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하련 2012. 6. 16. 21:43



저지대 - 8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문학동네



저지대 

헤르타 뮐러(지음), 김인순(옮김), 문학동네




참 오래 이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오래 읽은 만큼 여운이 남을 진 모르겠다. 번역 탓으로 보기엔 뮐러는 너무 멀리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그녀의 양식이 낯설다. 자주 만나게 되는 탁월한 묘사와 은유는, 도리어 그녀의 처지를 짐작케 해주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 그녀는 의미의 망 - 단어들을 중첩시키고 시각적 이미지를 사건 속에 밀어넣어 사건을 애매하게 만들었으며, 상처 입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인물들 마저도 꿈과 현실 사이에 위치시켰다. 


이러한 그녀의 작법은 시적이며 함축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답답하고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얼굴의 모든 낱말은

악순환에 대해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사물들이 물질을 통해 속이고, 감정들이 몸짓을 통해 속이기 때문에, 낱말의 소리는 자신 역시 속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물질의 속임과 몸짓의 속임이 마주치는 접점에서, 말의 소리는 자신이 꾸며낸 진실을 가지고 둥지를 틉니다. 글을 쓸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 보다는 거짓이 얼마만큼 성실하느냐 입니다. 

- 262쪽 - 263쪽

'모든 낱말은 악순환에 대해 알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연설 중에서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대단히 매력적이며, 한 번은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신 이 소설을 읽을 땐 한 번에 다 읽는 것이 좋을 지도. 나는 너무 띄엄띄엄 읽은 탓에, 제대로 읽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