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자정의 퇴근길

지하련 2018. 8. 17. 13:24




자정이 지난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에서 김포공항역으로 달려가는 급행. 

신논현역. 즐거운 유흥을 끝낸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수다를 나누며 등장. 

자신의 취하고 지쳐보이는 얼굴 사이로 피어나는 웃음의 어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하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별안간 낯설게 여겨졌다. 

실은 요즘 내 모습에 스스로 상당히 낯설어 하곤 있지만, 어쩌면 나이 들면 갑작스레 이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나오자, 거리엔 사람들이 없었고 택시마저 보이지 않고,  

대신 밤을 지키는 술집들이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다행이다. 

밤을 지키는 술집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아직 살만한 곳임을 알리는 징표 같은 게 아닐까. 


수백년 전 밤길을 가던 나그네의 눈에 비친 주막의 불빛처럼, 그렇게. 


찰칵. 

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속 어두운 밤은 

무덥기로 소문난 낮처럼 밝았다. 


저 무더위처럼 스스로에게 지쳐가는 나도, 저렇게 밝아졌으면 좋을련만. 




오랜만에 빌 에반스를 듣는다. 

빌 에반스를 들으며 커피를 마신다. 


여유마저 작위스럽게 보이는 요즘, 참, 너무도 낯설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