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지하련 2022. 1. 2. 19:58

 

 

고래가 가는 곳 Fathoms: The World in the Whale

리베카 긱스Rebecca Giggs (지음), 배동근(옮김), 바다출판사

 

 

고래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고래의 삶, 일생 같은 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알게 되긴 했지만, 책 대부분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고통받는 고래의 모습과 환경 오염 이야기뿐이었다.

 

20세기 후반 후기구조주의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는 우리를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오만함, 바로크적 근대주의에 대한 반발,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이끌었다면, 최근의 인문학적 논의는 철학적인 견지를 넘어서 실제 우리 문명, 문화, 일상생활의 문제, 가령 환경 오염이나 기후 위기, 경제적 불평등이나 정치적 갈등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그리고 이 책 또한 고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과 잘못된 행동 등을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의 반성과 교정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 내용이 너무 진지해서 였을까, 의외로 책읽기에 속도가 나지 않았고 결국 연말 내내 들고 다닌 책이었다. 책을 샀을 때는 뭔가 고래에 대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금세 그렇지 않다는 것에 실망해, 책을 멀리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끔찍한 환경 오염과 인간의 잔인함에, 책을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지도. 

 

무슨 이유로 고래는 표류하는가? (22쪽) 

 

표류하는 고래만큼이나 우리 인류도 표류하게 될 것이다. 플라스틱의 문제는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 책 후반부에는 플라스틱으로 죽음을 맞은 고래 사례들이 나온다. 다행히 이 책에 사진이 등장하지 않지만(나왔다면 이 책은 더 끔찍했을 것이다), 검색 사이트에서 '고래 플라스틱(whale plastics)'로 찾으면 끔찍한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너무 끔찍해서 차마 여기에 올리지 못하겠다). 

 

이 책은 고래에 대해서가 아니라, 실은 고래를 둘러싼 우리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다. 우리 인간이 고래에게 저지른 짓들에 대한 르포에 가깝다. 실은 아직도 우리는 고래에 대해 제대로 잘 알지 못하고 반대로 우리가 저지른 짓들엑 대해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태양풍으로 인해 향고래가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것도 여러 정황적 사실들을 끼워맞춘 것일 뿐,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극히 일부분이다(이 때 다시 우리는 고래에게 빠져든다).  

 

향고래는 천체의 공간에 존재한다. 그들의 마음은 별과 별 사이의 공간과 소통한다. 그리고 고래는 별들 사이에서 오는 기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289쪽) 

 

고래가 지구와 우리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아직도 포경이 허용되는  일부 지역에서는 고래가 아니면 끼니를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심해 생물들에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만약 바다에서 죽은 고래가 바람과 조류에 밀려 뭍으로 오지 않는다면, 그 거대한 몸은 마침내 가라앉을 것이다. 그리고 가라앉는 도중에 부패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고래 낙하whalefall라 부른다. 처음에는 둥둥 떠다니던 사체 냄새를 맡고 찾아온 바닷새, 물고기, 꽃게 그리고 상어가 쪼고 씹고 할퀴고 뜯어먹는다. 사체 처리 동물은 주로 아래쪽 썩은 부위를 처리한다. 맑은 날 잔물결이 일면 이 스캐빈저들의 끔찍한 노역이 보일 수도 있는데 마치 죽은 고래가 꿈틀거린다는 착각이 든다. 이런 일이 몇주고 몇달이고 계속된다. 석양이 깔리고 교대시간이 오면, 낮동안 배를 채운 동물들이 다른 생물에게 먹잇감을 넘긴다. 어떤 고래 종은 다른 고래 종보다 더 잘 뜬다. 죽은 향고래는 비록 가장 크고 무거운 고래에 속하지만, 그것의 거대하고 뭉특한 머리 속에 있는 기름으로 가득 찬 공간 때문에 가장 오래 떠있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모든 고래는 해저 끝까지 내려간다. (38쪽)

 

(우리에게 익숙한 계절적 관점으로는) 계절이 존재하지 않는 해저에서, 고래 낙하는 봄에 해당된다. 생명의 약동, 찬란함 그리고 향연. 야생의 고래는 죽은 지 한참 뒤에도 활기찬 에너지를 재공하면서 지구를 풍요롭게 한다. (42쪽) 

 

고래 낙하. 살아서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어떤 기여를 하는 고래. 지구에서의 일생은 저런 모습이여야 하지 않을까. 인간과 비교한다면,  인간은 도대체 지구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고래 한 마리는 탄소 흡수에서 1천 그루 이상의 나무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가디언>의 조지 몬비오는 고래를 ‘부작용 없는 탄소 포집기’라고 불렀다. (98쪽)

 

