤 본질적인 성격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역사학의 정의, 연구 방법, 목적, 쓸모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우리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와 연관되어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