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느 저녁

지하련 2011. 12. 28. 18:57



야근 전 잠시 일 층으로 내려가, 일 층 한 모서리를 삼백 육십 오 일 이십사 시간 내내,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 초라한 뿌연 빛깔을 내는 형광등 불을 켜두고 있을 듯한 편의점에서, 따뜻하게 데운, 조각난 치킨들과 캔맥주를 마시고 올라왔다. 편의점 창 밖으로 어느 새 겨울 어둠이 내렸고, 눈발이 날렸고, 헤트라이트를 켠 검정색 차가 지나고, 이름 모를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추린 채 길을 걸어갔다. 검고  흰 젖은 길을.

그 순간 내 입술은 닫혔고 내 혀는 금방 스쳐지나간 맥주향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잠시 지나간 이천십일년과 결혼과 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편의점 치킨과 캔맥주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무실 책상은 쌓인 실패들과 꿈들과 계획들로 어수선했고, 음악은, 그 보잘 것 없는 음악은 최신 스마트폰에 갇혀 나를 위로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귀에 끼인 작은 독일제 이어폰에.


몽라 Monla - 트랄라 Tral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