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아감벤과 코로나

지하련 2020. 9. 3. 00:28



코로나로 인해 각국 정부는 다양한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동을 막고 마스크를 의무화하며 대면 예배를 금지하기도 한다. 심지어 미국의 경우, 대면 예배를 하는 목사를 체포하기까지 한다(왜 태극기부대 목사님들은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걸까?). 그런데 이러한 제한 조치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 일부에서는 강한 반발이 있기도 하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실은 누군가의 건강, 심지어 목숨까지 직결된 전염병 문제인데, '자유'를 들고 나오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그만큼 서구에서는 자유가 상당히 중요한 의미인가 하고 다시 묻게 된다. 그리고 조르조 아감벤의 강한 반발을 알게 된 후, 우리가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며 국가 권력에 의한 자유의 제한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읽은 슬라보예 지젝의 <<팬데믹 패닉>>을 잠시 인용해보자.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을 두고 대부분의 논평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다. 아감벤은 그저 또 다른 유행병 독감의 변종인 "감염병으로 추정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취해진, 광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전혀 근거 없는 비상 조치들"을 개탄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왜 언론과 정부당국은 공황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그렇게 해서 이동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모든 지역에서 일상생활과 노동 활동을 중단시키며 진짜 예외 상태를 부추기는 것일까?"

아감벤은 이 "터무니없이 과도한 대응"이 벌어진 주된 이유가 "예외 상태를 일상적인 지배의 패러다임으로 삼으려는 경향"에 있다고 본다. 비상 상황에서 내려진 조치들 덕분에 정부는 행정 명령을 통해 우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 


"이탈리아 국립연구위원회NRC의 말마따나 매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독감에 불과한 바이러스의 위험에 비해, 이러한 제한 조치들은 분명 과도하다. 예외 조치들을 정당화하는 데 테러리즘의 쓸모가 바닥나자, 감염병을 발명함으로써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그러한 조치들을 확장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구실을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공포 상태 조성인데,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개인의 의식에까지 침윤해 실제로 집단적 공황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이 일에 감염병은 다시 한 번 안성맞춤의 핑곗거리를 제공한다."


아감벤은 현재 진행형인 감염병 상황에서 국가적 통제가 작동하는 중요한 측면을 설명하고 있지만, 의문의 여지가 있는 질문들이 떠오른다. 국가권력을 향한 불신 - "국가가 무기력해, 제대로 대응을 못해" - 수반되고 자본의 원활한 재생산을 방해하는 공황 상태를 조장하는 데 국가권력이 왜 관심을 갖겠는가? 국가의 지배력을 개선하기 위해 전 지구적 경제 위기를 촉발하는 일이 정말로 자본과 국가권력의 이익에 부합할까? 평범한 국민들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 자체도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는 증거들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이 증거들이 정말로 한갓 책략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 슬라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95쪽 ~ 97쪽 


조르조 아감벤의 대표작인 <<호모 사케르>>(박진우 옮김, 새물결)를 읽어보면, 아감벤이 코로나 사태를 두고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나 뿐 아닐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도 마찬가지이고. 


Giorgio Agamben 

https://en.wikipedia.org/wiki/Giorgio_Agamb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