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지하련 2018. 1. 3. 12:20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전 2세기 제작 추정





책을 읽는다고 당신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나아지지도 않는다. 쓸데없이 고민만 많아진다. 할 수 있는 건 빨간 신호등일 때 건널목을 건너지 않는 정도이지만, 고민하는 것은 이 세상 전체에 대한 것들이다.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로 인해 병들어가는 지구나 갑작스럽게 성장하고 있는 AI(인공지능)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라든가 북핵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끼인 한반도의 운명 등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을 누구에게도 말할 필요도, 말할 사람도 없다. 주제 넘은 염려다. 정작 고민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어린 아이 교육이나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채 빚만 쌓이는 집안 경제, 또는 직장 문제나 나이가 들수록 위태로워지는 돈벌이. 그러나 이 또한 고민으로만 머물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실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는, 종이 위의 글자로만 존재하는 책만 읽는다. 도리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돈마저 저 책들을 구입하기 위해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왜 나는 책을 읽는 것인가.  




Saint Jerome

Caravaggio (1571-1610) 

Oil on canvas, 112 cm × 157 cm, 1605-1606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 강유원, <<책과 세계>> 중에서




어쩌면 나는 병에 든 것이다. 기원전 안지오의 저 소녀도 병 들고 기원후 4-5세기의 성 히에로니무스도 병든 채 라틴어 성경을 옮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소녀가, 성 히에로니무스는 병에 걸렸음을 사람들이 알면 안 되었다. 어쩌면 이 병은 전염병일 지도 모른다. 우리 영혼의 파국을 부를 수도 있고 현실적 자각을 방해할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르게 하고 구별짓게 하는 이 병은, 걸린 사람들만 서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병들었기에 어떻게든 그것을 다른 것으로 포장해야만 한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들은, 우리들은 병든 것을 숨기기 위해, 도리어 병 든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다른, 훨씬 우월하며 고귀하다고 여기게 하려고 고대로부터 책 읽기를 포장해 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플라톤은 책을 읽는 우리들와 다른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이 사람들은, 지혜와 선의의 경험이 전혀 없이, 잔치와 또한 그와 유사한 즐거움에만 항상 익숙하고, 낮은 수준의 교양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일생을 그런 식으로 방황하며 살았다. 그들은 진리를 찾아 하늘을 바라본 적이 없고, 더 높은 진리를 향하여 비상한 적도 없으며, 어떤 순수하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맛본 젓도 없다. 가축의 무리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항상 허리를 굽혀 눈을 땅 바닥과 먹을 곳에 고정하고, 먹고 살찌고 성 관계를 맺어 새끼를 낳으며, 이들 즐거움에 대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보였다. 그들으 무쇠와 같은 뿔과 발굽으로 서로 차고 받았고, 그들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서로 죽이기까지 하였다. 

- 플라톤, <<국가>>, 9장 중에서 




2. 위태로운 프란체스카의 독서 



Francesca da Rimini

William Dyce  (1806-1864) 

Oil on canvas, 218 cm  × 182.8cm, 1837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프란체스카는 자신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시구를 읽다가 만다. 책을 읽는 프란체스카의 얼굴 위로 파올로의 얼굴이 겹쳐지고, 이 둘은 불륜의 사랑을 나눈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의 형과 결혼을 약속했으나, 사랑에 빠지는 건 파올로였다. 파올로도 마찬가지여서, 이 둘의 운명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죽어서도 끝없는 세속의 비난을 견뎌야만 한다. 


중간에 멈춘 프란체스카의 독서 위로 비극적인 사랑이 놓이고, 고통스러운 사랑의 밤은 지나고, 죽음의 아침만이 남았을 뿐이지만, 그녀의 책 읽기는 끝나지 않는다. 



나는 행복을 찾아 모든 곳을 헤맸지만, 결국 어느 한 구석에서 책을 읽다 행복을 발견했다.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 ~ 1471) 



그러나 이제 그 행복한 구석은 없다. 사랑하는 연인도 없다. 우리는 행복을 발견하기 전에 이제 네트워크의 부름을 받을 것이다. 아니면 책을 읽다가 네트워크로 들어가 검색하게 될 지도 모른다. 