고래는 너무 큰 탓에 바로 죽지 못한다. 하나하나씩 천천히 죽는다. 몸의 일부는 죽었지만, 몸의 일부는 살아있는 상태가 며칠 지속된다. 심지어 고래의 몸에 사는 해양생물도 많고 심지어 길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기생충도 있다. 포경이 금지된 탓에 어느 정도 고래 개체수가 늘어났지만, 실은 20세기 중반 고래는 멸종 위기까지 몰렸다(그러나 아직도 포경을 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은 바로 일본. 한국도 그물에 우연히 걸린 고래 고기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으나, 우연히 걸린 것인지 잡은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그것마저도 금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다양한 활동들은 그 다양성 만큼이나 해양 생물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였다면 어느 순간에는 그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테지만, 바다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것이다. 책에서는 바다의 산성화에 대해선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지만, 이 문제도 현재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한 캐나다 과학자가 말했듯이, ‘지나친 벌목이 회색곰의 서식처를 감소시키는 것처럼 소음은 고래의 청각적 서식처를 줄어들게 한다.’ 그러나 고래 서식처의 문제는 벌목만큼 우리에게 죄책감을 주지는 않는다. (262쪽)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인위적 소음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며, 그것의 해악은 귀가 없는 유기체에도 미친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탄성파 탐사는 가리비의 치사율을 증가시킨다. 에어건 발사는 반경 5.25킬로미터 내의 크릴 유충을 죽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268쪽)

 

 

어쩌면 인간으로 인한 새로운 멸종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좋아졌다고 여길지 모르나, 그것은 인간의 입장일테고 다른 동식물이나 지구의 입장에서는 불균형 상태로 진입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차유리현상’을 언급했다. 사람들이 몇 년 또는 몇 십년 전에는 운전을 하다가 날벌레 사체를 치워야했는데, 요즘 그럴 일이 없어지면서 비로소 곤충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을 일컫는 용어다.(200쪽)

 

'귀여운 공격성'라는 개념도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것이 공격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2013년 두 명의 예일대학 심리학자들이 사랑스런 동물 사진을 본 피실험자들이 충동적 폭력성을 보였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그 용어-귀여운 공격성-를 제시했다. 한 연구자의 말이 그 연구 결과를 잘 요약해주었다. ‘어떤 것은 너무 귀여워서 우리를 가만 못 있게 한다.’ 피실험자들은 귀여운 동물을 깨물고 싶고, 누르고 싶고, 조르고 싶다고 했다. (206쪽)

 

인간 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은 동물 보호나 환경 보호에도 잘못된 접근을 하게 한다. 이 책에서는 동물의 카리스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카리스마가 있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에 대한 우리의 잘못을 이야기한다. 고래는 카리스마가 있는 동물이니, 나도 이 책을 사서 읽고 있는 것일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쩌면 이미 멸종했을 지도 모른다.

 

동물을 위해 인간이 발휘하는 호의와 보호 본능의 크기는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들은 ‘카리스마’를 언급한다. 카리스마는 한 동물 종이 마스코트로서 기능하는 능력, 사람들을 사로 잡는 서사를 지속시키는 능력, 그리고 대중을 움직이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 카리스마를 갖는 동물은 즉시 ‘의인화’된다. 즉 인격화된다. 인간적 특성을 부여받고, 인간 같은 행위 혹은 가치를 보여준다고 여긴다. 카리스마는 위계를 만든다. 카리스마가 있는 종은 특별히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 카리스마 있는 종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211쪽)

 

책은 의외로 길고 읽을거리가 많다. 글쓴이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해 고래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언급하면서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다시 우리를 반성하게 된다. 최근 몇몇 나라에서는 고통을 느끼는 해양 동물들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특히 의외로 지능이 높은 문어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채로 요리하지 말자는. 아마 이런 논의가 어떤 이들에겐 무의미하고 심지어 웃긴 짓으로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리베카 긱스처럼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은 없으나, 적어도 고통의 관점에선 어느 정도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위선일지 모르겠지만. 

 

남극의 심해보다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으로부터 더 많이 차단된 곳이 있을까? 전원이 꺼진 오디오 기기 같은 곳, 너무 먼 곳, 백색 소음, 움직이는 얼음 덩어리, 크릴이 움직이는 소리, 투명 물고기 살파, 기이한 해면 동물, 그리고 다른 수수께끼 같은 생명체들이 제각각 돌아다니고 있는 남극의 해저는 어둠에 잠겨 촉각과 시각으로는 범접하기 어렵다. 정확한 언어를 쓰는 작가라면 그 곳을 묘사하기 위해 ‘지형’ 같은 단어를 쓸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심연. 남극의 바다는 거대한 암흑이다. 우주의 밴타블랙만큼 짙은 암흑이다. (116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위와 같은 문장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낭만적이지 않다. 특히 고래의 삶 앞에선. 종종 우리가 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행동하지만, 우리는 주인이 아니다. 인류는 지금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 것인가. 

 

 

 

 

Rebecca Giggs