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에두아르도 푼셋/린 마굴리스

지하련 2012. 4. 28. 16:09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 10점
에두아르도 푼셋 & 린 마굴리스 엮음, 김선희 옮김, 최재천 감수/이루






서평을 쓰기 위해 다 읽은 책을 다시 펼쳐 밑줄 그은 곳을 되새기며, 새삼스럽게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실은 좋은 책일수록 서평 쓰기 어렵다. 그렇게 읽은 책 몇 권은 서평을 아예 쓰지 못하거나 한참 지난 후에야 써 올리게 된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받았고, 서평을 쓴다는 약속을 했다. 재미 있을 것이란 생각에 선뜻 받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책을 받은 후엔 늦었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책이기 때문이었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런 책에 대한 인위적인(인위적으로 보이게 될) 서평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더구나 좋은 책에 대한 서평 쓰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이 책에 나오는 37명의 과학자들은 한 분야에서 대단한 명성을 가진 학자들이고 뚜렷한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있었고, 한 챕터 한 챕터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인터뷰는 전적으로 에두아르도 푼셋과 린 마굴리스의 덕택이다. 특히 에두아르도 푼셋. 그는 마치 과학 전공자처럼 세계적인 과학자들 앞에서 그들의 연구 분야에 첨예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들의 독창적인, 논리적이면서도 상상력으로 가득찬 세계을 독자 앞에 선보이게 만든다.



“복잡성의 증대가 꼭 더 나은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니콜라스 매킨토시(실험심리학자) 앞에서 푼셋은 “저는 항상 제 건축가 친구에게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초기에 살았던 동굴과도 같은 현대적인 아파트에 산다고 말합니다. 뉴욕이나 런던, 다른 현대적 도시의 아파트는 모두 기하학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고 거의 동굴처럼 보입니다. 벽 세 개, 창문 하나, … “라고 말한다. 진화는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지, 더 나은 것을 향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푼셋의 말대로 우리는 아직도 기하학적인 동굴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뭘까? 현대적 인간으로의 진화란? 여기에 대해 제인 구달은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결국 우리를 동물계에서 분리시키는 경계선은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에드먼드 윌슨은 ‘우리 인간이 운석’이라고 말한다.




윌슨  (중략) 그러고 나서 우리가 등장했죠. 우리 자신이 거대한 운석입니다.

푼셋  우리가 운석이라니요?

윌슨  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인간의 활동은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있으며 우리는 ‘여섯 번째 멸종’의 첫 단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많은 글에서 다루는 ‘병목 현상’이란 이런 것입니다. 병목은 과다한 인구입니다. 인간이 자연환경을 너무 많이 파괴하므로 다른 종은 더 이상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없습니다. 

- 에드먼드 윌슨, 87쪽



작고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보편적이고 폭넓은, 인류 문명의 존재 의미를 다시 묻고 있음을,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심지어 각기 다른 곳에서 접근하여 거의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고 신비이며 극히 우연적인 사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이 아니라 수십억 년이며, 인류의 역사는 단지 이 광대한 우주적 시간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두 번째 조각일 뿐임을 이해합니다. 지구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며 우리는 우연한 행운 덕분에 여기에 머무르게 된 손님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우리의 존엄과 인간성을 높여줄 것입니다.”

- 스티븐 제이 굴드, 367쪽



케네스 H. 닐슨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생명은 실수예요!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표준적인 화학 방정식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이유는 생명이 매우 복잡하다는 데 있습니다. 생명은 더 많은 에너지를, 지속적인 투입과 흐름을 요구합니다. 구조화된 에너지 흐름, 특정 한계 내의 에너지 흐름의 원천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 케네스 H. 닐슨, 350쪽



인터뷰 하나 하나가 압축적이면서 끊임없이 읽는 이를 자극하는 이 책은 생명의 조각인 세포, 물질의 조각인 원자(심지어 원자의 의식에 대해서!)부터 시작해 우주 끝을 지나 다른 차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론물리학자인 리사 랜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너무 황당해서 마치 공상만화영화를 보는 듯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플랫랜드(Flatland, 2차원 세계를 의미함)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나라는 2차원이라기보다는 3차원이죠. 우리는 고차원 세계의 3차원 층에 살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막(brane)이라는 전문적인 이름을 만들어 냈죠. 이 용어는 영어의 ‘막(membrane)’에서 유래했습니다. 요점은 우리가 이 3차원의 플랫랜드에 살고 있다는 것이죠. 별도 차원이 존재한다 해도 우리를 이루는 물질, 원자, 분자 등과 우리은하, 우리의 세계는 사실 모두 3차원 우주, 3차원 막에 붙박혀 있습니다. 우리가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소통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결국 중력이 모든 곳에 느껴지기 때문이죠.” 

“중력은 시공의 전체 기하학과 연결됩니다.” 

- 리사 랜들, 483쪽



그녀는 다른 힘들 - 강력(strong), 전자기력(electron magnetic), 약력(weak) - 과 달리 중력(gravity)는 시공 전체와 연결되어 있어 막 너머의 새로운 차원에 대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이 우주가 아닌 다른 세계, 다른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녀의 책 ‘숨겨진 우주’는 번역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한다)



37명의 과학자를 인터뷰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압축해서 소개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학자들에게 한 번쯤 묻고 싶었던 것들, 가령 ‘영혼이라는 게 있나요?’, 아니면 ‘왜 인간은 늙는거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심지어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도. 그러니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과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가 아닐까. 또한 과학엔 아무런 관심 조차 없는 인문학 전공자들에게도 이 책은 권할 만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관심 있게 읽은 학자의 책을 찾아서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아래 사진은 '아름다움을 측정할 수 없을까?'에 대한 빅터 존슨(심리학자)과의 인터뷰 내용 중에 언급된 것이다. 손가락 비율에 따라 자신이 여성적인지, 남성적인지 알 수 있다. 한 번 손가락을 확인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