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 유희경

지하련 2020. 4. 5. 12:37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

유희경(지음), 아침달 




어쩌면 진짜 나무에 대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진짜 나무가 사람 되기를 꿈꾸는 이야기, 그래서 흔들, 흔들거리는 시집일 지도. 아니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사람 이야기일지도. 하지만 그 나무는 외롭지 않아야 한다. 


시인은 '나무로 자라는 방법'을 찾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혹은 찾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 나무로 자라지 않고 나무로 자라는 꿈만 이야기한다. 문장은 한결같이 하나로 끝나지 않고 두 세 문장으로 이어지다가 마침표 없이, 시는 끝난다. 


그것은 당신이기도 하고

당신이 아닐 수 없기도 하다

당신이 남자와 나무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러하다

- <나무로 자라는 방법> 중에서 


한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부정하는 몸짓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건 생각 뿐이다. 행동이나 실천이 아닌 일종의 상상이며 바람이다. 그래서 시는 아프고 시인은 쓸쓸하다. 


오래 산 사람은 오래 살아 알 듯이, 오래 살지 않은 이는 지금 겪고 있는 미결정의 불안한 사랑 때문에 이 시집은 가벼운 가을 바람처럼 우울하다. 


나무는 물과 바람과 태양이 있어야 하지만, 시인이 바라는 나무는 저 나무와 이 나무 사이의 어떤 나무다. 나무이더라도 홀로 서 있지 않고 당신 옆에, 그대 옆에 서 있는, 그래서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 가득한 나무, 그로 인해 문장은 짧지만 이 쪽으로 저 쪽으로 흔들리며 반복된다. 


그 반복의 리듬이 나무를 닮아 있다. 지금 막 나무가 되려는 우리 자신의 숨소리와 닮아있다. 그대에게 향하는 내 마음을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