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공부하는 보수, 이상돈

지하련 2015. 2. 5. 03:25


공부하는 보수, 

이상돈(지음), 책세상 





서평집이다. 두껍다. 색인까지 포함하면 7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문제는 '보수'라는 단어인데, 이제는 그 단어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생각할 때, 이명박 정권은 보수를 표방하고 들어선 첫 정권이었지만 독단적인 궁정 운영과 부패,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실패한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그런 오점을 청산하고 태어난 합리적인 보수정부이기를 기대했건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한 보수정권은 부패했고, 또 다른 보수정권은 무능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무하다. 

- 11쪽 ~ 12쪽  

 

그래서 이 책은 현 정권과 이전 보수 정권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어야 할 텐데,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박근혜 정권 하의 정책에 대한 언급은 가끔 보이긴 하나, 직접적이지 않다. 아마 이런저런 이해 관계 속에서 공격적인 발언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공격적인 비난 뒤에 올 여러 불이익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던 듯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냥 서평집이다. 그것도 보수주의자들이 쓴 원서를 읽고 쓴 서평집(대부분 번역되지 않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나는 우파다'라고 했더니 내 주위의 진보좌파들이 크게 웃었다. 그러니 다들 나를 진보로 볼 수 있을 텐데(나는 늘 좌파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만), 보수주의 저자들 일색인 이 책에 대한 문제적이고 비판적 읽기는 쉽지 않다. 실은 한국에는 보수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있다면 도리어 '종북좌파'로 불리는 이들이 서구에서 바라보는 바, 보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보수'라고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정도가 될 것이고(중도 좌파가 아니라),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보수로 포장한 1950년대 정당같다는 느낌. 


저자들은 보수주의란 '중용과 전통, 그리고 합리성을 존중하며, 기존의 문화시스템 안에서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진화적 변화를 추구하며,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정부 정책을 의심한다. 

- 230쪽 (Edwin Feulnet, Doug Wilson, <<Getting America Right: The True Conservative Values Our Nation Needs Today>>(Crown Forum, 2006)에 대한 서평, '올바른 보수정책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과 저자들도 미국 공화당과 보수 정권들에 대해 공격하고 심지어 진정한 의미로 보수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니까, 한국에서 보수정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운 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읽을 만한가? 솔직히 나는 지난 1주일 동안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 내 주위의 진보주의자들이 읽으면 화들짝 놀랄 만한 내용도 많다. 가령 피터 스와이저Peter Schweizer의 <<내가 말한 대로 해: 진보의 위선적 모습 Do As I Say (Not As I Do): Profiles in Liberal Hypocrisy>>에 대한 리뷰 일부를 옮겨보자.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과 소수인종과 여성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의로운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보수주의자들이 탐욕스럽고 환경을 파괴하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한다. 

- 333쪽 


 한국에서도 그런가? 잘 모르겠다(여기엔 내 개인적 경험까지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우 위의 인용문처럼이겠지만, 한국 사회에선 일종의 희망 사항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자본가와 군대가 움직이는 '불량배 국가'이고 이스라엘은 '중동의 악'이라고 비난해서 명성을 얻은 MIT 명예교수 놈 촘스키는 전 세계 진보좌파에게 영웅과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40년 동안 국방부가 MIT에 지원한 암호 개발 프로젝트로 연구비를 받아왔다. 촘스키는 자기가 자본주의의 희생자인 가난한 민중을 대변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사실 그 자신은 매우 영악한 자본주의자다. 강연료와 인세 수입으로 인해 그는 소득이 전체 미국민의 상위 2퍼센트 안에 들 정도로 부자이다. 그는 보스턴 근교 레싱턴이라는 부자 동네의 85만 달러가 넘는 호화 주택에 살고 있으며, 케이프코드에 별장도 갖고 있다. 촘스키는 흑인과 여성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평생토록 주장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연구 스태프로는 백인 남성만 고용했다. 그는 9.11 태러 후 강연 요청이 많아지자 9,000달러 받던 1회 강연료를 1만 2,000달러로 올렸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자기가 낼 세금을 줄이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 334쪽 


내용이 선정적이어서 아마존에 뒤져보니, 표지도 선정적이다. 촘스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실생활을 까고 있다. 리뷰 평점은 나쁘지 않고 2006년 상반기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인들도 진보주의자들(미국에선 liberals)에 이상하게 높은 절약정신과 도덕율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존 리뷰를 보니, '부자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들보다 훨씬 낫다'며 이 책에 대해 별 하나를 주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은 번역되지 않는 걸까? 하긴 내 생각엔 자칭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이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다들 영어로만 책을 읽어서 그런 듯 싶다)



- 피터 스와이저의 책 표지. 유명한 사람들이 표지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미국의 급진 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 평등, 정의, 소비자 보호, 환경보호, 여성 해방 등을 내걸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사생활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적 이익을 챙긴 위선자들이라면서, 이제 이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와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어느 보수신문이 종종 게재했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정치인들도 비슷한 주장을 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적어도 보수 쪽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보수 쪽 사람들의 윤리 수준이 더 낮기 때문이다. 

- 337쪽 



아, 박근혜 정권은 아예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저 센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으니 말이다(그러면서 보수 정권 어떠니, 종북 좌파 이야기를 해대는 이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책에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은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서서 미국과 세계 정세, 미국 정치, 이슬람, 유럽, 금융 위기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 흥미롭게도 그런 책들 일색이다. 이상돈 교수가 선호하는 저자들도 눈에 보이고 책들 중에서는 서로 비슷한 논지에서 중복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읽는 중간 가끔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이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에 국제 정세나 보수주의자들의 세계와는 참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설 당시 51개였던 유엔 회원국은 1993년 무려 184개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184개국 중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회원국은 75개국 뿐이니, 유엔에 속한 다수의 국가가 독재국가인 셈이다. 

