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미술양식의 역사

지하련 2004. 1. 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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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양식의 역사
미술문화



얇고 간단하게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왜냐면 각 페이지마다 특정 시기의 미술 양식이 의미하는 바를 몇 문장으로 요약해 정리하였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굳이 사서 읽을 필요는 없다. 단지 학술적인 목적으로 구입해 둘 수 있겠다.

예술의 역사는 인생들의 역사이면서 이념의 역사이다. 그래서 예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사보다는 역사서나 지성사를 읽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를 했을 경우 대체로 그 요구를 따라오기 힘들어한다. 이런 이유로 대체로, 특히 우리 나라에서 예술사에 대한 이해나 그 학문적 깊이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미술 양식의 역사를 각 시기별로, 그 양식적 특징별로 정리해놓았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각 시기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을 일일이 나열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도식적이라는 평가를 피해가기란 어려울 듯하다. 또한 지나치게 짧은 설명은 미술 감상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며 감동적이지도 않다. 미술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에게 이 책은 겉멋만 잔뜩 심어주는 그런 종류의 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간단하게 이 책에서 특징적인 내용 한 두 개를 설명하고 이 글을 끝내는 것이 좋겠다. 일반인에게 이 책을 추천할 생각은 없으니. 혹시 미술에 대한 책을 원한다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예경)가 좋다. 반 룬의 ‘예술사 이야기’도 추천할 만 한다.

1. 유럽 회화의 위계적 표현

서양미술사, 또는 서양 미술의 이해라는 과목에서 이집트 미술을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정면성의 원리’이다. (* 참고로 한 단어가 더 있다면 ‘영원’이다. 그런데 정면성만 이야기하고 ‘영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 강의는 들을 강의가 없는 강의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면성의 원리’은 이집트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보는 이를 가정하고 어떤 위계적 질서를 강요하는 예술 양식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양식상의 특징이다. 이 책에서는 ‘위계적 표현’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다.

2. 진화와 단절

진화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 차라리 변화가 더 어울릴 것이다. 왜냐면 진화란 어떤 것에 적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술의 역사 속에서 예술가는 대체로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까닭은 현대 미술이 혁신적인 양식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설명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대체로 인상주의부터 시작되어 세잔에게 그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칸딘스키로부터 새로운 미술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까. “라파엘로의 고전적 작품이 사실적인가? 아니면 고흐의 표현주의적 작품이 사실적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여러분이 고민하는 것이 좋겠다. 힌트) 사진으로 인해 현대 미술이 온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