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오늘의 미술, 브랜든 테일러

지하련 2014. 3. 16. 23:28


오늘의 미술

브랜든 테일러 지음, 송기매 옮김, 예경, 2002

 


 

1970년대 이후의 현대 미술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화가가 나오고 너무 많은 용어가 나온다. 당연, 이 책의 결론은 "혼란스러움"이다. 그러나 이를 '혼란'으로 볼 수도, '모색'으로 볼 수도 있다. 

 

모더니즘의 대안, 회화와 정치, 형식의 도난, 미술관 속의 미술, 정체성 이야기 등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실험과 고민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편견없는 시각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저자의 이러한 노력은 이 책이 다소 밋밋하게 읽히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

 

2004년 문학동네 겨울호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문학'에 대해 다소 고전적인 발언을 한 강연 원고가 실려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말, 문학은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이상하고 낯선 말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환상을 자극하고 현실을 뒤로 숨기려는 대중 매체의 영향이 큰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현대 미술에 비해 한참 뒤쳐져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언급은 별도의 책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다니엘 뷔렝은 197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중앙에 두 조각으로 이루어진 줄 무늬 그림(아크릴,천)을 걸어놓았다. 그리고 전시 도중 미술관 측에 의해 철거당했다. 뷔렝은 '미술관 중앙에 걸려 있는 작품은 자기 도취적인 건축물 속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려는, 건물 속에 감춰진 은밀한 기능을 여지없이 폭로한다'라고 말했다.



다니엘 뷔렌, <내부(구겐하임 미술관 중앙)>, 1971, 천에 아크릴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억압적인 기구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1970년대는 시작한다. 후기산업사회라는 시대 속에서. 그리고 이 책은 정체성의 문제를 마지막 챕터로 소개한다. 1992년 에이즈로 죽은 데이비드 보냐로비치는 동성애에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한다. 

 



Fuck You Faggot Fucker

David Wojnarowicz, 1984.

Black-and-white photographs, acrylic, and collage on masonite

48” x 48”.

Collection of Barry Blinderman, Normal, Illinois.



Untitled

David Wojnarowicz, 1992

실버 프린트에 실크스크린

4개의 에디션, 96.5*66cm 



책에 실려 있는 <무제>(1992년도 작)라는 작품은 실버 프린트에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되었으며 작품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때로 나는 사람들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미워하게 된다. 나는 텅 비어서, 완전하게 비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모두 시각적 형태, 나의 팔과 다리, 내 얼굴, 내 키와 내 자세, 그리고 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 심하게 비어 있다. 정확히 1년 전의 나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발표한 그 해 그는 에이즈로 죽는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정치적'이다. 어딘가 뒤틀려있고 불만이 많으며 호소할 대상이 사라진 시대의 호소의 몸짓들을 보여준다. 실린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구입할 필요가 있겠지만, 책을 읽고 얼마나 공감하게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 * 


2014년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살펴본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가령 이런 작품. 



Boyd Webb

<Nourish>, 1984

1.5 * 1.2m, 단색사진, 사우스 햄프턴 미술관 


보이드 웹의 이 사진은 고래의 젖꼭지를 빨고 있는 남자를 보여주고 있다. 책의 설명에는 '고래의 피부는 낡은 고무로 된 모형이고 젖꼭지는 인디언 채소(?)이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 * 


그리고 에이즈가 지금도 사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지면에서 사라지자 마치 그 문제가 사라진 것처럼 여겨진다는 점은 흥미롭기만 하다. 


데이비드 보냐로비치의 작품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visualaids.org/artists/detail/david-wojnarowicz



* 본 리뷰는 2004년 이 책을 읽고 쓴 글에다, 2014년에 덧붙였다. 그 때 당시에는 도판들을 인터넷으로 구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럴 때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되는가 싶다. 




오늘의미술

브랜든테일러저 | 송기매역 | 예경 | 2002.01.3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