진정한 행복은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고독 속에 존재한다. 말씀으로 시작된 이 세계는 반복적으로 책으로 돌아가고 자주 책 밖으로 나온다. 이야기가 되거나 문장 되거나 단어가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끝없이 변주되어 나오는 최초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네트워크로 수렴되고 디지털화된 기호가 되고 시뮬라크르가 된다. 그리고 물질적 세계에서 사라진다. 



3. 책벌레는 되지 말자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읽지만, 나는 읽기 위해서 산다. 

- 로건 피어설 스미스(Logan Pearsall Smith, 1865 - 1946)



나도 읽기 위해서 사는 것일까. 이에 우리의 친구이자 눈 먼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은, 그래도 책벌레가 되지 말자고 말한다. (어쩌면 그도, 나도 이미 책벌레일지도 모르는데) 



책벌레라는 개념은 좀목(Thysanura)에 속하는 곤충에서 유래하는데, 이 곤충은 종이와 잉크로 구성된 책을 실제로 먹어치우는 벌레로 일찍이 알렉산드리아 시대부터 "도서관의 청소부"로 악명을 떨쳤다. 책벌레란 독서를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하고, 마치 좀벌레가 책을 먹어 치우듯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독자들은 생쥐나 시궁쥐라고 조롱받기도 하는데, 그들에게 책과 인생은 영혼을 살찍우는 자양분이 아니라 헛된 욕심을 채우는 사료(飼料)에 불과하다. 

- 알베로트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중에서 



책벌레에 관한 한 올해 읽은 최고의 표현은 아래와 같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이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중에서 




그리고 탐욕스럽게 책을 읽었으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결국 죽는다. 책 한 줄 읽지 않은 듯한 여인 만차의 운명과 대비되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비극적인 고독 속에서 시뮬라크르가 된 위안으로 끝난다. 그러니 책은 책일 뿐이고 세상은 언제나 거기 있을 뿐이다. 니체가 그토록 싫어했던 플라톤이 최초로 제안한 개념, 바로 저 세상(이데아계)이 있다는 것, 그것만이 책벌레의 유일한 희망일 지도 모른다. 



4. 2017년, 기억할 만한 독서의 흔적


4.1.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


2017년이 지나고 2018년이 시작되었다. 작년 한 해 약 50권 여 권의 책을 읽거나 읽는 중이다. 많은 책을 사기도 했으나, 그만큼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도 했다. 사기 애매하거나 미처 몰랐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 중 일부는 결국 구입하기도 하는데,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은 두고 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서평집으로 머물기엔 아쉬운, 책에 대한 사랑 고백과도 같다. 클리프턴 패디먼/존 S.메이저의 <<평생독서계획>>(연암서가)에서 소개되지 않은 고전들을 소개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글로 소개되지 않은, 소개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점은 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혼자 비밀스럽게 몇 명의 작가들을 알고 읽을 수 있을 테니까. 가령 조지 매러디스(George Meredith, 1828 - 1909)나 C.P.카바피(C. P. Cavafy, 1863 - 1933)은 절대 한글로 번역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 클리프턴 패디먼/존 S.메이저의 <<평생독서계획The Lifetime Reading Plan>>은 우리가 평생 동안 읽었으면 하는 고전들에 대한 소개서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소설까지 이어지는 이 책은 우리가 뭔가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할 때 추천할 만한 가장 좋은 책들 중의 한 권이다. 마이클 더다도 이 책에 대한 찬사로부터 시작하여 책을 쓴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은 세상 일과 무관하다. 도리어 뭔가 물질적 기여를 할 시간에 나는, 우리는 마이클 더다의 책을 읽는다. 그렇게 2017년 오십여 권의 책을 읽었다. 


