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지하련 2012. 2. 26. 15:21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독일적 샤머니즘, 주술적 작업, 과감하고도 단호한 정치적 참여. ... 이 정도의 표현이 나오면 안젤름 키퍼가 요셉 보이스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1970년대 요셉 보이스와 함께 했다. 안젤름 키퍼. 그의 작업은 매우 정치적이고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 그의 작품이 가진 정치성은 한국 사회로 오면 꽤나 많이 희석되고 만다. 그의 작업은 상당히 충격적인 표현 작법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안젤름 키퍼와 함께 하는 비판적 현대사' 같은 글이라도 쓰야 하는 걸까. 실은 현실 정치나 과거 역사에 매우 비판적인 작가들은 너무 많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작품이 대형 갤러리에 전시되어 팔리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끝없는 생명력, 비논리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잡식성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뒤따라 할 것이다. 

아래 글들은 사간동 국제갤러리의 전시 설명문(국제 갤러리에선 가끔 안젤름 키퍼의 작품들을 전시하곤 한다)과 위키피디아의 내용 일부를 옮긴 것이다. 웹에서 바로 영어 번역을 해보았는데, 글쎄다. 썩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서.  안젤름 키퍼.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그의 작업은 ... 실제로 보면 정말 대단하고 놀라우며 그러면서도 일관된 정치적 메시지와 태도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감동적이다.




Anselm Kiefer To the Unknown Painter (Dem unbekannten Maler), 1983
 


안젤름 키퍼는 1945년에 독일 도나우슁엔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라이부르크와 칼스루헤, 뒤셀도르프 등의 미술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970년대에는 요셉 보이스를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키퍼는 독일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초기 작품들은 나치 정권 등 금기시되는 주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어 수많은 논쟁과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독일 대표로 참가한 후에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하였으며, 그 이후로 작품의 주제를 점차 확대시켜 예술과 문화, 삶과 죽음, 인간과 우주의 관계 등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어 왔다.
키퍼는 중세 연금술과 고대 유대교의 교리, 연금술, 식물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모티프들을 다루면서, 납, 꽃, 재, 셸락, 흙, 지푸라기 등의 매체를 사용하여 회화와 조각, 설치의 영역을 넘나든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상징주의적 이미지들은 다양한 재료의 물성과 결합되어 상징적이면서도 표현력이 강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완성한다. 키퍼의 작품은 자연의 숭고함을 다룸에 있어 독일 낭만주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또한 추상표현주의의 압도적 스케일과 표현주의적 표면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구체적 이미지와 상징적 도상들을 부
활시켜 매우 독특하고 강렬한 작품 세계를 이룬다.
- 국제갤러리 전시 설명 중에서


"A complex critical engagement with history runs through Anselm Kiefer's work. His paintings as well as the sculptures of Georg Baselitz created an uproar at the 1980 Venice Biennale: the viewers had to decide whether the apparent Nazi motifs were meant ironically or whether the works were meant to convey actual fascist ideas. Kiefer worked with the conviction that art could heal a traumatized nation and a vexed, divided world. He created epic paintings on giant canvases that called up the history of German culture with the help of depictions of figures such as Richard Wagner or Goethe, thus continuing the historical tradition of painting as a medium of addressing the world. Only a few contemporary artists have such a pronounced sense of art's duty to engage the past and the ethical questions of the present, and are in the position to express the possibility of the absolution of guilt through human effort." 
(역사의 복잡하고 비판적인 참여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 전반을 흐른다. 그의 페인팅은 게오르그 바젤리트의 조각과 비슷하게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관람객들은 명백하게 드러난 나찌 모티브를 반어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 작품들은 실제적인 파시즘적 개념을 그대로 옮겨오고 있다고 여겨야 할 지를 정해야만 했다. 키퍼는 예술은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나라와 당혹스럽게 나누어진 세계를 치료해야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그는 거대한 캔버스에 리하르트 바그너나 괴테와 같은 인물들이 선보였던 서술(depictions)의 도움을 받은 독일 문화의 역사라고 부른 서사적 페인팅을 창조했다. 그리하여 세계를 언급하는 매체로서의 역사적 전통의 페인팅을 지속하였다. 단지 적은 수의 예술가들만이 과거, 그리고 현재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예술의 책임에 대한 확고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인간 노력에 의해서 그 죄있음에 대한 면죄의 가능성을 표현하는 작업을 할 뿐이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Anselm_Kiefer 


 
Jericho, Royal Academy of Art, Piccadilly SW1 Taken inside the courtyard. The artwork was created by Anselm Kiefer, 7 March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