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흰밤, 백석

지하련 2018. 10. 11. 10:06



흰밤 



옛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 백석, 1935년 11월, <<조광朝光>> 



혼자 술에 취해 거실 탁자에 앉아 시집을 꺼내읽다 왈칵 눈물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눈물에, 내가 왜 이럴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감수성이라는 게 살아있었나 하는 안도감을 아주 흐르게 느꼈다.


글쓰기는 형편 없어지고 책읽기도 그냥 습관처럼 변해, 종종 내가 왜,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지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논리 정연해진 것도, 그렇다고 사람들을 감화시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십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도리어 거짓말장이가 되고 불성실해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나쁜 점들만을 (처참하게) 깨닫고 있다.


그런 시절, 백석의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거참. 


***


백석(1912 ~ 1996) 

지금에서야 시집 구하기가 쉽지만 예전엔 월북작가라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번 가을 백석 시집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