4.2. 쉼보르스카와 다니카와 슌타로 


2017년 최고의 저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와 다니카와 슌타로였다. 이 두 명의 시인은 왜 아직도 시인이 있어야 하고, 시가 읽히며, 시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가는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위대한 시인들은 옮겨진 언어의 종류에 상관없이 성공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4.3. 하우저와 조중걸


예술 관련 서적을 많이 읽은 해이기도 하다. 아놀드 하우저(아르놀트 하우저, Anold Hauser, 1892 - 1978)의 <<예술과 소외>>(김진욱 옮김, 종로서적)는 마니에리슴(매너리즘) 연구 서적으로, 1981년에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책이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에도 책으로는 그 도판을 구하기 어려운 16세기 후반기 마니에리슴 예술가이며, 지금도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는 이들 상당수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의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번역자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조중걸의 <<근대 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1권, 2권(지혜정원)은 서양 예술사가 이렇게 씌여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한글로! 활자가 크다고 만만하게 볼 수 없고 도리어 그 사유와 해석의 흔적을 따라가기만으로도 벅차다. 특히 매너리즘 미술에 대한 소개나 19세기 후반 미술에 대한 설명은 압도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곰브리치나 잰슨의 서양미술사와 조중걸의 책을 비교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전자는 '양식사로서의 서양미술사'로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읽은 베스트셀러라면, 조중걸의 이 책들은 왜 예술이 존재하며, 지금/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래서 왜 끝내 감동받게 되는가를 알게 한다. 그래서 조중걸의 책을 읽고 난 다음, 독자들은 다른 서양 예술 관련 책들이 한없이 시시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 조중걸의 서양예술사는 전 5권으로, 나는 아직 <<고대 예술>>과 <<중세 예술>>을 읽지 않은 상태이다. 모두 '지혜정원'이라는 출판사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작년 그는 놀라운 책 한 권을 출간했는데, <<비트겐슈타인 논고 해제>>(북핀)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고Tractatus>>를 읽고 소개한 책인데, 일부 인터넷서점들의 독자 평만 봐도 이 책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아마 한국에서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대학에서 겉멋 부리는 이들 대부분이 움찔했을 것이며, 아마 일부는 이 책을 읽어내지도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사두었을 뿐,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4.4. 세상을 이해하는 세 가지 방법 


군터 뒤크의 <<호황 VS 불황>>(원더박스)은 읽는 내내 경제시스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팀 하포드의 <<메시>>(위즈덤하우스)는 우리의 통념을 산산히 깨고 어지럽고 지저분하며 혼란스러운 환경이 어떻게 창의성을 폭발시키며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한 놀라운 사례들을 알려주었다. 마이클 셔머의 <<믿음의 탄생>>은 종교, 혹은 신앙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는가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약간 불편할 수도 있으나, 결국 종교나 신앙도 우리 인간 문명 속에 들어와 있으며, 우리 생명, 삶, 역사와 함께 흘러왔음을 인정할 때 이 책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과격하지만,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다. 



4.5. 시몬 베유와 강유원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이제이북스)는 놀라운 책이다. 카톨릭 신자로서 시몬 베유는 하느님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 책이 씌여진 시기가 세계 대전 중의 유럽이라는 점에서, 가끔 일요일 성당 안의 고요한 평화-그러나 무수한 심적 갈등과 고난, 회개와 반성으로 뒤범벅된 신자들이 몰려든-를 떠올리게 한다. 강유원의 <<숨은 신을 찾아서>>(라티오)도 신앙 고백서이다. 시몬 베유는 이미 있는 신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하는가에 방점이 찍힌다면, 강유원의 이 책은 그야말로 진짜 신앙 고백서이다. 그는 그리스-로마의 체계 안에서 사도 바울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왔으며, 이후 신앙 고백자들이 어떻게 신앙을 받아들이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딱딱한 방식이지만, 정직하고 곧게 자신의 신앙을 드러낸다. 몇몇 카톨릭 신부들이 이 책을 추천하였으며, 너무나도 이성적인 철학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나 또한 성당을 다니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터라, 강유원의 이 책은 한 편으로는 너무 슬프게 읽힌 책이기도 하다. 



4.6.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그리고 단테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사회학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아파하는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는 너무 낯익지만, 낯 뜨겁기도 하다. 일종의 관찰이면서 해석이며, 이러한 기록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아우어바흐의 <<단테>>는 문학 이론서는 이렇게 씌여져야함을 보여준다. 이미 <<미메시스>>(민음사)를 통해 국내에는 오래 전부터 그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아우어바흐는, 정작 나에겐 낯선 이였다. <<미메시스>> 상권을 읽다 말았으니. 2018년에는 아우어바흐의, 읽다만 책들을 읽기로 한다. 



