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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지금, 경계선에서 Watchman’s Rattle
레베카 코스타 Rebecca Costa 지음, 장세현 옮김, 쌤앤파커스
http://www.rebeccacosta.com/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미 설명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문명 붕괴의 패턴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슈퍼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하고, 벤처자본 모델을 이용한 완화책의 실시로 시간을 벌고, 우리의 두뇌를 활용하여 침체되어 가는 인식 능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인식 한계점에 대응하여 자연이 준 해결책인 통찰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신경과학은 장차 현대인의 생존을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다. (362쪽)



책의 후반부는 다소 실망스럽다. 이 실망스러움은 책 끝에 붙은 저명 인사들의 찬사로 인해 더욱 커진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통찰의 힘’이 해결책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재미없거나 읽을 가치가 없거나 한 것은 아니다. 책의 전반부, 현대 문명이 마주한 거대한 위기에 대한 풍부한 사례와 분석에 비해 책의 후반부 서술은 너무 작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서술이 우리, 현대 인류가 마주한 운명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어림짐작으로 볼 때, 유기체가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유기체의 복잡성이 환경(모든 규모의 환경)의 복잡성과 대등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 야니어 바-얌(Yaneer Bar-Yam) <Making Things Work> 중에서 (29쪽)



문명 붕괴의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안정적인 생산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작은 마을은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제법 큰 도시가 되고, 작은 국가가 된다. 그리고 이 작은 국가는 거대한 제국이 된다. 이러한 성장과 함께 동시에 성장하는 것이 ‘복잡성’이다. 작은 마을에서는 도난 사건이 생기더라도 누가 훔쳐갔는지 금세 밝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큰 도시에서는? 이러자 도난 사건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사람이 필요해진다. 작은 마을일 때는 우물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 도시가 되면 수로를 만들어야 하고 식수와 오수를 구분해 처리해야 한다. 인구 100만의 도시 로마에서 하루에 나오는 쓰레기의 양을 계산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이 쓰레기를 치워야만 도시가 운영된다. 이렇게 복잡해진 도시에서 생기는 문제도 복잡한 해결 방법을 거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제들에 대한 해결 능력이 정체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서 두 손 두 발 놓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제 해결 대신 마야인들이 취한 조치는 인식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모든 위대한 문명에서 나타나는 바로 그것이었다. 즉, 그들은 위험한 문제들을 다음 세대로 전가하는 길을 택했고, 이에 따라 문제는 점점 더 방대하고 위태로워졌다. (39쪽)


어떤 문명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동안 문제 해결에 동원되었던 지식과 지성은 뒤로 밀리고 믿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믿음은 ‘길러지는 것nurture’가 아닌 ‘타고 나는 것nature’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 욕구의 대상이다. 그리고 인류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을 때 사실 대신 믿음을 택한다. (41쪽) 복잡성으로 인해 지식 입수가 불가능해지면 그때부터는 불가피하게 믿음에 의존하게 된다. (43쪽)


로마 후기 율리아누스 황제가 마주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교회에서는 배교자로 공격하며 진실된 신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가혹한 이교도로 이야기하는 율리아누스 황제가 보았던 로마의 상황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너무 손쉽게 믿음을 택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갈릴리 사람들(기독교도)이 믿는 것이 이 지상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황제로서 실증해보고 싶네. 그들이 말하는 칭찬할 만한 가르침, 그들은 그것을 가난한 사람한테만 허용하고 게다가 천국에서만 달성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그 미덕과 행복은 현세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제위에 있는 동안 정착시키고자 하는 공정한 통치를 통해, 그리고 종교와 관계없는 복지 사업을 통해 달성하고 싶다고 굳게 결심하고 있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4권 중에서)



다시 말해서 현대 문명도 후기 로마처럼 그렇게 몰락해갈 수 있다는 것은 현대의 교회들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인류의 성패는 기술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기술이 있어요. 그건 쉬운 일이지요.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 이게 훨씬 더 어렵습니다. - 딘 케이먼(Dean Kamen) (91쪽)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쪽으로든 정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마음은 아무 것도 믿지 않느니 차라리 거짓이라도 믿는 쪽을 택한다 - 장 자크 루소 (99쪽)



저자는 복잡한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르면, 선택하게 되는 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한다. 이 믿음이란 종교적인 믿음(신앙)도 포함되지만, 그것 이상의 어떤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슈퍼밈이라고 한다. 원래 밈Meme이란 ‘문화적 전달 혹은 모방 단위’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등장한 단어이다. 레베카 코스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슈퍼밈을 제안하는데, 이는 이드-에고-슈퍼에고로 이어지는 프로이드의 체계를 옮긴 것이다.


슈퍼밈은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널리 만연하여 다른 모든 믿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억압을 가하는 모든 종류의 믿음, 생각, 행동을 가리킨다. (97쪽)



사람들이 지식과 지성을 이용한 적극적인 문제 해결 대신 택하게 되는 태도를 슈퍼밈이라고 말하며 저자는 대표적인 슈퍼밈 다섯 가지를 설명한다.

