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오구라 기조

지하련 2021. 1. 2. 14:02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사회

오구라 기조(지음), 조성환(옮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손에 쥐고 펼치면 금방 읽히는, 짧은 책이지만, 그 울림은 작지 않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사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고, 우리의 과거인 조선, 그 곳을 지배했던 학문(철학)과 양반/선비/사대부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숙제를 남겼는가도 되새겼다. ‘숙제’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도 이 과거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근대사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 곳에서 막혀 조선에 대한 이해마저 어렵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까닭에(?) 도리어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외국인 학자들에게 감동을 받는다. 오구라 기조 이전에는, 박노자 교수가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최근 들어 그의 책들을 읽지 않고 있으나, 그가 한국어로 낸 첫번째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는지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니


조선 혹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철학 그 자체가 영토, 사람, 주권으로 응결된 것이 조선 혹은 한국이다. 여기에서 철학이란 '리(理)'를 말한다. (20쪽) 


'리'는 천리(天理)로서 유일하고 순선(純善)하며, 모든 존재는 하늘(天)로부터 '리'를 부여받고 있다. 주자학은 '성리학'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서는 인간의 성(性, 생물학적 성(sex) 혹은 사회적 성(gender)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말함)은 원래 '리'라고 본다. 즉 도덕적으로 완벽한 선이라고 하는 성선설(性善說)의 철학이다. (33쪽) 


'기'는 지금으로 말하면 물질성이다. 모든 사물은 '기'로 이루어져 있다. (...) 우주에 충만하여 운동하는 유기체적 생명력이자 모든 물질의 기초, 그것이 바로 '기'이다. ‘리’는 형이상학적 원리이고 ‘기’는 형이하학적 재료이다. 따라서 인간도 ‘리’와 ‘기’가 합쳐져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육체는 ‘기’이고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은 ‘리’이다. (34쪽)



저자인 오구라 기조는 이 책의 부제와 같이 조선 시대의 성리학(주자학)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 사회의 면면을 분석한다. 이 분석은 하나같이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어, 한국인 독자인 나조차도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며 심지어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구나 할 정도였다. 그것이 잘못된 주장이거나 분석일지라도. 이 점에서 한국 학자나 저술가에 의해 한국 사회에 대한 철학적 이해나 분석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루어지고 있다면 왜 대중적인 서적은 없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즉 ‘기’에는 ‘좋은 기’[맑은 기]와 ‘좋지 않은 기’[악한 기]가 있다. ‘맑은 기’는 원래의 ‘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만 ‘탁한 기’는 ‘리’를 흐리게 한다. 이 중에서 ‘리’가 흐려진 자가 바로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35쪽) 


‘탁한 기’ 때문에 ‘리’가 온전히 발현될 수 없는 자는 사회적으로도 하층민으로 간주된다. ‘맑은 기’에 의해 ‘리’를 발현하는 자는 사회적으로도 상층에 있다고 본다. 상층은 선이고 하층은 악이다. 그러나 산과 악은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은 영원히 악인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선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탁한 기’를 맑게 하면 되는 것이다. 강물의 맑고 탁한 정도는 천차만별이지만 물 자체는 원래 맑기 때문이다. 즉 ‘탁한 기’도 노력하여 갈고 닦으면 맑게 할 수 있고, 그러면 본래의 선인(善人)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 노력을 극기(克己)나 수양(修養)이라고 한다. 나아가서는 ‘기’를 극한까지 맑게 함으로써 최고의 인간인 성인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주자학의 획기적인 테제였다.

이와 같은 인간관에 기초하여 움직여지는 한국 사회, 혹은 좀더 넓게 유교사회는 낙천적이다. 그곳에서는 불교조차 낙천적이다. (37쪽) 


책 초반에는 한국을 분석하기 위한 성리학(주자학)의 기본 개념을 설명한다. 그리고 성리학적 특성들로 한국 사회의 가진 강렬한 상승 지향적 특징이 비롯된다고 저자는 말하며, 이로 인해 한국 사회는 상당히 격렬하고 경쟁과 압력으로 가득하다고. 


한국에는 이 싸움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고마운 것이 있다. 그것이 ‘기의 세계’이다. 기의 세계는 긍정의 세계이다. 그것의 특징은 정(情), 용서, 치유, 혼돈, 차이성 등이다. 물론 ‘기’에는 분노, 엄격함, 부정과 같은 측면도 있다.

그러나 ‘리’와 대비해서 보면 엄격함보다는 긍정성이 강조되고 인식되는 것이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면, ‘리의 세계’는 까다롭고 완고하고 꼼꼼하고 엄격한 ‘용서하지 않는 세계’인 데 반해, ‘기의 세계’는 대범하고 마음이 넓고 적당하고 느슨하고 인정 많은 ‘용서하는 세계’이다. (58쪽)


'리'와 '기'의 대비를 설명하며, 잠시 한국에 머물다가는 이들은 '기의 세계'로만 한국을 경험하고 간다며 지적한다. 그래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오해하고 있다고. 이 책은 한국을 잘못 알고 있는 일본인이 독자이며, 저자 스스로 한국을 제대로 정리하고자 쓴 것이다. 