4.7. 예술이 되는 순간, 그리고 


필립 드 몬테벨로/마틴 게이퍼드의 <<예술이 되는 순간>>은 우리가 왜 예술을 사랑하는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책이다. 서점에서는 이 책을 열어볼 수 없도록 비닐포장되어 책 내용을 엿볼 수 없지만, 그냥 구입하면 된다. 그리고 책벌레가 아닌 예술에 미친 이들이 어떻게 그 속에서 살아가는가를 알게 해준다.  



Fragment of a Queen's Face

New Kingdom, Amarna Period, 1353-1336 B.C.

Yellow jasper

h. 13 cm (5 1/8 in); w. 12.5 cm (4 15/16 in); d. 12.5 cm (4 15/16 in)

Metropolitan Museum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544514) 



"당신이 두상의 윗부분을 발견한다고 해서" 필립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감격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여기 남아 있는 조각의 완벽성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미술사에서 말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눈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한 경탄에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이것은 강렬한 즐거움입니다. 마치 당신이 좋아해서 영화로는 보고 싶지 않은 책과 같습니다. 당신은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남자나 여자 주인공의 얼굴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을 것입니다. 이 노란색 벽옥 입술의 경우, 나는 사실 사라진 부분을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습니다." 

- 필립 드 몬테벨로/마틴 게이퍼드, <<예술이 되는 순간>> 중에서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떤 이론적 배경이나 지식으로 무장하여 예술 작품을 감상해야 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굳이 현대 미술 이론이나 미술사에 대한 지식 없이도 작품은 감상이 가능하고 가능해야만 한다. 다만 이론/지식이 늘어날 수록 작품 감상의 이해와 폭이 넓어지며, 그 감동도 달라질 것인데, 이는 그 사람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였는가와도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는다. 이 점에서 Dana Arnold의 <<Art History -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2004)는 짧지만, 꽤 유용하고 적절한 지점을 잘 알려준다. 



This kind of visual material can have an autonomous existence - we can enjoy looking at it for its own sake, independent of any knowledge of its context, although of course viewers from different time periods or cultures may see the same object in contrasting ways. 

- Dana Arnold, <<Art History>> 중에서 



4.8. 읽은 책들의 목록 


아래 2017년 한 해 읽은 책들의 목록을 올린다. 일부는 2016년부터 읽어온 책들도 있고, 일부는 아직 끝내지 못한 책들도 있다. 어느 책들은 블로그에서 서평을 올렸으나, 어느 책들은 서평을 올리지 못했으며, 서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책들도 있다. 책 제목 앞에서 * 표시를 한 것은 동작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다. 2018년 올해에는 서재에서 먼지를 먹고 있는 책들 위주로 읽기로 해본다. 2017년에는 과학 책을 거의 읽지 않았으니, 올해 많이 읽는 것으로. 


일년에 읽는 책의 수보다 사는 수가 더 많다. 내 인생에 기적이 생겨, 진정한 책벌레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터무니 없게 꿈꾸어 본다. 




소설 

<<황산>>, 아멜리 노통브(지음), 문학세계사  

<<백설공주>>, 도널드 바셀미(지음), 책세상 

<<위대한 개츠비>>, 스코트 피츠제럴드(지음), 정현종(옮김), 문예출판사 

<<얼음의 책>>, 한유주(지음), 문학과지성사, 2009년

<<맥베스>>, 셰익스피어(지음),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지음), 다산책방 

<<햄릿>>, 셰익스피어(지음), 펭귄클래식코리아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지음), 이창실(옮김), 문학동네, 2016년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지음), 김민정(옮김), 밝은세상



시집

<<강의 백일몽>>, 가르시아 로르카(지음), 민음사 

* <<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지음), 문학동네 

* <<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지음), 요시카와 나기(옮김), 비채 



에세이 / 비평 / 역사

*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지음), 책읽는고양이, 2016년

<<유감이다>>, 조지수(지음), 지혜정원, 2016년

*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지음), 책읽는수요일, 2013년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지음), 난다, 2013년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 지성사

