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Tiempo de Silencio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Luis Martine-Santos(지음), 박채연(옮김), 책세상
스페인 원서. 주인공 페드로는 실험쥐를 통해 암을 연구한다. 실은 페드로가 현실 세계 속의 실험쥐였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이 책을 번역한 박채연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보낸다. 그녀의 번역이 정확한지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번역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번역을 했고 출판까지 이룬 것에 대해 독자로서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 스페인 소설의 기원’이라는 찬사를 받는 소설이지만, 실은 한국 독자에게 동시대 스페인 소설가는 낯설기만 하다. 소설은 현대적 서술 기법들이 망라되었으며, 게으른 독자를 쉽게 무시하고(그런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지도 않겠지만), 종종 문장 하나는 너무 길어져 독자의 집중을 요하기까지 하니(아니 번역된 소설이 이래서야!), 이런 소설을 읽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바라건대, 이 소설은 반드시 읽혀야 한다. 산토스의 ‘침묵의 시간’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을 가진다.
첫째는 소설 기법의 측면에서 현대 소설이 가져야 하는 여러 가지 미덕을 한 눈에 보여준다고 할까. 산토스 스스로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는 하지만, 실은 ‘의식의 흐름’ 뿐만 아니다. 서술의 강약이 적절하게 조절되어 있어, 어느 경우에는 장황하다 싶을 정도의 서술과 묘사가 이어지는가 하면, 어느 문장들은 짧게 끊어지며 소설 속 인물의 심리를 드러낸다. 자주 화자가 바뀌지만, 어색하지 않고 독자는 인물들의 심리를 자신의 마음처럼 읽고 지나가며 사건이 아닌 실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두 번째 시사점은 서사적 측면에서의 시사점이다.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는 여러 번의 투옥 경험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현실 참여적인 작가였고, 이 소설 또한 대놓고 박제화된 지식인-주인공 페드로-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현실적 무능함을 극대화시킨다. 결국 아무런 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통해 현대 스페인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며 지식인 사회의 변화를 역설한다고 할까. 페드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으나, 그는 너무 현실 세계를 쉽게 보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였으나, 그 행동이 잘못 되었을 경우를 고려하지 않는 유아적인 태도, 그리고 심지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려고만 하는 그의 행위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을 모른 체 하고 그것에 대해 그 어떤 개입이나 참여를 하지 않고 용기 없고 무책임한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형식적 측면에서도 전위적이며, 서사적 측면에서도 전위적인 셈이다.
1986년 스페인에서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은 참 슬프다. 페드로는 암 연구를 하는 젊은 의학 연구자일 뿐이다. 그가 우연히 휘말린 어떤 사건은 그의 인생을 정반대로 이끈다. 그의 의지와는 무관한 외부 세계는 그와 적대적이었으나, 심지어 그는 그가 외부 세계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마저도 모른다. 너무 선량해서 어리석고 무능하며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자까지도 잃어버린다. 그래서 문장은 종종 감상적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추악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인물에 대한 동정과 비아냥거림이 숨겨져 있다. 어쩌면 산토스 스스로는 자신이 버리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겨울, 진짜 소설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적어도 현대 소설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 순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