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 신시아 프리랜드

지하련 2021. 1. 2. 16:11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

신시아 프리랜드(지음), 전승보(옮김), 아트북스, 2002

 

 


이 책은 현대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에 대한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종종 나는 신시아 프리랜드의 입장과는 다른 입장에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녀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이 글은 각 챕터별로 중요한 점만 이야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더 중요한 이야기도 있을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이 글은 매우 편파적이다. 빌 비올라라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있다. 비디오 아트를 이야기할 때, 백남준과 함께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예술가이다. 몇 해 전 국제 화랑에서 전시를 한 바 있는 그의 작품은 맨 마지막 챕터에 있지만, 이 책의 첫 부분과도 연결된다. 제의성(rituality)은 빌 비올라 작품의 주요한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예술의 제의성은 연극적인 것이면서 시간적인 것이면서 고대적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이해를 이 책을 통해 구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어본다면 현대 미술이 가지는 주요한 특징 하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피와 미

 

안드레스 세라노, ‘오줌예수’, 1987년.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황금빛으로 빛나는 예수의 감동은, 그것을 만든 재료가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그 재료를 알게 되는 순간, 불경스러움과 당혹감으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현대 미술의, 주도적이지는 않지만 주요한 여러 경향들 중의 하나이다. 프리랜드는 1980년대 말이라고 이야기하지만(p.24), ‘신체가 손상되거나 벌거벗겨진 후 피, 오줌 그리고 정액이’ 미술에 등장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너무 오래되어 잊혀진 것들의 재등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 등장한 근대 양식이라기 보다는 중세를 포함하는 이전 양식, 즉 고대 양식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 신시아 프리랜드는 <예술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향유되는 형식미 위주의 작품들과 아름답고 고상한 도덕적인 메시지의 작품들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비윤리적인 내용의 추하고 불쾌한 작품들도 포함한다>(p.48)라는 다소 원론적인 입장에서 이러한 현대 미술의 한 경향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지만, 그러한 경향이 왜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분석은 없다.

 

 


2. 패러다임과 목적/문화교류

 

무엇이 과연 미술일까. 여기에 대해 우리는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신시아 프리랜드는 이 물음에 대해 <앤더슨은 예술을 ‘감동을 주는 심미적인 매체 안에 능란하게 기호화된,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로 정의한다. 나는 이 정의에 동의한다. 그리고 짐작컨대 존 듀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예술은 공동체의 삶을 표현한다’는 듀이의 사상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처럼 들린다>(p.104)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의를 굳이 내리지 않는 게 작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굳이 가두어 둘 필요는 없으니깐.

 

 


3.돈, 시장, 박물관

 

이 주제에 대해선 너무 어둡기 때문에 별 할 말이 없다.



크리스토와 장 클라드, <달리는 울타리>, 소노마와 마린 카운티스, 캘리포니아, 1972~76.

 

몇몇 예술가들은 아예 팔 수 없는 작품을 만든다. 그냥 시간 속에 흔적을 남길 뿐이다. 이런 점에서 벤야민은 매우 잘못된 예측을 했다. 20세기 초반보다 아우라는 더욱 강화되었다.자본주의가 아우라를 필요로 하듯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이들조차 아우라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 셈이다.


4. 젠더, 천재, 게릴라 걸

 


 

신디 셔먼, <무제 필름 스틸 14>, 1978

Courtesy Cindy Sherman and Metro Pictures.

 

신사이 프리랜드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신디 셔먼의 작품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녀의 작품을 여성성의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은 여성성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구식 할리우드의 멜로 드라마와 스릴러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면서 그 이미지들은 긴장과 위협이 공존하는 모호한 감정을 전달한다. 그 장면들 뒤의 ‘실제’ 여성은 숨겨져 있어서 찾아낼 수 없게 되어 있다. 셔먼은 (생물학이나 성기에 근거하는커녕) 아예 ‘본질’을 가지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파악하기 어려운 신비, 그 카메라의 구조물이었다.>(p.176)

 

작품에 여성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한다는 건 매우 편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릴라 걸의 작품들은 페미니즘으로 무장된 것이지만, 신디 셔먼의 작품은 페미니즘의 경향보다는 후기 모던이 가지는 광범위한 진실과 거짓 문제, 매스 미디어에 노출된 한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되는 것이 보다 타당한 이해방식이 아닐까 싶다.

 

5. 인식, 창조, 이해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을 분석했다. 그 분석은 미술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고 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이론 개진을 위해 벨라스케즈의 작품을 편의에 따라 분석했을 뿐이다. 바로크 양식은 자본을 향해 움직이는 17세기적 경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시대는 데카르트의 시대이면서 상업 자본의 시대였다. 벨라스케즈의 의도는 궁정화가로서 잘 나가는 자신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6. 디지털화와 보급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장 보드리야르에 대한 논의로 이루어진 이 챕터는 뉴미디어 아트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또한 웹 아트에 대한 논의도 읽을 만 하다.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 - 10점
신시아 프리랜드 지음, 전승보 옮김/아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