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리스(Jean Rhys),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ld Sargasso Sea)
윤정길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38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소설은 짧고,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맥이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마치 19세기 에밀 졸라의 실험소설들과 20세기 초 의식의 흐름 소설을 묶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풍경을 뒤로 하여 감수성 예민한 미모의 여성과 예의 바른 신사의, 사랑 없는 결혼에 대한, 밋밋한 풍경화인 이 소설은 앙투아네트의 인생 속으로 끼어든 로체스터를 통해 식민 시대의 폭력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시대에 대한 통찰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여자와 남자의 설득력 없는 독백들과 서정적인 식민 풍경 묘사가 전부다. 이 독백들은 의식의 흐름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한계는 무엇인가. 실은 이 시대의 식민지 태생의 여성과 본토 출신의 남성 간의 결혼이 야기하는 문제는 이 소설이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니 스토리의 특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별하게 부각되어야 할 것은 왜 그들은 서로 마음의 문을 닫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게 되는가에 맞추어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설 후반부에 급박하게 전개되는 여러 독백들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에밀 졸라가 어떤 특정한 환경(실험실) 속에 인물들(실험소재)를 집어넣어 현실 비판적이며, 시대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였다면, 진 리스는 제국주의 시대가 무너져가고 노예가 해방되고 흑인과 백인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던 어느 시대에(실험실), 뭇 남성들이 좋아할, 재산이 있는 미모의 여성을 등장시키고, 그 당시 평범한, 예의바른 영국 신사와의 결혼이라는 사건(실험소재와 실험 내용)을 통해 시대의 본질 따윈 드러낼 시도 따윈 하지 않고(안타깝게도 그건 진 리스를 둘러싼 여성주의 비평가들의 몫인 듯), 조이스나 울프에서 영향받은 의식의 흐름을 구사하려고 하였으나, 변덕스럽고 급작스러운 감정 변화와 현실감 떨어지는 갈등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인기 많았던 어느 여성 소설가의 시대 비판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반 독자에게 권할 만한, 그래서 고전으로 남을 그런 소설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