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하련 2011. 5. 1. 11:15


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지음), 오정미(옮김), 플래닛


오래, 이 책을 잡고 놓지 못했다. 아는 이(나는 이 분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에게서 소개받은 이 책은, 역시 나보코프라는 찬사를 지나, 작은 기억, 혹은 그 흔적에서 시작되어 재구성되고, 형상화되며, 눈 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생생함, 그리고 그 뒤에 표현되는 숨겨진 의미와 고백, 또는 독백으로 이루어져, 문장은 느리게 읽히고, 자주 호흡을 가다듬게 만들었다. 그래, 이 책은 내 놀라움과 동경으로 축조된 오래된 성(城)과 같았다.


요람은 심연 위에서 흔들거린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건대, 우리는 단지 영원이라는 두 어둠 사이 잠시 갈라진 틈을 통해 새어나오는 빛과 같은 존재다.(19쪽)



나보코프는 러시아 태생으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난 고국을 뒤로 하고 유럽과 미국을 떠돌다 스위스 로잔에서 자신의 생을 내려놓는다. 무명의 시절을 보낸 이 언어의 천재는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써, 20세기 후반 영미문학사에서 최고의 소설가로 인정받았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의 문장은 10대 소녀와 사랑에 빠진 가여운 험버트를 순수한 사랑의 노예로 변호하였다.

‘말하라 기억이여’는 그런 나보코프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시간은 뒤섞이고 기억의 한계 속에서 언어는 창백한 별빛 아래에서 슬픈 표정을 짓는다.


누군가 음악에 대해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하지만 침묵 역시 아름다울 수 있겠죠’라며 거품을 물었다. “뭐, 어느 날 저녁, 알프스의 황량한 골짜기에서 정말로 침묵을 들었거든요.” 이와 같이 그녀가 돌발적인 발언들을 하거나 특히 심해지는 귀먹음 증상으로 인해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답할 때면 고통스러운 침묵이 생겨났고, 누구도 기운차게 이야기의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없었다. (140쪽)



과연 자서전일까. 나보코프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의 문학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가치판단’을 배제한다. 그는 보여줄 뿐이다. 각각의 챕터는 서로 연결고리가 없다.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마치 아무런 관련 없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한,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진 단편 영화 여러 편을 읽는 기분을 선사한다. 그러나 나보코프는 그 어느 화가보다도 뛰어나게 표현하고 사건의 세부적인 영역, 인물의 사소한 습관까지 드러내면서 자신의 기억, 추억과 연결 짓는다.


박물관과 영화관에 들어갈 수는 없고 아직 밤이 되기엔 일렀을 때, 우린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가장 수척하고 불가해한 도시의 황량함을 탐험하게 되었다. 고독한 거리의 등은 우리의 눈썹에 붙은 얼음 조각들의 습기로 인해 무지갯빛 등뼈를 지닌 바다 생물체로 변신했다. 광활한 광장을 가로질러 갈 때면, 어디선가 갑작스레 소리도 없이 나타난 다양한 건축학의 환영들이 우리 앞에 솟아올랐다. 우리는 대개 높이가 아닌 깊이와 관련하여 차가운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즉, 우리의 발을 향해 열려 있는 심연에 관한 것이었다. (289쪽)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에서부터 끝나는지 이 책 속에서는 알 수 없다. 기억이란 시간의 압축이자, 시간의 병렬적 구성이다. 현재는 순서대로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순간을 지나쳐 기억의 혼돈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인과적 배열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하나가 아니면 둘이고 있었거나 아예 없던 것이다. 자서전이란 그런 것이다. 있지만, 없는 것이므로, 현재의 순간, 글을 쓰는 순간 순간마다 재창조되는 책이 자서전이다. 기억에 의존해 씌어지지만, 기억은 시간과 공간의 상상적 파편이고 단지 영혼 속에 존재하는 상상체이다. 그래서 나보코프는 ‘말하라, 기억이여’라고 이름 붙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지난 과거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세계 속으로 진입했음을 깨달았다. 나보코프와 같은 위대한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내 철없는 상상력과 빈약한 인내력의 언어들, 무책임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내 인생은 어떤 낭떠러지 앞에서 밀렸고 그 때의 시도란, 망각과 포기다. 아니면 모든 지나간 것들을 상상의 기억 속에 밀어 넣고, 그 입구를 또 다른 세계의 표지로 닫는 것이든가.

책 표지를 덮지만, 책은 끝나는 법이 없다.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나보코프는, 내가 가게 될 그 세상 어딘가에 앉아 자신의 언어로 아름다운 마법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화려한 날개를 자랑하는 나비들과 함께.


꿈 속에서 죽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늘 조용히 근심스럽고 이상하게 침울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모습은 다정하고 밝았던 그들 본래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나는 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 친구의 집 같은 곳, 그들이 생전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놀라지도 않으며 그들을 알아본다. 그들은 마치 죽음이라는 것이 어두운 흔적 내지는 부끄러운 가족의 비밀이라도 되는 양, 얼굴을 찌푸린 채 서로에게서 떨어져 마루에 앉아 있다. 죽을 운명의 자가 돛대로부터, 과거로부터, 제 성벽의 탑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 볼 수 있는 때는, 분명 이 같은 꿈 속이 아니라 그가 완전히 깨어있는 순간이다. 이는 강건한 기쁨과 성취의 순간으로, 그는 의식의 가장 높은 테라스와도 같은 장소에 존재하고 있다. 비록 안개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을지언정, 어떻게든 바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더 없이 행복한 느낌이 그 곳에 있다. (58쪽)

 

말하라, 기억이여 - 10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오정미 옮김/플래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