‘리’는 보편의 운동이다. 이 보편을 격렬한 논쟁에 의해 거머쥔 자가 권력과 부를 독점한다. 즉 ‘리’는 진리이자 규범이자 돈과 밥의 원천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체현하는 ‘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일원적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체현하는 ‘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20쪽) 


한국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흥분은 항상 여기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도덕을 쟁취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필사적으로 자기 선전을 하고 있다. 운동선수도 연예인도 동성애자도, 심지어는 범죄자까지도 하나같이 공적인 자리에서 도덕을 외친다. 경기 성적이나 노래 실력만으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킨 후에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2쪽) 


애초에 한국에 사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었던 셈이며 한국인 스스로가 그 곳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나 또한 내가 의식하지 못한 자리에서 이런 격렬한 질주의 틈 사이에서 운동하고 있었던 것이니.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는 관념을 어떤 한국인도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와 지금 실제로 자신이 ‘있는 자리’와의 거리를 줄이려고 항상 노력하는 것이 한국인의 일생이다.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에 만족하거나 혹은 의문을 갖지 않고 그 자리를 편하게 느끼고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일본인과는 크게 다르다. 

한국인에게 ‘본의 아니게 지금 있는 자리’는 그리 강한 집착의 대상이 아니다. (…) 

한국인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그것과 거리가 생겼을 때에 소란을 피우며 괴로워한다. 원래는 자신이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장애로 ‘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저 ‘자리’에 앉고 싶다는 동경, 그리고 앉을 수 없다는 고통, 그것이 ‘한’이다. (67쪽) 


이 책은 한국을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일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국과 일본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일본이 눈여겨봐야 점들이 없지는 않은지 묻는다. 


일본에서는 “지식인은 약하다”라고, 한국에서는 “지식인은 강하다”라고 여겨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말=논리>는 연약한 도구이고, 칼은 용감한 도구라고 여겨진다. 역으로 한국에서는 <말=논리>가 용감한 도구이고, 칼은 연약한 도구라고 여겨진다. 여기에서 ‘용감하다’는 것은 싸운다는 것이고, ‘연약하다’는 것은 싸움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소년들은 “남자라면 말로 따지지 마!”라고 교육받고, 한국의 소년들은 <웅변=논리>를 연마하기 위해서 웅변전문학원에 보내진다. 일본에서는 말은 싸움을 회피하는 도구이고, 칼이야말로 싸우는 도구이다. 

역으로 한국에서는 칼은 싸움을 회피하는 도구이고, 말이야말로 싸우는 도구이다. 자신이 믿는 도덕을 손에 들고 언어를 연마하여 그 날카로움으로 죽음을 건 승부에 나선다. 지면 삼족(三族, 부모, 형제, 처자)이 희생될 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말싸움이 죽음을 걸 정도로 격렬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유교 사회의 지식인은 죽을 때까지 도덕으로 싸우는 격투기 선수인 것이다. (130쪽) 


한국 사회의 주역은 무엇이었는가? 첫째도 지식인, 둘째도 지식인, 셋째도 지식인이었다. 이것은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한국 사회의 커다란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일본인은 한국의 지식인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131쪽)


반대로 한국인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박노자의 책들이 좌파적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잘못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상당히 학술적이며 논리적이다. 또한 가치 판단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다만 일본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일부 논술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만, 이 또한 이 책 내에서 설명되는 논리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니, 이 책은 짧지만 강렬한 독서를 경험하게 해준다. 동시에 성리학(주자학)이 현대 한국 사회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조선 시대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세계사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국가였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리고 난 다음, 뭔가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이 책이 한국인 독자에게는 그 어떤 실천적인 과제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본인 저자가, 일본인 독자들을 향해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런 나라야"라고 말하고 있지, 한국인 독자들을 향해 '니네 나라는 이러니, 이렇게 하는 편이 좋아'라는 류의 책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성리학'이라는 큰 틀에서 조망하고 있을 뿐, 어떤 문제점 등을 들추어 내려고 하지 않는다. 사소한 불평 같은 것은 있지만.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한국인 독자인 나는 어쩔 줄 모른다. 다만 조선이라는 나라와 한국 근대사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야겠다는 정도랄까. 이것이 이 책의 아쉬움이지만, 애초 이 책은 그런 목적으로 씌여진 책이 아니니까(그러나 일본인 저자가 일본인 독자들을 향한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일본인 독자들에겐 얼마나 호소력이 있었는지 알 길 없지만).





* 일본어 판 표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10점
오구라 기조 지음, 조성환 옮김/모시는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