- 447쪽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유엔을 비난하는 책이라든가(부패했던 코피 아난에서 반기문 총장으로 바뀐 지금도 상황이 별반 나아진 듯 싶진 않지만), 세계 정치 구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할 때면 무능하기만 한 한국을 보며 한숨만 나온다. 


파키스탄 대도시에서는 중국 사업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터키와 중국도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고, 시진핑 중국 주석은 터키를 방문했다. 중국이 터키에 원전과 항국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두 나라의 경제 협력은 공고해지고 있다. 중국과 이란과의 관계도 깊어가고 있다. 중국은 이란이 수출하는 에너지의 최대 수입국이며, 이란은 중국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이다. 

- 513쪽 



중국은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을 능가할 것이고 러시아는 냉전 시대 만큼은 아니라더라도 서유럽과 미국을 긴장시킬 수 있는 파워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미국으로선 이런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군은 국가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유럽, 일본, 한국 등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460쪽 



미군 철수는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미국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다. 즉 공화당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민주당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밖에서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국내 재정 적자나 줄이고 나라 살림이나 잘해라는 것이 미국 내 지식인들의 바람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군비 축소가 이야기될 것이고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수는 미국이 먼저 통보할 것이다. 전시작전권 문제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인데, 이를 반대하는 게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이다. 그 중의 예비역 장성 한 명은 군사 기밀을 미국 회사에 돈을 받고 팔아넘겼으니...,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이 강력하게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아마 주한미군 주둔비용 전체를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는 바 보수정권이라고 했던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미 미국 내에선 세계 여기저기서 치른 전쟁에 대한 저항이 심각하고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는 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지 W. 부시는 성급하고도 오만한 전쟁을 벌여서 미국의 국력을 손상시켰고, 오바마는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다음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면 이 세상 많은 곳이 보다 불안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세계를 책임지는 '자비로운 제국Benevolent Empire' 행세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 519쪽 



그리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이슬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가 바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이슬람극단주의 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정책 실패와 함께 미디어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유대인은 졌고 이슬람이 이겼다고 진단한다. 더 나아가 서유럽 내 이슬람 인구의 증가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유럽 전체가 이슬람 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다양성, 다원주의,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미덕으로 지키는 진보주의자들의 탓이다. 왜냐면 미국과 유럽의 진보주의자들이 믿는 이러한 미덕이 무슬림에겐 미덕이 아니며, 도리어 미국과 유럽 내에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또한 흥미롭게도 반유대주의가 서구 진보주의자들에게 넓게 퍼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또한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용을 핑계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만, 유럽 정치인들과 진보주의자들 때문에 무슬림 인구는 서유럽을 장악하고 있으며, 서유럽인들이 믿는 바 그 가치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책이 두껍다 보니, 서평도 길어지는데(실은 짧게 쓸 수 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ㅡ_ㅡ;), 그냥 한 번 읽어볼 만하다는 수준에서 마무리할까 한다(아마 손에 들면 놓지 못할 것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실은 보수주의자들의 책이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소 놀랍고(반대로 서구 진보적 지식인들의 책은 곧잘 번역되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 어쩌면 현대 한국 사회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이상돈 교수를 야당에서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실은 야당이 서구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 정당에 가깝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중도 좌파 정당이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문단만 옮긴다. 


우즈는 하이에크가 '호황과 버블 폭발'을 반복하는 경제 사이클의 근본 원인은 중앙 은행에 있다고 설파한 것이 정확한 분석이라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하이에크는 이자율을 낮춰서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하이에크는 침체Recession, 또는 공황Depression은 잘못된 투자 때문에 생긴 부작용을 교정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경제가 제 모습을 바로 찾는 것인데, 이자율을 낮추면 종국적으로 닥쳐올 붕괴Collapse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오래 전에 지적했다. 

- 611쪽 



최악의 경제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한국은 몇몇 글로벌 기업에 의지한지 꽤 되었다. 지난 정권부터 유독 심해졌는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도나도 욕을 해댔던 노무현 정부가 그나마 살만했고 이명박 정권 이후는 엉망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더 큰 일은 지금 정부에서 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내놓는 것들이 원조 보수주의자라고 평가되는 하이에크가 반대한 정책들이라는 점이다. 정녕 보수 정권인가 싶다. 진보 정권은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아마 다음 정권은 정말 잃어버린 10년을 되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되살려놓으면, 그제서야 제대로 된 입과 펜을 가지게 된 언론들이 나서서 공격을 해대며 기자라는 자존심으로 펜을 들었다며 으쓱거릴 게다. 그리고 너도나도 비난을 하는 통에 국민들도 함께 욕을 해댈 것이고,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았는가는 몇 년 후엔 다 잊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국민들의 잠재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음 정권도 계속 소위 말하는 보수 정권(미국의 관점에선 전혀 보수가 아닌)이 잡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무조건 다음 대선 때에는 야당이 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웃긴 짓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잠재력을 오판하고 있다. 화려하게 가짜 보수 정권이 부활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다들 지금 일동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 (아, 나는 정치 블로거가 아니야)


실은 한국은 정말 위험한 기로에 서 있는데,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정말 상황을 오판하고 있으며 한국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는 듯 보이니, ... 거참, 내가 나라 걱정을 할 판인가. 이제 다시 40대 중반에 실업자 대열에 합류한 판국에. ㅡ_ㅡ;; 






공부하는 보수 - 8점
이상돈 지음/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