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중력중독자의 날개 - 김이경 전, 한전아트갤러리(양재)

지하련 2012. 1. 28. 07:47

중력중독자의 날개 Wings of Gravity Addict
- 김이경 전, 한전아트갤러리, 2012.1.23 - 2.3


첫 전시를 한다는 건 참 고단하면서도 가슴 떨리고, 기대되면서도 쓸쓸한 일이다. 그건 누군가의 시선 아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드러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형편없는 취향에, 보잘 것 없는 언어에, 혹은 금전적 이득과는 무관한 시기와 질투 속에 휩싸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긴 도리어 지독한 찬사가 작가의 앞길을 망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젊은 작가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란 '작품이 좋네요'이거나 '계속 작업하세요'다. 이 두 말이 가지는, 인생에서의 가지는 위험성과 중독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첫 전시를 한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이며 근사하고 아름다운 무모한 출발이다.

한전아트갤러리는 참으로 외진 곳에 있다. 양재역이라는 번화한 사거리 옆, 한국전력에서 운영하는, 시설 좋은 갤러리라는 점이지만, 미술 애호가들이 동선을 꾸미기엔 외진 곳이다. 그리고 특별한 기획전(대중에게 잘 알려진 국내 외 작가의 전시나 흥행성을 고려한 대형 기획 전시 등)이 자주(?) 열리지 않는 곳이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작가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해주면서 전시 공간을 주는 갤러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일이다. (공기업 한국전력에서 운영하고 있어, 작가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느 겨울날 오후, 거리는 한산했다. 전시일정도 참 얄궂다. 설 연휴가 끼인 1월 말이라니.




그러나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면, 금세 눈은 환해지고 즐거워진다.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뭔지 아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작품을 보면서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전시된 작품을 보며서 의미를 찾아야 된다는 강박증은, 마치 더운 여름날 땡볕 밑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가서는, '나무 그늘은 말이야, 나에게 내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여름 날의 나무 그늘은 그냥 그늘이고 그 때 마침 나를 쉬게 해주고 편하게 해주고 있을 뿐이다. 단 조건이 하나 붙는데, 그건 나무 그늘 밑에 가기 전 땡볕에서 땀을 흘려야 하는 것.





작품들은 한결같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러나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자. 실은 우리 현대인들 모두가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까 말이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어쨋든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 아직까지 실패는 아니지 않은가. 실은 이렇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직장에서 짤리더라도, 누군가의 버림을 받더라도, 어쨋든 다시 그 비슷한 것에 대롱대롱 매달릴 수 있거나, 적어도 심장은 '대롱대롱' 그 호흡을 이어갈테니, 너무 절망하지 말자. 




매달린다는 건 어떤 사이에 위치한다는 걸 뜻한다. 그래서 작품들에는 한결같이 날개가 있고 그 사이에서 상승하고자 하는 욕구를 날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날개를 움직이지 않는다. 

  




날개가 없거나 머리와 몸이 떨어져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도 한다. 하긴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데, 몸이, 마음이, 시대나 환경이 따라주질 못해 오르지 못하는 것이 한 두 번인가. 그냥 그럴 뿐이다.

작품은 말 없이 우리 처지를 보여주고 우리는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사진이 좋지 않으니, 실제 작품를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이번 주말 한전아트갤러리의 한 전시는 우리들의 숨겨진 예술 욕구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