* <<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지음), 양병찬(옮김), 행성비, 2017년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이마, 2016년 

<<숨은 신을 찾아서>>, 강유원(지음), 라티오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 마이클 더다(지음), 이종인(옮김), 을유문화사, 2009년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 <<파울 첼란/유대화된 독일인 사이에서>>, 장 볼락(지음), 윤정민(옮김), 에디투스 

<<셰익스피어의 시대>>, 프랭크 커모드(지음), 을유문화사, 2005년 

<<유혹에 대하여>>, 장 보드리야르(지음), 배영달(옮김), 백의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지음), 윤진(옮김), 이제이북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지음), 그린비, 1999년

<<단테>>, 에리히 아우어바흐(지음), 연암서가, 2014년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심재훈(지음), 푸른역사

*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지음), 이상희(옮김), 추수밭, 2017년 



경제 / 경영 / 정치 / 과학

<<미래의 소비자들>>, 마틴 레이먼드(지음), 에코비즈, 2006년 

* <<선대인의 빅픽처>>, 선대인(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5년

<<소비의 미래>>, 다비트 보스하르트(지음), 생각의 나무, 2001년 

* <<2017 한국이 열광할 세계트렌드>>, KOTRA(지음), 알키, 2016년 

*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박종훈(지음), 21세기북스, 2015년 

<<준비된 자가 성공한다>>, 데이비드 알렌(지음), 청림출판, 2005년 

* <<좋은 제품이란 무엇인가>>, 제임스 L. 애덤스(지음), 김고명(옮김), 파이카, 2012년 

<<호황 VS 불황>>, 군터 뒤크(지음), 안성철(옮김), 원더박스, 2017년 

* <<메시>>, 팀 하포드(지음), 위즈덤하우스, 2016년

* <<왕따의 정치학>>, 조기숙(지음), 위즈덤하우스, 2016년 

<<믿음의 탄생>>, 마이클 셔머(지음), 김소희(옮김), 지식갤러리, 2012년 



철학 / 예술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지음), 권순홍(옮김), 문예출판사

<<미학입문>>, H.오스본(지음), 박우사, 1994년 

<<비정형 : 사용자안내서>>, 이브-알랭 부아, 로잘린드 E. 크라우스, 미진사, 2013년 

<<근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1권>>, 조중걸(지음), 지혜정원, 2014년 

<<근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2권>>, 조중걸(지음), 지혜정원, 2014년 

<<예술과 소외>>, 아놀드 하우저(지음), 종로서적, 1981년

<<Art History - A Very Short Introduction>>, Dana Arnold(지음), Oxford University Press, 2004년  

<<예술 사회>>, 조지 디키(지음), 김혜련(옮김), 문학과지성사, 1998년

*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지음), 마음산책, 2011년 

<<회화 - 한 눈에 보는 흥미로운 미술의 역사>>, 폴커 게하르트(지음), 이수영(옮김), 예경, 2005년 

<<예술이 되는 순간>>, 필립 드 몬테벨로, 마틴 케이퍼드(지음), 디자인하우스, 2015년 

*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차문성(지음), 책문, 2015년 

* <<래디컬 뮤지엄>>, 클레어 비숍(지음), 현실문화 




5.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일견 단순해보이지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책 읽기를 권하지만, 정작 책 읽는 사람은 드물어지는 시대다. 한없이 가벼워지며, 깊이가 사라지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책을 들고 읽는 건 낯설다. 나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그저 습관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 때 통찰력 있게 세상을 바라본다는 착각을 가지고 했으나, 막상 중년이 되고 보니, 부질 없더라. 다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조용히 책 읽는 습관 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 권할 만 하다. 책을 두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아주 가끔 실천적인 지침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과 세상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책을 많이 읽으면 뭔가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자. 그저 사소하지만 조용하고 깊은 독서만이 거칠고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음을,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자. 



(며칠 전에 올렸다가 다시 다듬어서 올린다.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기도 했고 ... 다들 2018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