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페이퍼, 정재승, 오픈 릴레이션십

지하련 2020. 12. 30. 01:06




아직도 이 잡지가 나오고 있나 싶어 한 권을 주문해 읽었다. 예전엔 월간지였는데, 이젠 계간지로 나오고 있다. 생각보다 읽을만한 내용이 많지 않다. 살짝 어정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로 떠났던 소설가 신이현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이 잡지를 통해 알았다. '거참, 이게 언제적 이야기인데'라며 묻는다면, 나로선 할 말이 없다. 2020년 한 해 동안 사람들과 소설이나 소설가, 혹은 문학이나 철학, 미술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으로 몰고 가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그래서 자주 나는 "내가 왜 이 책을 읽는가"라고 묻는다.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은 없다. 그저 습관처럼 읽고 언젠간 도움이 되겠지 정도랄까. 


페이퍼 편집장은 그대로인 듯 싶다. 이름이 똑같으니까. 요즘 젊은이들 속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이 잡지를 구입했는데, 살짝 나이든 느낌이 드는 건, ... 전세계적으로 몰아닥친, '천천히 취소되는 미래(slow cancellation of the future)' 탓일까. 까먹기 전에 마크 피셔의, 유일하게 번역되지 않은 <<내 삶의 유령들Ghosts of My Life>>를 주문해야겠다. 차마 읽겠다는 문장은 쓰지 않겠다. 안 그래도 읽을 책을 쌓아놓고 있는 판인데... 


페이퍼 2020년 가을호에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의 인터뷰 일부를 메모해놓는다.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통계상 살인과도 같은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는 인류는 전체 인류의 7%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 7%의 인류가 전체 폭력의 90%를 저지르고 있어요. 그럼 그 7% 인류는 무엇 때문에 살인과 폭력을 저지르는지 궁금했죠. 폭력성은 자기 동족을 살해하는 비율로 측정하거든요. 옛날에는 동족 살해가 많았어요. 네안데르탈인은 그 비율이 진짜 높고, 인간도 한때 50%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현재는 사망 원인으로 질병이나 자살, 교통사고 등이 높고, 살인의 비율은 현격히 낮아요. 문명과 교육, 도덕적 교화와 종교 등이 인간의 폭력성을 줄이고 억제하는 기능을 오랫동안 해온 거죠. 그러함에도 이 7%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7%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했어요." - 정재승


그런데 인류의 7%라고 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가 아닌가. 100명 중에 7명이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는 통계인데, 이 통계는 너무 높다. 혹시 제대로 된 통계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가 이 통계의 진위를 찾을 만큼 한가하지 않으니, 그냥 지극히 작은 수의 사람이 전체 90% 이상의 폭력 사건을 저지른다 정도 수준에서 멈추자. 


"일례로 미국에서는 현재 이혼율이 50%가 넘었고, 비혼과 미혼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며, 시리얼 매리지(Serial Marriage, 연속 결혼, 8 ~ 10년마다 배우자를 바꾸는 결혼 형태)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자를 바꾸되 합법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할 수 있거든요. 나아가 미국이나 유럽의 젊은이들은 '폴리아모리(Polyamory,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연애를 뜻하는 말)'나 그 상위 개념인 '오픈 릴레이션십(Open Relationship, 애인이나 배우자가 있음에도 상호 합의에 따라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형태의 관계)' 등을 통해 관계를 당당히 공개하고 있어요. 그들은 '어떻게 한 사람하고만 섹스를 할 수 있냐'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게 진실한 욕망이고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 제도를 포함한 어떤 제도를 50% 이상 지키지 못한다면 그 제도는 인간이 지키기 어려운 제도이며 그렇다면 그 제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 질문을 던진 거예요." - 정재승


결혼 회의론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실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류의 생물학적 존속이 문제겠지. 그리고 그러한 존속을 문화적으로 제도화시킨 것이 결혼이고. 현대의 결혼이라는 제도로 따지고 보면 몇 백 년 정도된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결혼이라는 제도가 머지 않은 미래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가능성은 매우 높거나 기정 사실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다만 현재 이 제도로 고통받는 이들이 안타까울 뿐. 


종이잡지를 좋아하는데, 읽을 만한 잡지가 딱히 없다. 결국 읽는 게 비즈니스 저널이다. 요즘은 읽는 건 <<MIT Sloan Management Review>>(2020년 Fall)이다.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하면 이상하려나. 다 읽고 리뷰를 올려야겠구나. 경영 잡지도 살아가는 데 적절한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