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비잔틴 세계의 미술, 데이빗 탈보트 라이스

지하련 2004. 2. 1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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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세계의 미술
데이빗 탈보트 라이스 David Talbot Rice 지음, 김지의/김화자 옮김
미진사, 1989.



지금 1989년에 번역, 출판된 이 책을 보기 위해선 도서관이나 헌책방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류의 책들, 이미 국내에 번역되었지만 현재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은 매우 많다. 가령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가 대표적인데, 오래 전에는 박영사 문고판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원서나 영어 번역본으로 밖엔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이는 미술사뿐만 아니라 인문학 관련 출판 시장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미술 관련 프로그램이나 전시가 활성화되어 있는 듯 하지만, 돈벌이를 위한 요란함만 있을 뿐 인문학이나 문화예술을 위한 실속 있는 움직임은 미미하거나 있다 하더라도 대중이나 언론매체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지금 막 미술사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들에게는 지금의 눈으로 본, 아주 오래되고 낡은, 아무런 감동도 전해주지 못하고 오직 해석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예술작품만 보일 뿐,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고민을 했으며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가에 대해선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감동 받지 않은 채 예술작품을 대할 때,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글을 쓸 때 그 태도나 그 글에서는 아무런 생동감도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지극히 도상학적인 접근이 두드러지는 책이다. 도상학적인 접근이 유용한 것은 이 책의 주제가 비잔틴 미술이라는 종교 예술이며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도 일관된 의미를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상학적인 접근의 단점은 그 당시의 삶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미술 작품의 감상이라고 하는 지극히 소박한 목적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미술(사) 전공자나 종교학 전공자에게는 유용하나, 대중적인 책은 아니다. 또한 일반 대중이 읽어 비잔틴 미술에 대한 감동을 얻어내기 어려운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곰브리치나 잰슨의 <서양미술사>를 읽어보면, 비잔틴 세계는 천 년 이상을 지속해온 곳인데 비잔틴 미술에 대한 설명이 얼마 되지 않다는 데에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들은 비잔틴 미술이 유스티아누스 황제 시대의 예술 작품은 주목할 만 하나, 이후로는 차라리 똑 같은 기독교 미술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고딕 양식에 집중하는 것이 중세 미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근/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권력을 볼 수 있다. 고딕의 자연주의는 직접적으로 르네상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만, 팔레오르그 부흥 시대의 비잔틴 양식은, 그것이 고딕 자연주의보다도 더 르네상스 양식에 가깝다 하더라도 이탈리아나 북유럽 르네상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잔틴 양식은 13세기 이후의 온화하고 개인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 양식으로 변해갔지만, 그 양식의 적절한 계승자를 찾지 못한 채 그 지역에만 한정된 지역 양식으로 쇠퇴해간 것이다.(* 이 시기의 비잔틴 양식은 시칠리아와 베네치아에 영향을 주었지만, 비잔틴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이러한 비잔틴 양식의 적절한 위상과 가치를 말해주는 저서이다. 특히 동방의 여러 지역, 즉 알렉산드리아, 시리아, 발칸반도, 시칠리아와 베네치아 등 비잔틴 문화권 안에 있었던 곳의 유적들까지 서술의 범위 안에 넣고 있기 때문에 비잔틴 양식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