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하련 2019. 8. 7. 00:08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지음), 헤엄, 2018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추천했다. 나와는 참 멀리 있는, 그러나 어쩌면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그러면서 당돌하고도 비현실적인 도전 <일간 이슬아>, 한 달에 스무편의 수필, 월 구독료 만원, 이메일로 배달되었던 <일간 이슬아>, 우리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이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독자를 모으며 급기야 책을 내어, 여기저기서 찬사를 받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쉽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슬아는 스스로 자신을, 자신의 친구들을, 그리고 가족들을 드러내며, 천연덕스럽게 글을 쓴다. 그렇다고 일본의 사소설적인, 그런 게 아니다. 일기도 아니다. 수필이지만, 동시에 일종의 이야기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같기도 하고 이슬아만의 렌즈 - 기막히게 매력적인 - 를 통해서 보고 해석되고 재구성된 이야기다. 아마 나라면 쓰지 못했을, 너무 솔직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이것까지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에게는 저것보다 더한 이야기들, 더 극적이며 놀랍고 흥미진진하면서 가슴 아픈 스토리가 있었지만, 차마 나는 쓰지 못했고 쓰지 못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건 글쓰기의 재능이 아니라 일종의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이슬아는 용기있게 시작했다. 그것이 무모한 것일지언정,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다가올) 어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도전이었겠지만, 다행히 그녀의 주변은 모두 이슬아를 지지했다(적어도 이 책에선!). 


책을 읽으며 내내 웃었고 울었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20대일 때, 이토록 애정이 많았던가. 아니, 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삶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문장들이다. 읽으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에 대해, 친구에 대해,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 애정이 있는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 나같은 이는 글을 쓰면 안 된다. 내가 20대일 땐, 매일 술을 마셨다. 겉멋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배운 선생님들의, 너무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허우적된 것인지, 세상을 비관했고 실존주의에 빠져있었으며, 플라톤주의를 일종의 비관주의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지금 그 생각이 바뀐 건 아니다. 다만 많은 것들을 포기했고, 이제서야 내가 숨쉬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작은 애정이랄까, 그로 인한 어떤 미안함이랄까 하는 그런 게 생겼다. (막상 그런 기분, 그런 느낌이 들자 너무 신기하면서도 한없이 부끄러워지긴 했지만)


이 책을 스스로 나이 먹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감히 추천한다. 늙어가는 이들에게 이 책은 보배같은 책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어쩌면 전세계가 빠르게 변하는 것인지도), 세상에 대해, 젊음에 대해, 미래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어떤 건 변하고 어떤 건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막상 지켜보면, 어떤 것이 변하고 어떤 것이 변하지 않는지 조차도 모른다. 그러니 젊은이들과 유대란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에 존중하며 그들이 지향하는 태도와 가치를 지지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책은 두껍지만 다행스럽게 너무 빨리 읽히고, 빨리 읽히는 만큼 정반대로 여운은 길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간 이슬아 수필집 - 10점
이슬아 지음/헤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