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하련 2004. 8. 12. 11:06
자기 앞의 생 - 10점
에밀 아자르 지음, 지정숙 옮김/문예출판사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지음), 지정숙(옮김), 문예출판사



로맹 가리, 필명인 에밀 아자르로 발표한 짧은 프랑스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잠시 눈가를 붉혔다. 오랫만에 소설을 읽었다. '모하메드'라는 이름이 좋아졌다. 그리고 늙는다는 것, 추해진다는 것, 그리고 육체가 썩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소설가는 자살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로맹 가리는 1980년 권총 자살로 죽는다. 아마 로맹 가리는 모하메드가 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고통 받았지만, 그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어떤 사람을 사랑했고 그 사람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지만, 결국에는 생의 안락함을 구하게 되는 어떤 소년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 소년은 생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 힘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은 언제나 어둡고 시간은 늘 예상보다 빨리 찾아오는 법이다. 그렇게 죽음이 오고 상실이 오고 슬픔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그 순간을 알아차릴 때, 어두운 서랍에서 권총 하나를 꺼내 총알 하나를 장전하고 동이 터오는 새벽, 아주 짧고 격렬한 소리를 내며,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영혼이, 인간의 신비가 숨겨져 있다고 여겨지는, 육체의 어떤 부분을 박살되는 것이다.

그러면 생은 무수한 붉은 빛으로 튀고 영혼은 가벼워지면서 위를 향하게 된다. 그렇게 로맹 가리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을 게다.

참 슬픈 소설이다. "사랑해야 한다"는 마지막 문장은 이 소설의 내용을 매듭짓는 문장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절규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에겐 살아갈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지로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억지로 사랑해야만 ... 억지로라도 사랑해야만 우리는 이 구차한 삶을 연명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로 깔랭을 읽고 난 다음에도 무척 슬펐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에도 슬펐다는 사실을 리뷰를 정리하면서 알았다. 로맹 가리, 되도록 그를 멀리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