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문득 스페인에 가고 싶은 일요일

지하련 2020. 10. 25. 17:09



세스 노터봄의 여행 산문집 <<산티아고 가는 길>>은 절판이다. 어렵게 중고로 구했는지, 이젠 중고 책들이 온라인 서점에 많아졌다. 어떤 책에 빠지면, 그 곳에 가고 싶고 그녀를 만나고 싶고 그 요리를 먹고 싶다. 노터봄의 이 책을 읽으며 스페인에 가고 싶어졌다. 유럽이면서 유럽이 아닌 곳, 스페인. 


해외 여행은 이제 몇 년 후의 바람이 되었으니, 가고 싶은 여행지 목록이나 만들고 있어야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스페인의 내륙지방, 여기서 가고도 참 어려운 곳, 소리아가 궁금해졌다.  


1960년대 초반 스페인의 지방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사람은 소리아Soria로 가면 된다. 관광객으로 흥청거리지 않으니 멀쩡한 옛날 건물을 헐 이유도 없고 볼썽사나운 콘크리트 블록으로 도시를 망가뜨릴 일도 없다. 나무를 알루미늄으로 바꿀 까닭도 없고 문을 판유리로 교체하여 노출 부족으로 어둡게 나온 사진처럼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에 당황할 일도 없다. 카페에는 대리석 식탁이 있고, 식탁을 떠받치는 곡선미가 돋보이는 다리에는 은회색의 페인트로 수없이 덧칠을 했다. 사람의 얼을 빼 놓는 네온이 아니라 자욱한 담배 연기로 누르스름한 등불, 어둠 속에서 저벅저벅 지나치는 작은 가게들, 현금등록기도 없는 점포 주인, 신기한 먹을거리가 수북히 쌓인 나무 선반, 놀라움의 연속인 골목길, 검은 양복에 검은 모자를 쓴 사내들이 검은 술이 담긴 잔을 묵묵히 넘기는 우중충한 선술집. 지방이 가난하니 지방의 중심 도시도 가난하다. 가난은 환하지 않다. 가난은 고즈넉하다. 가난은, 실패한 성형수술처럼 낡고 참된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반반한 싸구려 광고판을 들이지 않고, 옛 것을 버리지 않는다.

- 세스 노터봄, <<산티아고 가는 길>>, 38쪽 


소리아를 찾아보니, 아래 기사가 눈에 띈다. '시인의,신화와 현실에 대한 왕국'으로 옮기면 되려나. 


A Poet's Realm of Myth and Reality 



Soria, Spain 


Cees Nooteboom


산티아고 가는 길 De Omweg Naar Santiago 

     

이 책 은근 두껍다. 번역서가 550페이지 정도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