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올해의 작가상 2012, 국립현대미술관

지하련 2012. 11. 8. 13:24


올해의 작가상 Korea Artist Prize 2012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12. 8. 31 - 2012. 11. 11 




* 아래 전시 설명에 사용된 작품 이미지는 국립현대미술관(http://www.moca.go.kr)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오랜만에 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었다. 완연한 가을 하늘이 펼쳐졌고 도심이 벗어난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전시를 챙기는 것이 예전만 못하다. 직접적인 돈벌이와 관련없는 일이 된 지 오래 되었다. 가끔 있는 원고 청탁으로 전시를 보긴 하지만, 매우 드문 일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일상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전시를 챙기기엔 내 사정이 여유롭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전시 보러 가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었고, 더구나 꼬박꼬박 기록하던 전시 리뷰나 메모도 이젠 사라진 지 오래다. 책을 읽고 리뷰 쓰는 것도 밀리기 일쑤이고, 글쓰기에 그만큼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다보니, 글의 완성도도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부끄러워지기만 한다. 


시간 투자와 완성도는 비례한다. 작품을 보고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무조건 시간이 걸린다. 미술 관련 책을 수 권을 읽고 강의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걸린다. 하루만에 뛰어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지만, 그 하루에는 긴 시간 동안 쌓여져 온 고민과 치열했던 내적 투쟁이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이번 전시도 그런 고민들이 여과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전시라고 해야할 것이다. 정치적인 테마에서부터 예술 지향적인 시선까지. 보는 이들에게는 현대 예술이 가지는 '바라봄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어떤 작품은 몽환적인 감미로움으로 빠지게도 하고, 어떤 작품은 메타적인 관점에서의 끈질긴 접근을 요구하며 예술을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현대 한국 미술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을 테지만, 이 작가들의 작품을 도심의 상업 갤러리에서 만나기엔 한국 미술계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수경 - 쌍둥이 성좌 Constellation Gemini 



'번역된 도자기' 작품들만 보다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 것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순수함과 여성성을 드러내며, 몽환적이면서도 숨겨진 자아에 대한 탐구가 이어졌다. 내 설명보다 전시 소개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다소 어렵게 여겨지겠지만) 작품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듯 싶다. 



한편, 이수경은 양손을 이용하여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되는 회화를 제작하는 자신의 작품 제작 특질에 주목하여 "대칭"을 전시 주제로 선택하였다. 개인적인 작품 제작 방식에서 출발한 이 개념은 개인적인 특질을 넘어 좌우 대칭의 교방춤, 족자 작업 및 설치로 이어진다. 같으면서도 다른,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인 대칭 이미지는 전시장을 메우며 깨진 상처나 파편화된 수많은 나와 타인들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이러한 작업은 내 안의 나 아닌 존재, 즉 내 속의 타인과 타인 속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자 나와 타자의 같음을 발견하고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전시 소개 중에서 



문경원, 전준호 - 공동의 진술 Voice of Metanoia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 작품들은 나에겐 무척 의미심장했다.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예술에 대해 묻고 인터뷰하고 공동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인터뷰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이것이 투영된 설치 작업들, 드로잉 등은 서로 겹치고 교차하고 이어지면서 예술에 대해서 되묻고 되묻는다. 실은 결론이 나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정답 없는 질문의 연속을 통해서 정의내릴 수 없는 예술에 가까이 가는 것을 작가들 스스로, 혹은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가 4개의 전시 중 최고였다. 



전시장에 놓인 설치, 드로잉, 영상을 아우르는 통합 작업은 우리 시대 예술의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들은 시각언어보다는 개념 언어가 난무하는 우리시대에 예술이 유지해야 할 범주를 유명 전시 포스터에서 기인한 색상과 설치작업을 통해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문경원과 전준호는 예술의 본질과 역할을 규정하기 보다는 예술이 인간 인식의 지평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역사적 사실만을 담담히 제공한다. 

- 전시 소개 중에서 


 


임민욱 - 절반의 가능성 The Possibility of Half 






임민욱은 북한의 김정일 주석과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한 오열하는 주민들 모습에서 영감받아 제작한 '절반의 가능성'을 출품하였다. 슬픔에 가득찬 주민들의 모습에서 국토 전체가 마치 커다란 연극무대가 된 것같은 아이러니함을 느낀 작가는 그러한 연극적 풍광을 조장하는 이데올리기와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한다. 

- 전시 소개 중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교묘하게 섞어 현대 미디어의 속성을 탐구한 임민욱의 작품은 다소 생소하고 거칠게 느껴졌다. 혼자 전시를 보러 갔더라면 열심히 보았을 텐데, 아이와 함께 간 터라 그의 진지하고 도발적인 메시지가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김홍석 - 사람 객관적 - 나쁜 해석 People Objective - Wrong Interpretations 





김홍석은 이번 전시를 위해 '사람 객관적 - 나쁜 해석'이라는 제목으로 세 개의 방을 마련하고 각각의 방을 '노동의 방', '은유의 방', '태도의 방'이라 이름 붙였다. 동일한 작품으로 이루어진 이 세 개의 방에 대해 작가는 노동, 은유, 태도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작품과 관련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제공한다. 이 이야기들은 퍼포머에 의한 전시가이드(도슨트)의 형태로 관객에게 제공된다. 

이를 통해 김홍석은 미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도전하고 동시대의 미술을 미술로 인식하게 만드는 사회적 합의에 대해 재고할 기회를 제공한다. 

- 전시 소개 중에서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실현되어 성공하였을까? 참여(도슨트의 설명 듣기)로 완성되는 작품의 목적은 분명하지만, 전시 공간의 한계는 곧바로 작품의 한계로 이어진다. 



4개의 전시는 각기 다른 주제와 접근을 보여주어, 보는 이들마다 선호가 분명히 갈릴 듯 싶다. 나 또한 그랬으니. 하지만 2012년 한국 미술의 현재를 보기 위해 이 전시만큼 좋은 전시가 어디 있을까. 


이번 '오늘의 작가상' 2012 전시는 이번 주까지 이어진다. 이제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주말 과천국립현대미술관으로의 외출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