첫 번째 장벽, 불합리한 반대 - 자유 선택이라는 환상이 부른 반대의 수렁

이 챕터를 읽고 난 다음, 불합리한 반대가 전세계적 트렌드임을 확인했다. 교도소를 건설하지 못하는 미국의 사례처럼 한국에서는 화장 시설을 건립하지 못한다. 모든 이들이 죽은 이를 묻을 땅이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공감하면서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장례 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극렬히 반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내놓으라면 그 어떤 해결책도 없다. 아파트 단지에 임대 아파트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레베카 코스타에 따르면, 이는 지역 이기주의를 넘어서, 우리 문명 전체를 멸망을 이끄는 하나의 태도다.

두 번째 장벽, 책임의 개인화 -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시스템의 문제

장례 시설을 짓지 못해 죽은 이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 때부터 지식과 지성을 활용해서 문제 해결에 뛰어들까? 레베카 코스타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 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희생양 개인’이다. 아마 장례 시설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부서의 장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 그 자리에서 떠나거나 감옥에 들어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해결책은 현대 사회 전반을 만연해 있다.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흥미롭지 않은가.

책에서는 ‘비만’을 사례로 들고 있다. 비만, 즉 사회 시스템의 문제인데, 이를 개인의 인내심이나 의지 부족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 마켓데이터Marketdata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력구제 산업은 2000년 이래로 매년 10퍼센트씩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는 그 규모가 미국에서만 8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해마다 80억 달러를 쓰고 있는 셈이다. (159쪽)


 

한 문명이 인식 한계점에 도달하여 문제의 복잡성이 인식 능력을 넘어서면, 곤란한 사회적 문제를 바로잡을 책임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전가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시스템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각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간편한 길을 택하기가 쉽다. 그 결과, 비만, 우울증, 중독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은 각자 스스로 극복해야 할 개인적 시련으로 다시 포장된다. (159쪽)



세 번째 장벽, 거짓 상관관계 - 우리가 진실이라 알아온 상관관계의 오류


유럽 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하루에 15회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십대 청소년은 전화를 조금만 쓰는 청소년보다 잠드는 데,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184쪽)



그런데 휴대전화와 수면 장애의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휴대 전화 사용 단속에 들어갔다. ‘이렇듯 거짓 상관관계는 허구와 사실, 단순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는 일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결국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개인, 가족, 학교, 리더, 국가에 혼란과 고난을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너무도 성급하게 상관관계를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인다.’(185쪽)


네 번째 장벽, 사일로식 사고 - 고립된 사일로들이 만드는 오류


나사NASA에서 획기적인 태양열 발전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부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환경 관련 자료를 학계와 공유하려다가 비난을 받았던 CIA와 마찬가지로, 무공해 에너지 개발 역시 나사의 공식 임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것을 “부적절한 임무 확대”로 본 에너지부는 나사를 비난하며 우주 개발이나 충실히 하라고 지시했다. 나사 과학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에너지와 우주 연구 사이에 놓인 사일로의 벽을 돌파할 수 없었다. 한편, 에너지부와 청정기술Cleantech 벤처 자본가들은 나사가 개발하여 이미 실험실 내에서 효과까지 입증한 태양열 발전보다 훨씬 못한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223쪽)


다섯 번째 장벽, 극단의 경제학 - 경제우선주의에만 매몰되는 오류


“경제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어”라는 에드먼드 윌슨의 표현만큼 적절한 것이 있을까?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는 인류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무수한 많은 기술들이 채택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다. 이는 기술뿐만 아니다. 북반구에서 너무 많이 생산되어 버려지는 음식물들이 남반구에 전달된다면? ‘21세기에 타당성을 판단하는 가장 강력한 척도는 분명 수익성이다’(234쪽)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기업가적 혁신을 부추기는 그 경제적 인센티브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발견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더욱 복잡해지고 시스템적이고 세계적인 것이 되어감에 따라, 손익계산은 다소 무의미한 일이 된다. (235쪽)

저자는 다섯 가지 장벽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슈퍼밈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야 된다고 역설한다.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지 아니면 낙관적인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제 대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한 지식을 접한 다음에도 비관적이지 않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을, 가난한 이들의 삶을 다시 일으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만난 다음에도 낙관적이지 않다면 여러분의 맥박은 뛰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세상 곳곳에서 본 것은 이 세상의 우아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 절망과 권력, 수많은 어려움과 맞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폴 호켄Paul Hawken (273쪽에서 인용)


책은 신경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뇌의 활동, 그리고 통찰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된다고 하면서 끝맺는다. 이미 서두에서 이야기했듯 이 결말이 다소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흥미진진하고 현대 문명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저자가 제시하는 슈퍼밈은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선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절망적인 기분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제법 괜찮은 책임에 분명하다.


저자 인터뷰: http://earthsky.org/human-world/rebecca-costa-on-thinking-our-way-out-of-extinction 



지금, 경계선에서 - 10점
레베카 코스타 지음, 장세현 옮김/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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